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8일 화요일

<세르비안 필름> 표현을 위한 표현이거나, 유희이거나. 계속되는 고민


악명이 자자한 세르비안 필름을 고어영화 보기 소모임에서 함께 보았다.
세 명이서 보았다.
의외로 분위기가 좋아서 다음에 볼 다른 영화도 용기가 생긴다.

영화가 끝나고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마터스>보다 더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왔고
역시 관객들에게 숨쉴 틈 하나 주지 않았다.
표현들이 너무 강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별 말을 못 하고 같이 샐러드를 사먹으러 갔다.

나는 이번에도 <마터스>를 봤을 때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영화 속의 어떤 잔인한 장면들은 그저 표현을 위한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게 고어 영화 특유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걸 매력으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사실 고어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다.
그런 잔인한 장면들이 아주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혐오스러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남고, 다시 찾아보게도 된다.

소모임의 다른 멤버들은 이런 영화들을 확실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고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멤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둘 다 조금씩은 달랐지만 잔인한 장면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는 있었다.
나도 어느정도의 희열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이 이런 영화들을 즐기고 있음을 당당히 인정하는 그들이 어느정도는 대단하다고 느낀다.

사실 이렇게 과하게 잔인한 장면들이 장르적 쾌감을 위해 흔히 쓰인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에 흔쾌히 동참하기가 어렵다.
이걸 보고 즐겨도 되는가?
앞으로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음에 소모임에서 보게 될 영화는 이런 고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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