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3일 화요일
<서울역> 부산행같은 영화를 기대했다면
올해의 첫 천만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 속편 <서울역>이다. 실사 영화인 <부산행>과는 다르게 연상호 감독이 그간 작업해왔던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서울역>은 실망스럽게 시작한다. 거의 대화로만 처리되는 도입부는 임팩트도 없고 지루하다. <부산행>의 차에 치이고도 죽지 않는 고라니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처럼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치가 이 영화에는 부족하다. 어디서 물렸는지 알 수 없는, 좀비로 변할 것이 너무 뻔한 노인이 끙끙 앓는 것이 좀비 아포칼립스의 미약한 신호탄이다. 캐릭터를 설명할 때도 <서울역>은 뻔한 대사로 싸우고 <부산행>에는 Wii 게임기가 나온다. <부산행>과 너무 비교되는 솜씨이다.
또 '프리퀄'이라는 이름을 보고 <부산행>의 관객들이 기대했을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을 이 영화는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영화의 결말까지도 <부산행>의 시작과 들어맞지 않는다. <서울역>을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 당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재난 상황에 돌아갈 집이 없는 노숙자나, 살려달라는 시민들을 폭도로 취급하는 경찰들 등의 날카로운 요소들은 이상하게 어우러져 결국 영화의 완성도를 겨누고 말았다. 이 영화가 대체 어느 곳으로 나아가는 영화인지 알 수가 없다. 좀비든 사회 비판이든 뭐든 어느 쪽이든 확실히 했으면.
좀비는 너무 갑작스럽게 떼거지로 나오고, 추격 씬은 하나도 재미가 없다. 기차라는 공간과 시각적인 요소에 흥분하는 좀비의 특성을 통해 영리하게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재미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영화가 너무 단순한데, 재미를 포기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나 하니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다. 그동안 혜선을 찾아다니던 아버지가 실은 혜선에게 돈을 떼인 포주였던 것. 좀비가 창궐해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든 멸망 직전의 상황에 돈을 떼먹고 도망한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만큼 영화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이를 뒷받침하는 의미화가 현저히 부족했다.
<서울역>과 <부산행>이 어떤 경위로 제작되었는지 알아야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영화도 아니고 천만 영화의 프리퀄이, 와이드 릴리즈되는 애니메이션이 이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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