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0일 수요일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제주도 가던 날

수능 끝나고 학교에서 본 여섯 번째 영화.




한 다섯 번 보았나.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제주도 여행가는 날에 이 영화를 보면 딱 좋을 것 같아서 골랐다. 하지만 나 혼자 볼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적이 있지만 나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여러 사람들한테 추천해왔다. 이번에도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웬만해서는 나 혼자 즐기는 게 좋을 듯. 나도 이젠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보면 진짜 좋다기보단,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에 보는 느낌이다. 나중에 또 다시 보고 싶어지겠지만..

그렇게 바다를 보고 싶어하던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바다를 보러 여행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리얼 술래잡기> 미소녀란 없다


맥주 먹으면서.
<두더지>가 정말 좋았던 나는 소노 시온의 차기작을 보았다.






시나리오를 영화로 옮기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았다. 시나리오로 읽었을 땐, 좀 덜 혼란스러웠겠지?

영화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운 이야기만 되풀이하다 끝에 가서야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소녀만이 등장하는 잔혹한 서바이벌의 세계는 미래 세계의 게임 속 세상이었다. 그 곳에서 탈출한 미츠코가 보게 된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 게임 캐릭터를 현실화해서 그녀들을 잠자리 상대로 하는 나쁜 아저씨들의 세계.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여자들이 대상화되는 이 짜여진 세계에서 미츠코를 비롯한 여자 주인공(그러나 남자 세계의 조연)들은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순백의 도화지같은 눈밭에서 일어나 프레임 바깥으로 달려간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봤더라면 좀 더 나았으려나. 등장인물들이 아무 이유없이 휙휙 바뀌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등장하는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많이 혼란스러웠다. 미소녀들의 몸통이 쑥 잘려나가는 그런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라고.. 하는 이야기. 타겟층이 너무 확고한데 그 타겟층이 보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이야기. <퍼니 게임>이 생각난다. 담고 있는 메시지를 떠나서 결정적인 차이는 그 영화가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호흡으로 진행되었느냐 아니냐인 것 같다.

<대호> CG의 문제


12월 16일. 팟캐스트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메가박스 센트럴 부띠끄관에서..




영화 후반부. 최민식과 애꾸눈 대호 사이의 과거 플래시백에 이어 최민식이 아들의 시체를 두고 오열한다. 감정을 이만큼 끌어올린 장면에다가 그대로 비슷한 장면을 붙여놓았다. 여러 모로 실망스런 영화지만 이 장면에서 <대호>의 각본가이자 연출자인 박훈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저만치 떨어졌다.

<대호>의 CG는 매우 실망스럽다. 아예 새로운 CG세계에 등장하는 새로운 크리처들과 다른 점이 뭔가 하면, 부자연스러움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과 가상의 동물의 움직임 중에서 우린 실존하는 동물의 움직임을 더 잘 안다. 그렇기에 실존하는 동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더 쉽게 알아차린다. 내가 본 <대호>의 가장 큰 단점은 부자연스러운 CG 호랑이다. CG를 전문적으로 알지 못 하나, CG로 표현된 동물 특유의 '과한 부드러움'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나는 이 부자연스런 호랑이를 보며 '부자연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감정이입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이런 호랑이의 '감동을 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겨우겨우 보고 나니 그 다음엔 최민식이 울었다. 그냥 운 것도 아니고 아들의 시체 앞에서 울었다. 감정의 강도가 센 장면들을 연속 배치하는 건 피하는 게 좋았을 텐데. 이미 지겨울대로 지겨웠던 나는 거기서 그만 지쳐버렸다.

CG만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고질라>같은 착한 괴수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죽음에서는 아무것도 안 느껴졌다. 정석원 캐릭터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과거사가 알고 싶었다. 러닝타임이 짧은 편도 아니다. 지리산의 겨울을 이길 수 없다는 일본 고관의 말이 어쩜 그리 영화를 허무하게 만들었던지.


<악마를 보았다> 각본과 <부당거래> 각본, <신세계> 각본 연출의 박훈정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았으니 당연히 기대가 이만치 올라 있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큰 법. 그러나 박훈정 감독의 영화라는 걸 차치하고서도 이 영화는 별로였다. 가장 큰 불만은 CG였다.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스누피:더 피너츠 무비> 짧아서 아쉬운


12월 24일. 친구 두 명과 함께 롯데시네마 서울대입구. 끝나고선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2015년 내가 기대했던 작품들은 다 별로였다. 스누피 또한 2015년 기대작.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제대로 고르지 못 해 슬프다.

<스누피:더 피너츠 무비>는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극장판으로 끌고 가기엔 너무 이야기가 단촐하다. 오프닝으로 등장하는 블루스카이 사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자잘한 쿠키영상들을 빼면 러닝타임도 짧다. 스누피가 레드 바론과 싸우는, 뻔하디 뻔하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까지 빼면 더더욱 짧다. 기대했던 것은 패배자의 정서였다. 항상 실패만 하는 아이 찰리 브라운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고 있었지만 너무 짧았다.

애들 보는 영화를 애들 있는 극장에서 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중간에 시끄럽게 굴거나 지루해서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광경을 생각했지만 별 시덥잖은 개그에도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 옆에 있다 보니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게 어디야~"
극 초반 연을 날리다 실패하는 찰리 브라운에게 위로를 건네는 라이너스. 이 대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찰리 브라운의 짝사랑, 빨간머리 소녀는 찰리 브라운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정직하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인품을 볼 줄 아는 여자였던 것이다.
고백. 성공. 우와! 하고 끝이 나는 것이 심심해서 아쉬웠지만
찰리 브라운에게 네가 헛되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 뭉클했다.
큰 것은 바라지 않고, 모두가 착하게만 자라준다면 참 좋을텐데.

<나이트 크롤러> 반어적 연출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본 세 번째 영화.
무슨 영화를 보냐는 선생님의 말에 한 친구는 "기레기 영화요!" 하고 대답했다.

결말을 보고선 당황했다.
"권선징악같은 건 없는 거야? 응? 이렇게 끝나는 거야?"




<나이트 크롤러>를 본다면 순간순간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주인공 루이스 블룸을 무감각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무감각한 것과는 좀 다르다. 그는 목표가 뚜렷하며, 감정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다(감정을 굳이 표현하려 들지 않을 뿐). 방향이 뒤틀려 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진취적인 태도, 참 좋은데 그 방향이 잘못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반사회적 인격장애,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소시오패스를 소시오패스적으로 연출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트 크롤러>는 그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재밌는 사례이다. 영화 속의 인물이 그러한 것처럼, 영화의 형식 또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건이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삽입되는 음악은 과하게 밝고 평온하다.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의도적으로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루이스 블룸은 자신의 회사 '비디오 프로덕션 뉴스'의 규모를 더 키우고, 사원들에게 그럴싸한 말들을 하고선 밤거리의 도로로 흩어진다. 그 다음으로, 신나는 음악이 깔리며 크레딧이 올라간다. 루이스 블룸을 징벌하지 않고 끝이 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나이트 크롤러>의 반어적 연출이 대책 없이 끝나는 권선징악식의 이야기보다 훨씬 가치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권선징악은 딱 거기서 적을 물리치고 끝내지만, 현실은 안 그렇지 않은가. 관객이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을 받는다면 현실이 조금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식의 결말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영화에서 성사시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 이를테면 <베테랑>이나 <내부자들>.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으로 작용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있지 않을까?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어린왕자> '어른'이 보기엔,

2015년 12월 29일. 2015년 마지막 영화. 메가박스 코엑스.
나는 책 [어린왕자]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어릴 적 읽었던 [어린왕자]라는 소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으로 글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숫자'로 상징되는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조종사. 다른 세상에서 온 것만 같은 어린왕자를 만나 그의 여행담을 듣는다. 초등학생 때 했던 독서논술을 통해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면 달리 보이는 책'이라고 했다. 대충 이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책 [어린왕자].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늙은 조종사의 옆집에 이사온 소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소녀가 살아온 세상은 딱딱하고 네모반듯한 규칙적인 삶이고, 늙은이가 들려주는 것은 종이 질감의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후반부에 들어서선 '원작 파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생각하던 [어린왕자]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녀는 위독해진 조종사를 대신해 직접 비행기를 몰고 어린왕자를 찾아간다. 어린왕자는 이미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되어 장미에게 돌아가려던 자신의 과거를 싹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소녀는 다 커버린 어린왕자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동심을 일깨워 그를 그가 돌아가려던 소행성으로 데려다 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감성'이고 뭐고 없고, 원작의 깊이도 이렇게 얄팍한 수준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는 매우 극단적이다. 아이를 마음 속에 품고 자라는 것과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 사이에서 판단의 여지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아이였을 때를 기억하라 강요한다. 영화 속의 어른 세상은 죄다 딱딱하고 우울하고 칙칙하다. 또 영화 속 어른들은 죄다 속내가 뒤틀려 있고 하는 말은 다 우스꽝스러운 말들 뿐이다. 영화는 무조건 어른처럼 사는 것은 옳지 못하고 아이처럼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잘라낸다. 이로 인해 이 영화에서 지칭하는 '어른'들이 '어른' 세계가 부정당하는 것을 자기 세계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매우 유치한 비교를 이 영화가 했다. 굉장히 설득력 없다.

'악당'들을 너무 이상하게 만들어놓기도 했거니와, 그 반대편도 이상하다. 장미와 여우가 어떤 캐릭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작을 자세하게 기억하진 못 하지만, 장미가 말하는 '욕심'과 여우가 말하는 '우정'의 의미가 이 영화에서 얼렁뚱땅 그려진 것은 확실하다. 그럴듯한 뜬구름 잡는 대사들밖엔 없다. 원작도 이런 내용이었나? [어린왕자]가 희생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영화가 말하는 동심의 상징이 [어린왕자]여야만 했는가?


2016년 1월 10일 일요일

<암살> 스포일러를 들어도 재밌는 이유

1월 9일 저녁 시네마테크 KOFA
최동훈 감독, 오동진 평론가 GV
2016년에 본 영화로는 처음으로 쓰는 글.






분명 스포일러를 들은 영화이건만 재밌었다. 지금까지 본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도둑들>, <암살> 두 편. 최동훈 감독은 처음부터 누가 밀정인지를 까버렸고, 쌍둥이 캐릭터의 존재를 관객들이 일찍 스스로 알아차리게끔 만들었다. 외부와 내통하는 스파이,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쌍둥이 캐릭터. 손쉽게 서스펜스를 연출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암살>의 반전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도둑들>을 본지가 꽤 되어서 틀린 기억일지 모르나.. '한 방'을 먹이는 영화가 아니었다. 준비 준비 준비 땅! 하는 식이 아니라 준비 땅 준비 땅! 하는 식. 등장인물들이 작전 수행하는 타이밍이 2시간짜리 영화치고 좀 이르다 싶을 때, 첫 게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그 다음 본 게임을 준비한다.
<암살>도 그랬다. 모든 인물이 모이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첫 작전. 풀리지 않은 떡밥도 여러 개. 보란듯이 첫 게임은 실패하고 다음 게임이 시작된다.

반전에 매달리지 않고, 딱 한 순간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내가 본 최동훈 영화 두 편의 미덕이었다. 스포일러를 들으면 재미가 싹 사라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암살>에는 '결정적 스포일러'가 없다. 결정적 스포일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작법이라면, 꼭 배우고 싶다. 스포일러를 들어도 재미가 있다는 건, 그냥 그 자체로 '재미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좋은 상황. 대사.. 대사의 맛은 기대보단 아쉬웠다. 아무래도 떠벌떠벌 하는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가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도둑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씹던껌(김해숙)이 죽을 때. 차내에 카메라를 달아 촬영하는 차사고 장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니에요, 내가 꿈을 잘못 샀어요.."라는 대사도 참 좋았고..
<암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감(오달수)의 작별. "3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 하는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한 번 더 등장하는 것이, 느낌이 묘하다. 해방 직후 김원봉이 무수한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잃어간 이들을 기리는 의식 비슷한 것을 치르며 김구에게 했던 "이 사람들도 다 잊혀지겠죠?"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직접 제시해 주길 바라는 것 같은..

<암살>에 대한 안 좋은 평을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낮았는데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을 하나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최동훈 감독의 말에선 느낄 점들이 많았다. 오락영화 찍는 감독이라고 내심 만만하게 봤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그런 색안경은 싹 벗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