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8일 토요일
<블레이드 러너> 단순하고 허술한
내가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 영화와는 다른 동명의 영화를 본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영화는 정말 별로였다. 내용은 너무 단순하고 허술하기까지 하다.
단순
블레이드 러너가 있고 레플리컨트가 몇 명 있다. 한 레플리컨트를 좋아하게 된다. 한 레플리컨트는 블레이드 러너와의 대결 끝에 죽고 만다.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죽음을 앞둔 레플리컨트는 자신의 이식된 기억을 진짜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기는 인간을 용서하는 능력까지 가졌다며. 별 거 없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단순하다 단순해..
허술
레플리컨트를 인간과 구분해 제거하는 경찰이 필요해질 정도로 레플리컨트들이 사실적이었던 건 단지 레플리컨트 회사 회장의 예술적 욕심때문이었나? 레플리컨트가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세상이라는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들이 사람처럼 생각을 하고,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사람의 피부를 가지고 사람처럼 움직여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분해내는 신문은 참신하긴 하나 다른 기술력이 월등함에도 이러한 결점을 내버려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액션
잠이 왔다.
볼거리
어둡고.. 비내리고.. 우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도시. 각국의 문화가 뒤섞인 광경. 별 것 없었다.
이 영화에 대해선 더 이상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영화 끝나고 나서도 정말로 이게 <블레이드 러너>가 맞나 싶어 인터넷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강제로 봐야 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안녕히.
<서유기 - 월광보합> 영화와 웃음에 대한 가벼운 메모
주성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갑자기 어! 하고 생각이 나서 충동적으로 보게 되었다.
서유기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기에 영화는 내용보다는 코메디에 집중한다.
주성치는 웃긴 와중에도 슬픈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하는 사람.
상편만 떼놓고 보면 내용이 완결성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코메디다.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 비평적 관점에서 주성치의 영화와 그를 따르는 팬들을 읽어내기란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주성치 영화를 비평할 때에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 영화 비평가들이 코미디 영화를 못 읽는 건 아닐테고.. 어쩌면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들이 과소평가 받는 것은 그 웃음을 가지고 할 이야기가 더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장면 웃겼지. 하하하.. 영화를 본 관객들의 깊은 생각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웃음이라면 '가벼운' 웃음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나? 분명 다른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웃음이 웃음 그 자체가 아닌 사회 비판이나 의견 피력 등의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나는 벌써부터 거부감이 든다(이 말은 내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읽어도 좋다). 수많은 영화들이 코메디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걸작이 되지는 못 한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코메디는 무언가를 추가로 이끌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끝났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엄숙한 평론가들에게 적합한 코메디는 뭘까? 영화에서 코메디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앉을 의자란 없는가? 영화와 웃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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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화> 윤성호, 구교환
1. 백역사
윤성호 감독의 영화다! 영화!
영화란 것을 그리 대단한 것으로 소비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윤성호 자신도 이제는 영화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섞이는 걸까?
그래도 언젠가는... 멋지게 장편영화로 컴백하길 기다리고 있다.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연출력이 좋았던 작품이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영화 보다 모텔 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잘 찍을 수가 있을까!
자전거를 타는 남자, 귀엽게 흘러나오는 음악, 어수룩한 분위기.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배우 의상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갈아입었다.
2. 뇌물
<오늘 영화>를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작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이 단편의 표절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뇌물>을 보고 나니 형식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형식을 달리 구상중이다.
세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별로였다.
결국에는 영화감독과 배우의 스캔들, 비평가 조롱 정도의 농담선에서 끝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여배우가 예뻐서 다행이었지 늘어지는 술자리 씬, 선배 감독에 대한 열등감, 묘한 성적 분위기는 뻔하고 유치하기까지 했다.
마트료시카같은 형식과 내용도 아예 따로 논다.
형식에 맞는 내용, 아니면 내용에 맞는 형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3. 연애다큐
연출이 아쉬웠지만 세 단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실제 등장인물들이 들고 찍은 영상을 삽입하고 본명을 사용해 마치 실제같은 느낌을 주지만
인공적인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감정이 깨진다.
처음에는 실제 사람들의 연애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100%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찍었다면 어땠을까?
페이크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실제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잠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극영화다.
연애 다큐를 찍는다는 설정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들이 부족해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두 연인이 이별하게 되었던 그 이유가 납득이 안 갔다. 정말 예술취향 때문에?
마지막 장면.
산산이 부서진 도자기 조각들을 본드로 붙여 온 교환.
여자친구 앞에서 자신이 생각해낸 그 도자기의 의미를 말한다.
"안 예쁘잖아.."
와장창!(이 부분에서 도자기가 좀 더 멋지게 깨졌더라면.. 하는 아쉬움)
이 대사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구교환이라는 배우이자 감독이 앞으로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2016년 10월 1일 토요일
<강원도의 힘> 그 곳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다
5월 말. 동아리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발제를 맡은 영화이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일 거라 생각해서 이 영화를 골랐다.
특별히 <강원도의 힘> 평론집도 빌려서 읽었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 다 읽지 못 하고 모임에 갔다.
1. 각자가 미리 문장으로 정리한 줄거리를 이야기해 봅시다.
나는 이 영화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것을 보았더라도 그 내용을 글로 옮기는 데서 이 영화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궁금했다.
2. 인상적인 말과 장면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보시나요?
중심 서사에 개입하지 않는 무의미한 사건들이 짜여지지 않은 느낌을 줘서 사실성과 엮어보고 싶었다.
4. 상권과 지숙의 캐릭터에 대해 탐구해 봅시다.
5. 이 영화는 어떻게 끝났나요?
금붕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사라진 것을 보여주고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잠에서 깨는 듯한 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6. 이 영화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 영화의 사랑은 끝내 꽃피지 못 한다. 사랑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을 느꼈다.
7. 영화 속 죽음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고3의 추락, 난간에 매달린 경찰, 눈이 예쁜 여자, 낙태된 아이, 금붕어의 죽음, 절벽 위 부부
8. 영화적 세련됨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영화의 간접적인 표현, 즉 돌려말하기를 세련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 법. 세련된 영화를 찍으려면 어떻게 찍어야 할까?
9. 반복의 모티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홍상수 영화 하면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반복. 반복은 어떤 효과를 창출하는가?
10. 강원도의 힘이란 뭘까요?
제목에 대해서.
다시 본 <강원도의 힘>은 생각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영화의 섬세한 곳 구석까지 보며 감동을 느끼던 나는 꽤 무미건조하게 앉아있었다. 동아리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본 사람들이어서 그 영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또 남자들은 다 이러냐.. 이런 얘기. 이 이후에 발제했던 영화인 <트라이브>와 마찬가지로 발제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이 이후로 나는 <강원도의 힘>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유의 언덕>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빨리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보지 않았다. 홍상수의 영향 아래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내기란 무지 어려울거다.
<아버지의 이메일> 기억이 나지 않는 다큐
몇년째 밀리기만 하는 영화 리뷰를 이제는 끝내려고 그동안 가장 오래 묵혀두었던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에 대한 글을 적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할 말은 딱히 없다.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그렇게 특별한 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영화를 졸면서 봐서 딱히 할 얘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버지의 이메일>을 생각하면 그 이후에 보았던 <마이 플레이스>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둘 다 가족에 대한 성찰을 다룬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인데, 후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
연출 때문이었나?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장면은 영상에 특수효과를 입힌 연출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이메일>의 영상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면서 든 '다큐멘터리의 열쇠는 연출이다'라는 생각과 상통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개인적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중이다.
촬영은 한 달째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어느정도 촬영분이 생겨 연출을 고민해야 되는 시기이다.
과연 내 영화에 필요한 연출은 어떤 걸까.
다큐멘터리 영화를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
<비디오드롬> 숨쉬는 기계
83년도에 나온, 미래의 미디어를 걱정하는 영화이다.
중심 소재는 VHS 비디오테이프.
꽤나 촌스러워 보이지만 지금으로 치자면 스마트폰의 위험성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는 것과 같다.
영화는 주인공 맥스의 환각과 뒤섞여 점점 난해해진다.
기계장치와 인간 신체의 결합, 그리고 마치 숨쉬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기계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극장에서 재감상
8월 13일. 인디플러스에서 독립영화 특별상영전을 해서 동기들과 함께 관람했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여러 번 보았지만 극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볼 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미세한 줌인이 가장 거슬렸다.
곳곳에 배치된, 중심 서사와는 무관한 에피소드들은 다시 보니 별로였다.
스토리는 너무 빈약하다.
윤성호 감독이 언젠가는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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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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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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