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3일 일요일

<화장> 임권택, 정성일 GV

1월 9일 한국영상자료원
GV with 임권택 감독, 정성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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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을 보는 것도, 정성일 평론가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인 정성일 평론가의 GV에 참석하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떨렸다. 하지만 너무 졸려서 졸았다. 임권택 감독은 말이 느리고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애썼지만 잠이 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자리에서 졸았던 내가 부끄럽다. 임권택 감독의 <화장> 그 자체를 관람하는 것보다도, 임권택 감독과 그의 소문난 덕후 정성일 평론가가 나누는 대담을 현장에서 듣고 싶었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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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평론가가 한 말이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자객 섭은낭>을 세상에 내놓고 나서, 평론가들은 영화를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영화가 하도 어려웠던 평론가들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영화를 만드냐고 물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해할 수 없으면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자기는 자기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내 영화는 그 사람들만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무척이나 단호한 태도다. 이제껏 예술영화 상업영화 가지고 고민했던 내 머리 꼭대기에 있는 느낌이었다. 나도 저렇게 돼야 되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만큼 영화 찍은 사람들은 저정도의 자신감이 생기는가? 자기 영화세계를 쭉 밀고 나가는 그가 멋있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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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임권택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 둘 중 아무도, <화장>의 흑백 버전을 보지 않았다. <화장>의 흑백 버전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임권택 영화 다 보는, 여러 번 보는 정성일마저 <화장> 흑백 버전을 아직 보지 못 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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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평론가는 필름이 디지털 장비로 대체되는 현재 영화계의 상황에 그리 큰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디지털 쪽이 더 편리한 면이 있다고. 하지만 값나가는 소모품인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던 때만큼의 긴장감은 현장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NG 나면 다시 찍으면 되니까, 하는 마인드가 디지털 현장의 단점이라고. 현장의 분위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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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관점이 80대 노감독이라고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원래 이게 당연한 걸까. 40대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죽음에 대한 관점이 더 그럴싸해 보이는 게 이상하다. 단순히 두 감독을 각자의 나이대를 가지고 그 나이대를 대변하는 감독으로 나눌 순 없지만, 80대 감독인 임권택은 자신의 영화에서 감정적이고 성적인 묘사를 택했고 40대 감독인 파올로 소렌티노는 자신의 영화에서 죽음 앞에 선 예술가의 근심을 표현했다. 20대 관객인 나는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가 좀 더 그럴듯하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진짜로 내가 죽음 앞에 선 나이가 되었을 때 하게 될 고민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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