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5일 화요일

<비기너스> 열심히 사셨구나.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 <이터널 선샤인>이 막무가내식으로 "그래도 사랑"을 말하는 영화였다면 <비기너스>는 "그래도 사랑"을 외치고도 다시 실패해봤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운 올리버와 애나. 두려워하다 힘을 내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던 이들은 올리버의 아버지 할을 보며 '포기 안 하셨구나' 하고 느낀다.
할은 아내가 암으로 죽자 75세의 나이에 커밍아웃을 하고 4년간의 게이 라이프를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다.

먼저 청혼한 건 네 엄마야. 
난 그랬지, 
"난 당신을 사랑해, 우린 좋은 친구야. 하지만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몰라."
엄마는 이랬지. 
"상관없어, 내가 고쳐줄게."
난 생각했지.
"세상에, 뭐든 해봐야지"

45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만난 남자친구 앤디와 함께 있는 할의 모습을 보며 올리버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고 표현한다.

사랑은 무척 힘든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을 것처럼 사랑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서 망설이며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

<세가지 색 제1편 - 블루/자유>(1) 섬세한 표현


수능이 끝나고 처음으로 본 영화.
버스에서 본 예쁜 여자와 <나쁜 피>의 줄리엣 비노쉬가 너무 닮아서
젊었을 적 줄리엣 비노쉬의 영화가 한 편 보고 싶었다.




익숙치 않은 폴란드 영화여서 그런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라는 감독의 <사랑에 대한 짧은 필름>은 무척 낯선 느낌이었다. 프랑스어로 제작된 <블루> 역시 그랬다. 재미는 없다. 하지만 영화 곳곳의 섬세한 표현들이 눈길을 잡는다. 갑자기 음악이 터져나오며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에 푸른 빛이 드리우거나 페이드 아웃&페이드 인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문득 죽은 가족을 생각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눈 앞이 깜깜해지는 슬픔을 잘 표현해냈다.

'푸른색' 하면 보통 우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블루>의 푸른색은 프랑스 국기의 '자유'를 의미하는 푸른색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아무리 보아도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푸른색을 이미지에 이런 이야기를 가져온 걸까?

아직 폴란드와, 프랑스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와, 세가지 색 삼부작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천천히 알아보자. 다음에 또 다시 볼 것.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스타워즈 시리즈에 작별을 고하며



시리즈물은 처음부터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개봉 2년 전부터 이를 위해 준비하던 나는 큰 실망감만 맛보았다. 스타워즈 4에는 요다도, I'm your father도 안 나온 데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액션도 없었고 내용은 아동층을 대상으로 한듯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미국인들이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그 스타워즈인데!' 하고 스타워즈 5까지 억지로 보았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고전은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하이-엔드 신기술로 주목받은 영화라면 수십년이 지난 지금 보기엔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수십년간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고 액션의 합에도 해당되고 시나리오 작법에도 예외없다.

그러니까.. 그동안 쌓아온 스타워즈의 명성을 쉽게 무시 못 하겠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거다. "이런 액션에는 시대가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태동을 극장에서 지켜본 이들이 느끼는 감흥과, 온갖 영화들이 즐비한 21세기에 모니터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4,5,6을 지켜본 내가 느끼는 감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야 '아 7~80년대에 이런 영화가 있었어?' 하고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7~80년대에 직접 문화적 충격을 겪어봤을 것이다.

아, 물론 스타워즈 에피소드 6에는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말 재미 없었다. 진짜로 이걸 어떻게 재밌게 볼 수 있나. 또 뻔하다. 너무 쉽다. 더 이상 '스타워즈'에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8,9도 전혀 보고 싶지 않다. ㅂㅂ..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남자의 힘

수능 끝나고 학교에서 가장 처음으로 선택한 영화.
3년 전에 비해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지 영화가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남자 영화!
'남자 영화'라는 수식어에 딱 맞는 또 한 편의 영화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남자의 로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범죄와의 전쟁>은 남자의 힘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들고다니던 총알 없는 권총이 실세 없는 그의 권력을 단번에 대변한다.
총알 없는 권총으로 싸우고들 그랬던 수컷의 역사..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빌붙어서 주제넘게 뭔가 해 보겠다는 아저씨.
두꺼비같이 배 불룩 튀어나온 몸집으로 최형배의 부하들에게 오줌발을 맞는 모습.
깡패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완전한 기회주의.

<질투는 나의 힘> 그런 이상한 관계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본 영화.
<느린 여름>이라는 인상적인 단편을 연출했던 박찬옥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자기 여자친구를 앗아간 남자의 직장에 들어간 주인공.
또 다른 여자를 두고 이들은 경쟁 관계에 놓이는가 싶더니
주인공이 먼저 거기서 발을 빼 버린다.
그런 주인공을 꽤 귀엽게 생각하는 그 남자.
주인공은 그의 가족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이런 관계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한 관계이다.
물론 박해일이 문성근의 딸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느껴지긴 하지만
자기 여자친구를 뺏어간 유부남을 증오하긴 커녕 동경하게 된다니.

하지만 생각보다 관계의 밀당에서 오는 긴장감이 덜했던 게 아쉽고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종옥은 별 매력이 없었다.
서영희는 너무 오버하는 과한 연기.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우리 선희> 남자 셋이 모여서 한 여자 얘기를 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선희를 쟁취하는 데 실패한 세 남자가 헛헛한 기운으로 창경궁을 배회하며 선희 얘기를 한다.
아무런 관심 없는 척.

엔딩에서부터 시작한 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세 남자가 창경궁을 거닐며 하는 얘기를 오프닝과 엔딩에 배치해 역순행적으로 구성해 보면 더 재밌지 않을까.. (그런 구성을 홍상수 영화에선 절대 볼 수 없겠지만)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인문 [스무 살의 인문학]





강신주
여러분이 커지면 세계가 가벼워져요. 회사, 학교, 돈이 다 가벼워져요. 반대일 경우 내가 쪼그라들어요. 돈도 커지고, 회사도 커지고, 학교 와서 내가 커졌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내가 작아졌다고 생각하나요? 작아졌으면 학교가 교육을 잘못 시킨 거예요. 내가 약해지면 세계가 커 보여요. 중국 그림들 봤죠? 귀족들은 크게 그리고 노예들은 작게 그러요. 그러면 여러분은 큰가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커야 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커져야 해요. p 48
우리 어머님께서 항상 저한테 그래요. "그게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제가 소설책을 읽을 때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고 해요. 무식한 이야기죠. 그러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어야 하는 거잖아요. 여러분은 자본과 무관한 일들을 구축해내야 해요. 그게 여러분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거예요. p 53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여러분을 잘못 가르치잖아요. 사회가 원하고 자본가들이 원하는 대로 강의를 개설하고 여러분은 또 그걸 들으려고 하죠. 그래서 우울해지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강의가 아니니까. 정말 웃기지 않아요? 여러분이 돈을 내고 수업을 들으면서 내용은 자본가들이 원하는 내용을 듣는 거예요. 내가 대학에 다니면 내가 원하는 강의가 개설되고 재밌는 강의가 나와야 돼요. 대학은 학원처럼 다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강의를 들어야죠. 여러분 대학에 와서 원하는 강의를 들으러 가요? 취업에 도움 되고 스펙에 도움 되는 강의만 들어가죠? 왜 돈 4,000만 원 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강의를 못 들어요?

안도현
지금은 정말 좋은 문학은 골방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광장으로만 치달아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광장이라는 것은 여럿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혼자 사유할 시간이 부족해요. 골방과 광장 사이에서 긴장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은 광장에 관심이 너무 없죠. 오로지 내 내면만으로도 벅차 해요. 나 아닌 바깥에 대한 시각을 키운 사람이 좀 더 오래 좋은 문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남대 교양강좌를 엮은 것으로, 총 10인의 멘토들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나도 이제 스무살이고, 나도 이제 책을 좀 읽어야 한다. 스무 살의 인문학! 왠지 무슨 소리가 쓰여 있을지 뻔하지만 부분부분 괜찮은 말들도 쓰여 있는 것 같아서 읽어 보았다.

열 명의 이야기 중에는 정말 뻔한 말도 적혀 있었고,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고, 정말 듣기 싫은 소리도 적혀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마음에 드는 말들을 추려 보니 대부분이 강신주가 한 말이었다.
강신주. 듣기 좋은 말만 해 줬다. 하지만 경계해야 한다. 듣기 달콤한 말이니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강신주가 한 말들이 내 새로운 무언가를 일깨워 준 듯한 느낌이다. 이게 엄한 데로 튀지 않도록 잘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그저 남들 듣기 좋은 말만 잘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꼭 나한테 좋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 내가 괜한 데 신경쓰는 건 아닌가...


뭐 이런 데 쓰여있는 얘기는 고만고만한 얘기들이니 좀 깊은 책을 파자. 이런 얘기는 한 권이든 두 권이든 세 권이든 비슷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