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7일 목요일

<돈 존> 함께 하는 섹스의 멋짐 + 사이버 섹스



야동에 관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는 볼만했다.
그런데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샌님같다.

영화에는 의미없이 과한 반복이 많았다.
주인공이 계속해서 고해성사를 하고, 성경을 외우며 운동하는 장면들.

샌님같다는 것.
나는 일반적으로 부정당하는 생각들이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야동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게 상식적으로는 안 좋은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걸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존은 아줌마로부터 야동 없이 자위를 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존은 도저히 야동 없이는 자위를 할 수가 없다.
아줌마 말하기를, 그가 그동안 열심히 보던 야동 속 섹스는 실제 여자와 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실제 여자는 야동 속 여자와 다르다.

존이라면 실제 여자보다는 야동 속 여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줌마에게 감정이 생기고 아줌마를 좋아하게 되자 야동 속 여자들이 아닌 아줌마를 택했다.




이쁜이와의 재회.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
이 여자와 헤어져서 슬프기보다는 그 여자의 폐부를 더 잘 알게 되어 좀 안타까운 헤어짐이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헤어지고 나서 오랜만에 만나는 둘.
여자는 그동안 네가 나에게 너무 못 해줬다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뭐든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야동 속 여자들에게 보상을 줄 필요 없어 좋았고
여자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남자를 원했다.
둘이 했던 사랑에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이 빠져 있었다.
상대방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자기 욕구가 더 급급했던 사랑이었다.





엄청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당시 내가 하던 고민이랑 닿아있어서 꽤 괜찮게 보았다.
야동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아쉬운 것이 있다.
실제 여자와 함께! 섹스하는 법을 배워도 야동을 끊고싶지는 않을 것 같다.
사이버 섹스의 장점은 일단 이런 것들이 있다.
1. 성병 걱정이 없다
2. 피임 걱정이 없다
3.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4. 수많은 상대와 해볼 수 있다.
5. 내 여자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2번, 3번의 이유로 아직은 실제 섹스가 어렵다.

1번과 2번, 3번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유이지만 4번과 5번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야동 속 여자를 보고 자위하는 것이 정신적 외도로도 보여질 수 있기 때문.
당장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남자 연예인을 생각하며 자위를 한다면 느낌이 이상하다.
내 경우에는 가끔 여자 연예인을 상상해도 지금 좋아하는 여자친구에 대한 마음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이런 불상사가 있을 수 있다.
야동 속의 행위를 실제 여자친구가 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상대방의 성적 코드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다.
성이라는 것, 특히 구체적인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자유롭게 트기가 어렵다.


섹스 얘기 말고 좀 더 가벼운 키스로 화제를 바꿔 보자.
당연히 섹스보다는 키스에 사람들이 더 호의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키스를 로맨틱하게 묘사하는 드라마, 영화를 보고 우리가 그것을 아름다운 행위로 학습한 것이다.
섹스란 것은 묘사되는 곳이 거의 야동밖에 없다.
섹스의 표준이란 것이 있기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행위가 과장된 야동이나 섹스하는 척만 하는 영상들이나 다들 한 쪽으로만 치우친 느낌이 든다.
섹스는 대체 어디서 배워야 하는 걸까.
후다닥 아무것도 안 알려주면서 성교육은 지나갔다.
사실 키스하는 법도 어디서 제대로 안 알려준다.
드라마가 있기에 우리가 알음알음 터득한 것이다.
실제 섹스가, 로맨틱하게, 드라마나 영화에 담기는 건 언제쯤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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