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0일 일요일

<암살> 스포일러를 들어도 재밌는 이유

1월 9일 저녁 시네마테크 KOFA
최동훈 감독, 오동진 평론가 GV
2016년에 본 영화로는 처음으로 쓰는 글.






분명 스포일러를 들은 영화이건만 재밌었다. 지금까지 본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도둑들>, <암살> 두 편. 최동훈 감독은 처음부터 누가 밀정인지를 까버렸고, 쌍둥이 캐릭터의 존재를 관객들이 일찍 스스로 알아차리게끔 만들었다. 외부와 내통하는 스파이,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쌍둥이 캐릭터. 손쉽게 서스펜스를 연출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암살>의 반전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도둑들>을 본지가 꽤 되어서 틀린 기억일지 모르나.. '한 방'을 먹이는 영화가 아니었다. 준비 준비 준비 땅! 하는 식이 아니라 준비 땅 준비 땅! 하는 식. 등장인물들이 작전 수행하는 타이밍이 2시간짜리 영화치고 좀 이르다 싶을 때, 첫 게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그 다음 본 게임을 준비한다.
<암살>도 그랬다. 모든 인물이 모이지 않은 상태로 시작된 첫 작전. 풀리지 않은 떡밥도 여러 개. 보란듯이 첫 게임은 실패하고 다음 게임이 시작된다.

반전에 매달리지 않고, 딱 한 순간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내가 본 최동훈 영화 두 편의 미덕이었다. 스포일러를 들으면 재미가 싹 사라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암살>에는 '결정적 스포일러'가 없다. 결정적 스포일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작법이라면, 꼭 배우고 싶다. 스포일러를 들어도 재미가 있다는 건, 그냥 그 자체로 '재미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좋은 상황. 대사.. 대사의 맛은 기대보단 아쉬웠다. 아무래도 떠벌떠벌 하는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가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도둑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씹던껌(김해숙)이 죽을 때. 차내에 카메라를 달아 촬영하는 차사고 장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니에요, 내가 꿈을 잘못 샀어요.."라는 대사도 참 좋았고..
<암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감(오달수)의 작별. "3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 하는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한 번 더 등장하는 것이, 느낌이 묘하다. 해방 직후 김원봉이 무수한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잃어간 이들을 기리는 의식 비슷한 것을 치르며 김구에게 했던 "이 사람들도 다 잊혀지겠죠?"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직접 제시해 주길 바라는 것 같은..

<암살>에 대한 안 좋은 평을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낮았는데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을 하나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최동훈 감독의 말에선 느낄 점들이 많았다. 오락영화 찍는 감독이라고 내심 만만하게 봤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그런 색안경은 싹 벗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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