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4일 일요일

<부산행> 좀비가 된 친구, 사실적인 악역, 열차라는 공간의 활용,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는 의미

1
정말 단순하고 쉬운 장면이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최우식이 좀비로 변해버린 친구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다.
앞서 <28일 후> 포스팅에서 한 표현을 빌리자면
내 소중한 사람이 좀비가 되어버려 물리기 전에 죽여야 하는 슬프고도 긴박한 순간이다.
거기에 깔린 음악도 예사롭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의 기존 영화들에서 보았던 센스가 묻어난 느낌이었다.
다만 최우식을 비롯한 야구부원들의 캐릭터는 아예 없다시피 해서 그 느낌이 살지 않았다.
안소희를 좋아하던 최우식이 좀비가 된 안소희를 지키다 기꺼이 물리는 장면도 나름 괜찮았다.
다만 안소희라는 배우가 그닥 잘 쓰인 것 같지 않아 그 느낌이 살지 않았다.



2
나는 김의성 배우의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거의 유일한 악역이라 일을 너무 많이 떠맡아 생명력이 과하게 질겨 짜증을 유발한다는 게 흠이지만
이 인물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충분히 사실적이었고 공감이 갔다.

이런 말을 들은 친구는 그의 캐릭터를 비롯해 그와 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악한 것이 인위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인가 싶다.





3
열차라는 공간의 활용 면에 있어서는 <설국열차>보다 훨씬 낫다.
직선형의 공간에 사람들이 의식주를 모두 그곳에서 해결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우겨넣었던 <설국열차>와는 달리
<부산행>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기 위해 중간 구간을 건너뛸 수 없는,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온 구간을 다시 지나야 하는 직선형 공간의 특징을 적극 활용한다. 



4
모두 죽고 임산부와 여자아이만이 살아남는다.
<설국열차>에서 동양인 소녀와 흑인 남자아이가 살아남았던 것이 나름의 의미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부산행>의 생존자들은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어 보인다.
끝까지도 이들은 군인들에 의해 구조될 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을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만 그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하나의 상황을 제시해 놓고 그 안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의미를 찾지 않으려 한다.
재밌게 즐겼고,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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