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화요일
[NHK에 어서오세요!] 히키코모리로 사는 누군가의 나날들, 한 학기 쉬고 돌아온 나의 생각들
시험기간에 유투브에서 짤막한 애니메이션 클립을 보게 되었다.
한 히키코모리 남자가 아버지의 입원으로 수입이 끊기자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인력사무소를 찾아 일을 하는 내용.
그 영상이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이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게 되었다.
24회 분량.
연출이 좀 신경쓰였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괜찮아졌다.
마음에 안 드는 연출이라 함은, 쓸데없이 오버하는 인물들. 초반부 대화 씬들은 정말 못 만든다. 이 인물이 왜 여기서 소리를 지르는지 납득을 할 수가 없다.
[NHK에 어서오세요!]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사토 타츠히로가 미사키라는 미소녀의 히키코모리 탈출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유투브에서 봤던 장면이 언제 나오는가 했더니, 거의 끝부분쯤 가서야 나온다.
앞선 에피소드 중에 등장한, 타츠히로보다 더 심한 히키코모리 '토로토로'가 그제서야 유투브에서 보았던 영상과 겹쳐졌다.
동생에게 의존해 식사를 해결하던 그는 동생이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자 결국 배고픔을 못 이기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심각한 히키코모리 둘이 히키코모리 생활에서 벗어나는 걸 보여주며 이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의존하더라도 의식주가 해결되어 살만하니까 히키코모리로 사는거다. 정말로 배고프고 절박한 때가 오면 사람은 일을 하게 되어 있다."
히키코모리가 실제로 많고 사회 문제로까지 오래 전부터 제기된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들려주는 얘기는 이렇다.
진짜로 절박한 상황이 올 때까지 더 빈둥거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삶에는 미사키같은 구세주도 없다.
극중 미연시 게임을 만드는 에피소드에서 미연시 게임의 특징을 간단하게 정리했는데,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며 절대로 나를 배신할 리 없는, 실제로는 존재할 리 없는 여자'가 핵심이다. 그런 여자가 바로 타츠히로에게 다가온 미사키이다.
어쩌면 시청자들이 극중에서도 풀어 설명한 미연시 게임 플레이어와 같은 환상에 빠지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사랑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공짜로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다.
실제 히키코모리들과 동일시해볼 만한 캐릭터가 바로 미사키 없는 '토로토로'이다.
그렇다고 진짜 절박한 상황이 올 때까지 맘놓고 빈둥거리진 말자..
일부러 절박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입대를 한다든가.. 하는 건 아무래도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내가 바라던 답을 주진 않았지만, 히키코모리로 사는 누군가의 나날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었다.
지난 학기의 휴학은 그리 생산적이진 못 했고, 꾸역꾸역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학교에 돌아온 나는 많이 우울해졌다.
이런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을 많이 한다.
진짜로 폐인으로 살다가 밥이라도 먹으려고 인력사무소 나가는 나의 미래를 그려본다.
음..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심을 못 버리겠어..
내가 사는 집, 내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용돈이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든 내 능력으로 자립해 미래를 대비할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몇 년동안은 이렇게 부모님에게 얹혀 살아도 될거야.. 하는 안도감도 있다.
외부의 요구에만 시계태엽 인간처럼 돌아갔던 내 삶은 자율성이 보장되는 대학에 떡 하니 던져지면서 생기를 잃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을 받곤 하지만, 주위 사람들 없이 나만 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안 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 직업으로 적당한 일은 무엇일까?
욕심은 있지만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는 나 스스로 일을 잘 못 한다.
내 여자친구는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마지못해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중 하나인 학점 때문에 끌려간다.
나는 더 이상 머릿속에 지식을 넣길 원치 않는다.
어느새 주위 동기들도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나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걸까?
동력을 만들어내길 원치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 지긋지긋한 고민에서 벗어나고는 싶다.
자살에 실패한 주인공을 벌레 보듯 대하는 인물의 반응에서 억울함을 느꼈다.
할 얘기가 떨어졌으니 과제하든지 자든지 해야겠다. 아무튼 요즘 했던 생각들이다.
<레지던트 이블> 무난한 좀비 크리처 액션영화
기술적으로는 우수한 영화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카메라가 앞으로 들어가는 오프닝과 카메라가 뒤로 빠져나오는 엔딩. 이런 형식 좋다. 딱 이정도만 해줘도 어느정도 '영화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밀라 요보비치가 벗은 몸으로 깨어나는 두 개의 장면. 이 장면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캐릭터의 섹시함을 강조했다.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좀비 하나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데 크리처들이 너무 많아 산만했다는 것.
좀비만으로는 승부 보기 어려운 게임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원작 팬들은 크리처들이 반가웠을지도 모르나, 좀비에 개에 괴물에 슈퍼컴퓨터까지 좀 혼란스러웠다.
좀비 하나만으로는 특색 없었다. 하지만 게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볼 수 있을 것. 괜찮은 킬링타임 영화.
엔딩이 속편을 멋지게 예고하는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1편 이후로 점점 별로라는 얘기를 들어서 속편들은 안 볼 생각이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 만인의 사랑이야기
<안달루시아의 개>를 연출한 루이스 부뉴엘이 거의 50년 뒤에 연출한 유작. 77년작이다.
40년은 떨어져 있는 서양의 영화인데 어찌 남 얘기같진 않은 스토리이다.
돈 많은 남자가 가녀린 여자를 얻으려는 이야기. 하지만 여자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에선 다루지 않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
초반부에선 지루해서 두 번이나 잤으나, 좀 지나니 꽤 볼만했다.
정말 놀라웠던 건 결말이다.
일들을 겪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테러로 인한 대폭발.
이 영화가 놓인 정치적 맥락도 알 수 없고 루이스 부뉴엘의 미학도 잘 모르다 보니 더 파헤칠 수가 없었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결말이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냥 루이스 부뉴엘의 욕망이 이 영화 결말을 이렇게 끝내라고 시킨 걸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이 영화의 문제점과, 미국의 가치
1
대실망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을 보고 나서 신선한 충격에 빠졌었는데
이번 영화는 스스로 그저 그러한 영화가 되기를 자처했다.
2
과장 좀 보태서, 오프닝만 보면 영화의 모든 것이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 블로그 이름도 '오프닝'으로 바꿨다.
전편에서는 스타 로드가 음악이 맞춰 춤을 추었고, 이번에는 그루트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것은 이번 편에서는 그루트가 핵심이라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 로드의 아버지가 악역으로 나오지만 스타 로드의 분량은 확 줄었고, 고작 그루트의 귀여움을 어필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셀링 포인트였다.
크레딧 올라갈 때까지 I AM GROOT를 관객의 머릿속에 새기려는 발악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루트가 귀엽긴 했지만 겨우 그것 보려고 이 영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3
전작들의 장점들은 날아가버렸다.
아예 다른 사람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딴 영화가 되어버렸다.
스타 로드가 담당하던 코미디는 이제 드랙스 쪽으로 넘어가 버렸는데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재미도 없으면서 관객들 민망하게 하는 섹드립이 가장 싫었다.
전편에서는 머리 나쁘기만 한 근육덩이였는데 이번에는 재미없는 농담만 늘었다.
개그 코드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4
가장 큰 손실은 음악.
바뀐 사운드트랙들에선 전편과의 유사성을 찾기도 어렵고 귀에 잘 안 박힌다.
죽여주는 노래들을 선곡하지도 못 했고, 노래가 쓰여야 할 좋은 장면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흔해빠진 배경음이나 넣고 앉아있다.
선곡 감각은 너무 구렸다.
사실 전편은 음악이 거의 다 해먹었는데 말이지.
5
거기다가 가족영화적 교훈까지..
이렇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평범한 시리즈가 되기를 자처한다.
정리하면
그루트
개그코드
음악
교훈
이것들이 문제였다.
6
지루해서 못 견뎠다.
그래서 일반적인 미국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가 담고 있는 미국의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보편적으로 공감가능한 이 시대의 가치들.
그 중 하나 신기한 것은, 그 누구라도 친구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린 종종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동료를 구하려는 주인공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영웅들을 보면서 내가 그런 영웅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프닝에서 동료들을 배신했던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봐야지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딜 수 있겠더라.
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 했지만 다른 영화를 보면서 또 찾아봐야겠다.
역사가 짧은 나라인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흥미롭다.
7
사실 마블 영화에서 스토리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영화 스토리 정말 난데없다.
이 많은 캐릭터를 보여줄 방법이 없어 그냥 억지로 짜낸 것 같다.
7
사실 마블 영화에서 스토리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영화 스토리 정말 난데없다.
이 많은 캐릭터를 보여줄 방법이 없어 그냥 억지로 짜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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