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어린왕자> '어른'이 보기엔,

2015년 12월 29일. 2015년 마지막 영화. 메가박스 코엑스.
나는 책 [어린왕자]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어릴 적 읽었던 [어린왕자]라는 소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으로 글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숫자'로 상징되는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조종사. 다른 세상에서 온 것만 같은 어린왕자를 만나 그의 여행담을 듣는다. 초등학생 때 했던 독서논술을 통해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면 달리 보이는 책'이라고 했다. 대충 이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책 [어린왕자].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늙은 조종사의 옆집에 이사온 소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소녀가 살아온 세상은 딱딱하고 네모반듯한 규칙적인 삶이고, 늙은이가 들려주는 것은 종이 질감의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후반부에 들어서선 '원작 파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생각하던 [어린왕자]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녀는 위독해진 조종사를 대신해 직접 비행기를 몰고 어린왕자를 찾아간다. 어린왕자는 이미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되어 장미에게 돌아가려던 자신의 과거를 싹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소녀는 다 커버린 어린왕자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동심을 일깨워 그를 그가 돌아가려던 소행성으로 데려다 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감성'이고 뭐고 없고, 원작의 깊이도 이렇게 얄팍한 수준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는 매우 극단적이다. 아이를 마음 속에 품고 자라는 것과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 사이에서 판단의 여지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아이였을 때를 기억하라 강요한다. 영화 속의 어른 세상은 죄다 딱딱하고 우울하고 칙칙하다. 또 영화 속 어른들은 죄다 속내가 뒤틀려 있고 하는 말은 다 우스꽝스러운 말들 뿐이다. 영화는 무조건 어른처럼 사는 것은 옳지 못하고 아이처럼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잘라낸다. 이로 인해 이 영화에서 지칭하는 '어른'들이 '어른' 세계가 부정당하는 것을 자기 세계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매우 유치한 비교를 이 영화가 했다. 굉장히 설득력 없다.

'악당'들을 너무 이상하게 만들어놓기도 했거니와, 그 반대편도 이상하다. 장미와 여우가 어떤 캐릭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작을 자세하게 기억하진 못 하지만, 장미가 말하는 '욕심'과 여우가 말하는 '우정'의 의미가 이 영화에서 얼렁뚱땅 그려진 것은 확실하다. 그럴듯한 뜬구름 잡는 대사들밖엔 없다. 원작도 이런 내용이었나? [어린왕자]가 희생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영화가 말하는 동심의 상징이 [어린왕자]여야만 했는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