2017년 6월 22일 목요일
<황금시대>(1930) 돈이 많으면? 나쁜 놈들! 이상한 놈들!
<안달루시아의 개> 장편 버전을 기대하고 본 작품.
내용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상징적인 장면들은 보다 더 직관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이 파티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양복 입은 남성의 얼굴이 파리로 뒤덮여있는 장면.
이 인물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굴에 파리를 올려놓은 이 장면만 봐도 하고자 하는 말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점이 나는 재미가 없었다.
은근한 맛이 없다.
쿨하지 못하다.
예술적이지 못하다.
등등 여러가지 느낌이 드는데 논리적으로 왜 이 장면이 싫은지는 앞으로 좀 더 생각해봐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표현은 어느정도 돌려 말하면서도 이해는 다 가는 표현이다. 그것을 나는 세련됨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돈 많은 기득권층에 대한 조롱, 경멸, 풍자.
이 시대에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관점이었겠지만 2017년의 내가 보기에는 무작정 까고 보는 느낌이다.
어느 남자가 여자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벌 주고 마을에서 내쫓으려 하는데, 그가 실은 돈 많은 부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는 풀려난다.
그는 거대한 파티를 열고, 사람들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인다.
완전 딱 코메디. SNL에서나 할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작품을 현재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아니다.
시대적 맥락은 작품 이해와 비평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도 이 영화엔 별 애정이 안 가니 따로 공부할 마음은 안 생긴다.
앞으로는 제대로 공부 할 거 아니면 시대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영화는 가급적 보지 말아야겠다.
루이스 부뉴엘의 단편 <안달루시아의 개>를 좋아했지만 장편 두 작품을 더 보니 그에게 별 관심은 안 생긴다. 부르주아 열심히 비판했던 사람. 됐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 영화나 보자.
2017년 5월 9일 화요일
<욕망의 모호한 대상> 만인의 사랑이야기
<안달루시아의 개>를 연출한 루이스 부뉴엘이 거의 50년 뒤에 연출한 유작. 77년작이다.
40년은 떨어져 있는 서양의 영화인데 어찌 남 얘기같진 않은 스토리이다.
돈 많은 남자가 가녀린 여자를 얻으려는 이야기. 하지만 여자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에선 다루지 않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
초반부에선 지루해서 두 번이나 잤으나, 좀 지나니 꽤 볼만했다.
정말 놀라웠던 건 결말이다.
일들을 겪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테러로 인한 대폭발.
이 영화가 놓인 정치적 맥락도 알 수 없고 루이스 부뉴엘의 미학도 잘 모르다 보니 더 파헤칠 수가 없었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결말이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냥 루이스 부뉴엘의 욕망이 이 영화 결말을 이렇게 끝내라고 시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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