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일 월요일

<지옥이 뭐가 나빠?> 피바람이 경쾌하게 몰아치는 후반부


친한 형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듣도보도 못한 식의 전개라 많이 당황스러운 영화인데, 휘몰아치는 후반부에선 그 해괴함에 온 몸을 맡기게 된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반복되는 노래 한 곡이 듣기 짜증난다는 것.
또 하나는 여주인공이 안 예쁘고 안 섹시하다는 것.

영화 정말 재밌게 찍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영화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두더지>로 처음 소노 시온을 알게 된 이후로 본 그의 영화들에 실망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 마음에 드는 영화를 하나 찾았다.

<토이 스토리> 장애물 -> 극복 -> 장애물 -> 극복 -> 장애물 -> 극복 (무한반복)



동아리에서 송년회를 하면서 IPTV로 어쩌다 보게 되었다.
다들 깔깔 웃으며 재밌게 보았는데 나는 그러지 못 했다.
기억과는 달리 <토이 스토리>가 그다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A에서 B로 가는 과정을 시간을 끌기 위해 배배 꼰다.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다. 우디가 질투의 대상인 버즈와 함께 위험에 빠지고, 결국엔 집으로 돌아간다.
77분의 러닝타임은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가 싶으면 또 다시 장애물이 생기고, 그걸 또 극복하는 것의 반복이다.
지금 이렇게 나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는 있지만, 영화는 해피엔딩이 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으니 몰입을 하고 싶지가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러한 전개방식을 치밀하게 고민했을 시나리오 작가들이 생각이 났다.

사실 영화 중간에 그만 보고 자러 들어가려고 했는데, 영화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얼떨결에 마지막 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깔끔하게 1편이 끝이 난 것은 굉장한 미덕이다.
2편을 이어서 본다고 해서 나는 그만뒀다.
3편의 결말만으로도 울림이 너무 커서 다른 건 다시 보지 않을 것 같다.

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스크림> 반전을 위한 반전이 뭐가 그리 좋은 건데?



고어영화 소모임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려다가 파일을 못 구해서 본 영화.
호러영화 매니아인 또라이 둘이서 연쇄살인을 벌여 그 중 한 명의 여자친구를 괴롭혔다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흘리는 복선들이 많아 결말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밝은 곳에서 찍혔으며, 주로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식의 호러이다.
주인공들이 10대라 경쾌하다가도 무서운 장면에서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잘 뒤집는다.
하지만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사람도 많아 북적거리고, 조명이 밝고, 배경음악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들었을 법한 음악이었다. 분위기가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다.

결말은 정말 별로였다.
순정남으로 보였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범인이었다!라는 반전인데, 영화 내부에서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영화 속의 논리대로라면 남자친구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데 오로지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굳이 그를 범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반응이었다. '얘가 범인이었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재미있긴 했지만, 뉴타입 호러영화로서의 자의식이 너무 강했다. 계속 대사로 호러영화 얘기를 해서 맥이 빠졌다.

또 로즈 맥고완이라는 배우는 예뻐서 좋았다.

<밤과 안개>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를 마주하다



동아리에서 친한 형이 <밤과 안개>와 <셜록 주니어>를 묶어서 발제했다.
<밤과 안개>는 유대인 학살을 회고하는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학살이 일어났던 공간에 아무도 없고 텅 빈 모습과, 흑백으로 된 처참한 기록물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거기에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깔리는 것이 정말 좋았다.

해외의 고통스러운 역사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를 끝맺는 내레이션이 정말 좋았다.
"휴전이 되었지만 한쪽 눈은 언제나 뜨고 있어야 한다. 막사들 근처 사열하던 운동장 위엔 잡초가 무성하다. 황폐한 이곳엔 아직 묵직한 위기감이 감돈다. 소각로는 더이상 가동되지 않고 나치의 교활함은 오늘날 애들 장난으로 치부되고 있다. 9백만이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들 중 누가 이 흉측한 감시탑 위에서 새로운 사형집행자들의 출현을 경고할 것인가? 우리들과 딴판으로 생겼을까? 우리들 가운데 운좋은 카포들이나 복직된 장교들과 익명의 밀고자들이 어딘가 숨어 살겠지. 아마 믿지 않거나 보는 동안만 믿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여태 우리가 진실된 응시를 통해 살펴본 잔해, 마치 오랜 괴물이 편린 바로 아래를 밟아 뭉개놓은 형상들을... 마치 우리가 본 영상이 과거속으로 잊혀진듯 수용소에서의 재앙이 단번에 영구히 치유된 듯 다시 희망을 잡은 척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일들이 단 한 번, 어떤 장소와 기간에만 있었던 척 할 수 있겠지. 우리 주변에 일어났던 일을 못 본 척, 인류의 끊임없는 울부짖음을 못 들은 척 할 수도 있겠지."
이 말은 우리나라의 과거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리라.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체 이미지들이다.
영화 자체는 이것들을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주려 한 것 같으나, 이런 이미지들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충격이었다.

<두뇌혁명 A.I.> 과학자도 돈에 쪼들리는 한 명의 사람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공돌이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의 고민은 주로 돈이었다.
원제는 Machine of Human Dreams.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제목을 <두뇌혁명 A.I.>로 지은 것 같은데 내용은 제목과 다소 갭이 있다.
이쪽 분야로 갈 사람이라면 한번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전혀 새롭지 않았다



진화의 시작, 반격의 서막에 이은 세번째 혹성탈출 프리퀄이다.
냉정히 말해서 앞선 두 편의 작품에 비해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성탈출 제1편의 연결고리인 바이러스를 설명하기 위한 관습적인 작품에 불과했다.

<반격의 서막>은 파격적이었던 전편에 뒤지지 않게 코바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주인공의 고민을 심화시켰던 것이 기억이 난다.
<종의 전쟁>은? 있으나 마나 한 군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전편과 똑같은 패턴이고, 코바도 주인공의 환상으로 또다시 등장하는데 전혀 새로운 고민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과 유인원 간의 형세가 바뀐 것 밖에는 차이가 없었다. 전편과의 차이점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것 뿐이다. 러닝타임도 긴 영화는 주인공이 장애물 로 가로막힌 미션을 수행하는 것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주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인간 소녀가 나오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캐릭터도 나오고, 착취당하는 유인원들은 씨가 말라가는 인간에게 대항한다.. 시저는 영웅으로 퇴장한다.
뻔하고 당연하다. 지루하고 재미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혹성탈출 시리즈를 좋아하기에 옛날의 혹성탈출들도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일본에 불시착한 미국남녀



좋아하는 형이 발제한 영화이다.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잘 안 간다.
나름의 이유를 말해주긴 했는데 그 당시에도 이해 못 하고 그냥 넘어간 것 같다.
나는 잡지에다 짤막하게 이런 평을 남겼다.


(일본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서양 남녀 둘의 감정이 싹트는 이야기. 내가 일본인은 아니지만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일본 사람들을 이상한 존재로 그린 것이 보기 안 좋았다. “일본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선의를 베푸는 역할로 나왔어야 한다!” 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는 거~)

.멜로 부분에서는 느낀 것이 별로 없었다.
빌 머레이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여자가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쫙 벌리는 스트립바 씬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어딘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컷과 일본의 오타쿠들을 이어붙인 씬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