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1일 금요일

<개그맨> 이상한 매력



어쩌다 이걸 볼 생각을 했더라?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윤성호 감독이 좋아하는 배창호의 <러브 스토리>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보던 중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을 발견했다.
영화감독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길래 바로 보았다.


찰리 채플린을 빼다박은 개그맨 '이종세'.
영화를 연출한 이명세 감독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안성기가 연기했다.
열심히 얼굴을 망가뜨려가며 공연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기게 생겼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전혀 안 웃겼다.
지금의 품위있는 안성기의 모습이 겹쳐져서인지 더욱 안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쓸쓸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가 공연할 때 카메라가 관객들을 잡아주는 건 단 한 컷뿐이다.
예산상의 이유로 한 장면밖에 못 넣은 것이겠지만, 공허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런 그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허풍을 벌이고 다닌다.
어째서 이렇게 안 웃긴 사람이 개그맨인지도 모르겠고,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탈영병이 건네준 소총 두 자루가 생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선영은 이종세, 그리고 이발소에서 일하는 뚱보 문도식과 함께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한 강도를 벌인다.
꽤나 눈에 띄는 차림을 하고서도 잡히지 않는 삼인조(?)
어쩌다 그들은 경찰로 위장한 강도에 의해 번 돈을 거의 다 잃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곧 전국적으로 삼인조의 정체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고, 문도식은 도주 중 실수로 사람 한 명을 쏴 죽인다.
이들은 결국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지만, 이미 무장경찰들에 의해 포위된 후이다.
문도식의 밀고를 알게 된 이종세는 소총 두 자루로 결투를 하던 중 문도식의 배신으로 인해 사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한낮의 꿈처럼 끝이 난다.


이상한 매력이 있다.
정말 노잼 영화인데 이상하게 쉽게 잊히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들이 강도를 하는 장면들 중간에 뜬금없이 나오는 공연 장면.
황신혜는 지금이라면 씨알도 안 먹힐 노래실력과 발음으로 Suzie Q를 부르고
안성기와 배창호는 열심히 준비했겠지만 합이 안 맞는 율동을 선보인다.
이 장면 정말 이상하다.
한 장면이라도 환호하는 관객을 비춰줄 법 한데 카메라는 무대만을 향한다.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워 마치 이종세의 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을 당시의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즐거운 한 편의 쇼였을까?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이종세의 텅 빈 내면세계를 보았을까?
이명세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장면을 넣었을까?

영화 정말 재미는 없지만 이상하게 매력이 있다.
정말 이상하다.
이명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이럴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재미가 너무 없기에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는 건 주저가 된다.
<개그맨>이 너무 낡고 낡은 옛날 개그로 드문드문 차 있어 다른 영화들이 걱정이 된다.

대체 왜 영화감독을 하려는 주인공이 개그맨인 것이고, 또 대체 왜 갑자기 탈영병이 나타나서 소총을 주고 그걸로 은행강도를 하는가?
안 어울리는 세 가지 요소들의 조합이다.
뭘 하고 싶었는지 통 감이 안 온다.
갑자기 서늘하게 끝나는 결말은 또 뭐람?

컬트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더욱 관심이 간다.

황신혜가 너무 예쁘다. <기쁜 우리 젊은 날> 1년 뒤에 찍었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화들도 더 찾아보고 싶다.

어쩌면 옛날의 영화가 더 다양했는지도 모른다.
돈을 버는 법을 잘 몰랐던 그들이 만든 특이했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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