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6일 일요일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우리 엄마와 아빠를 닮은 영화

(싸지방에서 처음 올리는 영화 리뷰.
22개의 리뷰를 서둘러 마무리해야겠다.
아니 서둘러 하면 안 되는 건가?
왜냐면 시간을 때우면서 영화 글을 어떻게 쓸지 계획을 하나둘 짜고 있으니까.)

동민이형이 내게 추천해준 영화이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는 꼭 봐야 할 것 같아서 봤다.
내가 보면 졸도할 영화라고 했었다.
졸도는 안 했다.
하지만 꽤 몰입해서 보았다.
그렇지만 동민이형이 좋아했던 포인트와는 다른 이유였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여기서 말하는 영향이란 뭘까?
무엇의 영향일까?
이 여자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녀는 무엇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나는 가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가난이라는 영향 아래 놓고 보면 시시해진다.
이 여자가 가난해서 이렇게 됐고, 가난해서 치료도 못 했고, 남편이 돈 버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어서 이 여자가 계속 이렇다고.. 보면 시시해진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여자와 그녀의 남편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 정신이 조금 이상하시고 아빠 역시 영화 속의 남편처럼 다혈질이다.
그래서 남편이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인 이 영화가 너무 특별하게 다가왔다.
부인하고 싶었다. 보기 싫은 광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사실적이라 싸우는 엄마아빠를 볼 때처럼 정신이 쭈뼛 섰기 때문이다.

동민이형과 대화를 했다. 왜 이 영화를 좋게 봤고,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지 물었다.
그 때 들은 답은, 카사베츠는 영화를 통해 어떤 마법같은 것을 부린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어떤 결과물이 보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동민이형이 말한 카사베츠의 특별함처럼, 카사베츠가 의도하지 않았을텐데 영화를 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엔딩도 너무 이상했다. 현실을 닮아 너무 이상했다. 현실도 너무 이상하다.
죽일듯이 싸우더니 이내 잠잠해지고 서로를 사랑한다 말한다. 그렇게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것만 같고, 이상하게 평화롭다.
우리 엄마 아빠도 가끔씩 싸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아빠가 너무 쉽게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한다.
나는 그 싸울 때와 사랑한다 말할 때의 온도 차이가 이해가 안 간다.
싸우고 나서 어떻게 사랑 모드로 돌아가는 걸까.
나는 아직 그걸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잘 안 싸우려 한다. 싸우고 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군생활 계획 중 하나가 '잘 화 내는 법 배우기'이기도 하다.


낯선 영화였고, 아직도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할 영화인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도 괜찮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8년 3월 10일 토요일

<파편들> 크로넨버그의 섹스 좀비


추천받아서 본 데이빗 크로넨버그 초기작이다.
성욕이 강해지는 좀비 바이러스가 주 소재이다.

"합스는 인간이 생각이 너무 많다고 봤어. 육체와 본능은 무시되고 이성만 발달됐다고 믿었는데, 쉽게 말해 머리는 좋은데 용기가 없는 거야. 최음제와 성병으로 만든 기생충을 이식하면 인간이 용기를 되찾을 거라고 홉스는 생각했어. 세상을 난교의 장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아."

피부 안에서 무언가 숨을 쉬는 크로넨버그 특유의 기법을 이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좋았던 장면..
평범한 가족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장면과, 그 아파트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오프닝.
그리고 섹스 좀비들이 차를 타고 웃는 얼굴로 어디론가 향하는 의미심장한 엔딩. They came from within..
하지만 내용 구성이 재미가 없고, 소재 안에 담긴 메시지도 아직 부족하다.
그래도 크로넨버그의 에너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을 다룬 그의 작품들을 더 탐구해보고 싶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천국은 없어도



활동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동아리에서 함께 이야기나눈 영화.
영화가 어렵지 않은 것은 좋았으나, 할 이야기가 너무 없었다.

좋았던 것은 자신을 부르는 딸에게 귀찮음을 표현하는 어머니.
이렇게 자식에게 싫증을 내는 어머니는 애니메이션에서 처음 본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없다는 현실적인 관점.


<프란츠> 프랑수아 오종의 절제



프랑수아 오종의 <두 개의 사랑>을 보고 바로 연달아 본 작품.
전쟁을 다루는 외국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다>라는 영화를 어쩌다 만나 좋게 봐서 이번 영화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피곤해서 살짝 잠들어 앞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몰입이 안 된 상태로 영화를 보았다.


전쟁 중 죽은 사람, 죽인 사람 모두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시각..
해방 이후 어느 일본인이 찾아와 사과한다면? 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진실이 괴로움, 분노, 증오만을 낳게 될 상황에서 혼자 감내하는 자..
반대로 자기 혼자 떳떳해지기 위해 남들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자(아드리앵)

안나가 아드리앵에게 연정을 품은 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찾아보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를 마음으로 보듬게 된다는 스토리는 1932년 <내가 죽인 남자>에서부터 왔다고 한다.
<래빗 홀>이라는 영화에서도 본 스토리같은데 참 슬프고 안타깝다.


프랑수아 오종을 좋아하는 건 야한 영화를 잘 만들어서이다.
아직 이 영화까지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오종의 깊은 팬은 아니었다.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2017년 영화 결산

(진한 제목은 좋게 본 것, 기울어진 제목은 재감상한 것)

스트레이트 스토리
트레인스포팅
블루 벨벳
아메리칸 스나이퍼
케이 팩스
하하하
스타쉽 트루퍼스
와이키키 브라더스
더 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단지 세상의 끝
은하해방전선
나쁜 피
퍼스널 소퍼
컨택트
키즈 리턴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도약선생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싱글라이더
레볼루셔너리 로드
아비정전
에브리바디 원츠 썸
김씨 표류기
해피 투게더
멀홀랜드 드라이브
걸어도 걸어도
캐쉬백
케빈에 대하여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네도키 뉴욕
퍼펙트 블루
인스턴트 늪
욕망의 모호한 대상
맨하탄 살인사건
피라냐 3DD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황금시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안녕 용문객잔
레지던트 이블
올리브 나무 사이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아이 엠 어 히어로
우리들
플래닛 테러
피의 피에로
원초적 본능
제 7의 봉인
돈 존
연애담
몬스터
리얼
옥자
맵 투 더 스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범죄의 재구성
그 후
터스크
개를 문 사나이
더 비지트
페스티발
에드 우드
미트볼 머신
제인 도
데이브 미로 만들다
미르싼
싱크로나이자
내일부터 우리는
다크 나이트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어둔 밤
벗어날 수 없는
빌로우 허 마우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이레셔널 맨
내 책상 위의 천사
벨벳 골드마인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고양이를 부탁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잃어버린 지평선
아내는 고백한다
세르비안 필름
개그맨
혹성 탈출: 종의 전쟁
두뇌 혁명 A.I.
레이건 쇼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네온 데몬
마더
더 플라이
무서운 집
휴먼 센티피드
스크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춘몽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잭앤질
애정만세
밤과 안개
셜록 2세
지옥이 뭐가 나빠?
베이비 드라이버
아노말리사
사돈의 팔촌
비밀은 없다
라쇼몽
1408
소름
싱 스트리트
매기스 플랜
가족의 탄생
샤이닝
미스테리어스 스킨
남자사용설명서
에너미
화양연화
네이키드 런치
엑시스텐즈
돌아온다
벌거숭이
용의 국물
러빙 빈센트
어댑테이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토이 스토리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패터슨
퐁네프의 연인들
더 퍼지
로크
내가 사는 피부


약 140편의 영화를 본 해였다.
재감상한 영화는 30편 정도 된다.
좋게 기억하는 영화는 43편이나! 된다.
작년에는 타율이 10% 정도였는데 이제는 30%정도로 매우 높아졌다.
좋은 영화를 보는 눈이 생긴 건지, 아니면 보통의 영화에도 쉽게 만족하는 건지..
보통의 영화에도 쉽게 만족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을 기뻐해야 할지...

재감상한 좋게 본 영화는 14편!
처음 보는 영화보다 예전에 봤던 영화를 더 좋게 본 비율이 더 높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한 번 본다는 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게 기억하던 30편 중 절반 정도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안타깝다.

지난해에는 똑같은 영화를 한 해에 두 번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버렸다.
그러고나니 편해졌다.
앞으로 같은 영화를 짧은 텀을 두고 여러 번 보는 일도 자주 있을 것이고
같은 배우나 같은 감독의 영화를 연달아서 보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내가 다음으로 깨고 싶은 원칙은 보는 영화에 모두 리뷰를 적지 않고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것.
원래 내가 리뷰쓰기를 시작한 것은 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이 어땠는지 나중에 기억이 안 날 때 찾아보는 용이었다.
물론 찾아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글을 쓰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글을 쓰면서 거의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의무감만 생겨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항상 10~20편의 리뷰가 밀려있으니 부담감만 많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점점 영화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본지 얼마 안 된 영화조차도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나고 그런다.
리뷰도 점점 짧아지고 생각 많이 해야 되는 영화도 안 좋아하게 됐다.
예전에 열심히 4부로 나눠가며 2013년 한 해동안 봤던 영화들에 대해 리뷰를 썼던 것을 보니, 그 때는 진짜 내가 영화에 미쳐있었구나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좋은 영화들도 대부분 그 때쯤에 보았다.
요즘 영화를 보면 마음에 깊게 못 들어온다.
그 때는 할 생각이 영화 생각밖에 없어서였던 것 같다..
영화 한 편을 보고도 깊게 감동받아 장문의 리뷰를 올렸던 그 때가 그립다.


얼마 전에 클지선이라는 블로거 분께서 2017년 최고의 영화 조사를 하셔서 나도 재미로 2017년 개봉작 탑 10 리스트를 뽑아 보았다.

1.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2. 밤의 해변에서 혼자
3. 제인 도
4. 컨택트
5. 빌로우 허
6. 리얼
7. 퍼스널 쇼퍼
8. 혹성탈출: 종의 전쟁
9. 옥자
10. 매기스 플랜

리스트에서 제인 도는 좀 더 아래로 내려도 될 것 같지만.. 수정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올려본다. 지금은 아니어도 얼마 전에는 내 2017년 개봉작 베스트가 이랬다.
8,9,10위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10편 채우려고 넣었다.
작년엔 극장에 정말 안 갔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들도 거의 안 보고 그랬다.
얼마 전에 <신과 함께>를 보니까 인정하기 싫어도 재밌긴 재밌더라.
앞으로 이왕이면 같은 값으로 있어보이는 영화 보러 가지 말고 재밌는 상업영화도 좀 많이 봐야겠다.


그리고 정리하는 김에 친구들 보여주려고 2017년에 만난 영화 탑 10도 만들었었다.

1. 미르싼
2. 아이 엠 어 히어로
3. 트레인스포팅
4. 해피 투게더
5. 소름
6. 마더
7. 비밀은 없다
8. 어둔 밤
9. 더 플라이
10. 춘몽

어둔 밤과 더 플라이가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수정하기 귀찮으니 써놨던 대로 그대로 올린다.
201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좋게 본 영화들 중에 장르영화가 많다.
미르싼, 아이 엠 어 히어로, 소름, 마더, 비밀은 없다, 더 플라이. 절반이 넘는 영화들이 공포 계열의 피 나는 스릴러 쪽이다.
영화 많이 안 보던 때의 취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장르영화를 좀 더 거리낌없이 선택하고 즐기도록 해야겠다.
이상!

2017년 12월 이용철 평론가 GV in 아트나인 <퐁네프의 연인들> 손에 넣고 보니 잃어버렸음을 알았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매우 컸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기대하고 영화 좋아하는 친한 형과 함께 보러 갔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에 봤을 때만큼의 특이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이용철 평론가가 해주는 얘기는 레오 카락스라는 사람을 더 평범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레오 카락스의 영화들에서 항상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너무 맞는 말이라 더 이상 감상할 여지를 잃어버렸다.
'레오 카락스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영화들이면 그걸 왜 보나..
물론 나는 이용철 평론가 정말 좋아한다.
요즘은 영화에 대한 생각도 예전만큼 깊이 안 하고 어렴풋한 한 순간의 느낌이란 것에 많이 의존해서, 그것이 분명해지니 흥미가 떨어진 것뿐이다.

한때는 레오 카락스 감독을 정말 좋아했는데 요즘은 생각도 잘 안 난다.
다시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쯤이면 요즘 안 보는 영화들도 많이 보겠지.

영화에 나온 퐁네프 다리는 드니 라방의 부상으로 인해 촬영이 연기되어 실제 다리 대신 지은 세트라고 한다. 진짜로 제작비 어마어마하게 써버렸네..

예전에 봤을 때 가장 좋았던 장면은 다리에서 미친듯이 춤추는 장면!
이번에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수상스키 타는 장면이다.
불안정한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 떨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사는 피부> 뭔진 몰라도 겁나 재밌다..



느낌이 너무나도 생경한 영화이다.
제목은 '내가 사는 피부'. 원제도 'The skin i live in'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더니 영화가 전개되면서 밝혀지는 진실들이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가 있다.
결말의 아쉬움이나 상징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재미가 있어서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뛰어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나중에 그의 다른 영화들을 선택할 때에는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는 피부>를 다시 볼 때면 모든 비밀을 알고 보는 것이니 배우들의 연기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