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일 화요일

<이레셔널 맨> 질문을 던질 자격이 안 돼 있다



폐인처럼 살아가던 에이브라는 인물의 삶은 살인욕구를 느끼면서부터 180% 달라진다.
그는 꽤 도발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면 죽여도 되는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란 있는가?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면 저질러도 되는가?
이런 비상식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데에는 관객의 상식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각오와 확신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에이브라는 사람을 진짜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를 하나의 소동 쯤으로 끝내버린다.
나는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을 보충해 또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고 완전범죄가 가능한데다가 내가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살인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영화는 살인을 미화해버리는 위험한 영역까지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결국엔 관객들이 기존에 가지던 상식이 옳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무책임하다.


그냥 우디 앨런이 선곡하는 재즈 음악들에 얹혀서 흥얼흥얼 피식 하며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우디 앨런은 이제 이런 적당한 영화들만 찍기로 했나 보다.
영화보다는 TV 시트콤으로 보고 싶다.

<마터스>를 보고 바로 관람해서인지 상대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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