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늑대아이> 호소다 마모루의 육아
1. 어느 시점에서 하는 건지 모를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되다 결국엔 그 내레이션의 시점까지 가서 영화가 끝이 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과연 내레이션의 시점은 어디일까?라는 궁금증을 이용하는 플롯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긴 러닝타임을 체감상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 활동적인 성격의 여자아이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늑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늑대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을 겪으며 인간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조용한 성격의 남자아이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자기 안의 야생성을 느끼고 늑대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우리 인생도 많은 변화 끝에 이렇게 온 것은 아닌지. 인생에 관한 통찰이 돋보였다.
소수자성에 대해서도 영화를 읽어볼까 싶었지만 감흥을 굳이 논리로 바꾸기 싫으니 다음으로 미루자.
3.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와 <괴물의 아이>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상징성을 부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환상적으로 끝이 난다. 부담 없이 보기 좋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4. 온 가족이 보기 좋은 영화.
5. 호소다 마모루의 부드러운 그림 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도 다시 봐야겠다.
6. 클라이막스가 클라이막스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뒤돌아보니 클라이막스였다.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것도 정말 큰 재능인듯.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괴물의 아이> (2) 든든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멋진 어른들
또 짚고 싶은 하나의 지점.
이 영화의 반전은 쿠마테츠의 라이벌인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가 실은 인간이었다는 데 있다. 괴물들은 인간이 각자 저마다의 '어둠'을 가지고 있어 위험한 존재라고 보았다. 그동안 괴물의 세계에서 현실을 잊고 살던 큐타에게선 어둠을 볼 수 없었지만, 남모를 열패감으로 가득차 있던 이치로히코의 어둠이 커지고 커져 결국 괴물세계와 인간세계 모두를 위협하게 된다. 그로 인해 쿠마테츠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은 큐타는 행방불명의 이치로히코를 찾으러 나선다. 그것을 큐타가 쿠마테츠에 대한 복수를 하러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햐쿠슈보는 그를 말리며 처음으로 화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은 복수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큐타는 깊은 어둠에 빠진 이치로히코를 구하려고 하던 것. 그 때 큐타가 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자신도 한때 어둠에 빠졌던 때가 있다고. 그 때 쿠마테츠가 없었다면 자기 또한 이치로히코와 같은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단지 어둠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없었을 이치로히코에게 자기는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이 세상엔 나쁜 어른들이 참 많다. 아이들은 그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자기를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어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내 옆의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나도록 도와줘야 할 책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내면의 슬픔을 돌봐 줄 사람 없이 자란 아이들이 가끔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슬픔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 한 그 아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옆에 누군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충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영화는, 든든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멋진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록 우리 곁에는 큐타 곁에 있는 괴물들처럼 멋진 어른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내가 그 멋진 어른이 되면 되지 않나. 생각보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풍부한 영화였다.
<괴물의 아이> (1) <라이프 오브 파이>의 환상세계를 떠올리며
12월 1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던 날.
두 영화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흡족~
이번 글에서는 <괴물의 아이>를 보며 '나만이 느꼈을 법한' 지점을 파고들어 본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 그러니까 소년 큐타가 청년 큐타가 되었을 때 즈음 배경은 괴물의 세계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넘어간다. 큐타가 어렸을 때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우연히 괴물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괴물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다시 우연히 인간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영화 상에서는 9살 이후로 처음 들어서는 인간세계다. 나는 여기서 큐타가 다시는 괴물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다. 지난 8년간의 괴물세계 경험을 "어떤 분이 나를 받아주셔서 운동만 하고 자랐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 그동안의 이야기는 하나의 은유였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년 큐타는 사실 그동안 인간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을 하고 있던 거구나. 괴물의 세계같은 건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물론 영화를 좀 더 보면 알겠지만 <괴물의 아이>에 나오는 괴물과 그들의 세계는 은유가 아니다. 뭐 굳이 억지로 은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만화를 그려냈던 호소다 마모루가 그런 의도를 가졌을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마코토의 이모가 "그 나이쯤 되는 여자애들은 누구나 한 번쯤 타임리프를 겪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것과 같이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지극히 환상적인 배경이 공존한다. 그것들을 마치 진짜 있는 세계인 것처럼 슬쩍 내놓는 호소다 마모루 세계의 유연함.
그 양상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잠시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의 은유를 떠올렸다. 지금 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는 참 나빴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무참히 무너지려 하는 순간이 나는 싫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애초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그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파이가 만들어내야만 했던 '거짓 이야기'임이 명백했다. 거짓 이야기여야만 완성되는 이야기이고. 반면 <괴물의 아이>는 그것의 환상 이야기가 가짜다 진짜다 판단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영화를 너무 예민하게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될 지점까지 파서 이렇게 환상의 진위여부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지, 실은 별 의문의 여지 없이 그냥 아름다운 하나의 환상 동화라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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