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8일 월요일
EIDF2017 <레이건 쇼> TV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대통령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임기 중 방송되었던 TV 화면들을 통해 그를 재구성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연출하면서 더해진 내레이션이 없고 TV 뉴스 등 자료화면의 아나운서가 했던 내레이션으로 사운드가 꽉 찬 것이 특이했다.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제시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러닝타임은 길지 않은 75분이지만 꽤 지루했다.
하지만 잘 알지 못 했던 레이건 대통령의 핵무기 협상 관련 업적과 정치 전략을 지켜보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EIDF 2017 with 정성일
EIDF 2017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내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린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셋이서 영화를 관람하고 정성일의 토크를 들었다.
다행히도 토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2시간을 넘지 않았다.
이번에 토크를 들으며 앞으로 데이빗 린치에 관한 정성일의 해설은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난번 <블루 벨벳>을 보고 강의를 들을 때와 똑같은 걸 느꼈다.
나는 데이빗 린치가 좋아서, 그리고 더 좋아하고 싶어서 GV에 참석했지만 정성일씨가 말한 것들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린치를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돈 존> 함께 하는 섹스의 멋짐 + 사이버 섹스
야동에 관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는 볼만했다.
그런데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샌님같다.
영화에는 의미없이 과한 반복이 많았다.
주인공이 계속해서 고해성사를 하고, 성경을 외우며 운동하는 장면들.
샌님같다는 것.
나는 일반적으로 부정당하는 생각들이 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야동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게 상식적으로는 안 좋은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걸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존은 아줌마로부터 야동 없이 자위를 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존은 도저히 야동 없이는 자위를 할 수가 없다.
아줌마 말하기를, 그가 그동안 열심히 보던 야동 속 섹스는 실제 여자와 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실제 여자는 야동 속 여자와 다르다.
존이라면 실제 여자보다는 야동 속 여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줌마에게 감정이 생기고 아줌마를 좋아하게 되자 야동 속 여자들이 아닌 아줌마를 택했다.
이쁜이와의 재회.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
이 여자와 헤어져서 슬프기보다는 그 여자의 폐부를 더 잘 알게 되어 좀 안타까운 헤어짐이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헤어지고 나서 오랜만에 만나는 둘.
여자는 그동안 네가 나에게 너무 못 해줬다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뭐든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야동 속 여자들에게 보상을 줄 필요 없어 좋았고
여자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남자를 원했다.
둘이 했던 사랑에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이 빠져 있었다.
상대방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자기 욕구가 더 급급했던 사랑이었다.
엄청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당시 내가 하던 고민이랑 닿아있어서 꽤 괜찮게 보았다.
야동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아쉬운 것이 있다.
실제 여자와 함께! 섹스하는 법을 배워도 야동을 끊고싶지는 않을 것 같다.
사이버 섹스의 장점은 일단 이런 것들이 있다.
1. 성병 걱정이 없다
2. 피임 걱정이 없다
3.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4. 수많은 상대와 해볼 수 있다.
5. 내 여자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2번, 3번의 이유로 아직은 실제 섹스가 어렵다.
야동 속 여자를 보고 자위하는 것이 정신적 외도로도 보여질 수 있기 때문.
당장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남자 연예인을 생각하며 자위를 한다면 느낌이 이상하다.
내 경우에는 가끔 여자 연예인을 상상해도 지금 좋아하는 여자친구에 대한 마음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이런 불상사가 있을 수 있다.
야동 속의 행위를 실제 여자친구가 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상대방의 성적 코드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다.
성이라는 것, 특히 구체적인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자유롭게 트기가 어렵다.
섹스 얘기 말고 좀 더 가벼운 키스로 화제를 바꿔 보자.
당연히 섹스보다는 키스에 사람들이 더 호의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키스를 로맨틱하게 묘사하는 드라마, 영화를 보고 우리가 그것을 아름다운 행위로 학습한 것이다.
섹스란 것은 묘사되는 곳이 거의 야동밖에 없다.
섹스의 표준이란 것이 있기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행위가 과장된 야동이나 섹스하는 척만 하는 영상들이나 다들 한 쪽으로만 치우친 느낌이 든다.
섹스는 대체 어디서 배워야 하는 걸까.
후다닥 아무것도 안 알려주면서 성교육은 지나갔다.
사실 키스하는 법도 어디서 제대로 안 알려준다.
드라마가 있기에 우리가 알음알음 터득한 것이다.
실제 섹스가, 로맨틱하게, 드라마나 영화에 담기는 건 언제쯤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2017년 8월 11일 금요일
<개그맨> 이상한 매력
어쩌다 이걸 볼 생각을 했더라?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윤성호 감독이 좋아하는 배창호의 <러브 스토리>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보던 중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을 발견했다.
영화감독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길래 바로 보았다.
찰리 채플린을 빼다박은 개그맨 '이종세'.
영화를 연출한 이명세 감독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안성기가 연기했다.
열심히 얼굴을 망가뜨려가며 공연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기게 생겼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전혀 안 웃겼다.
지금의 품위있는 안성기의 모습이 겹쳐져서인지 더욱 안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쓸쓸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가 공연할 때 카메라가 관객들을 잡아주는 건 단 한 컷뿐이다.
예산상의 이유로 한 장면밖에 못 넣은 것이겠지만, 공허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런 그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허풍을 벌이고 다닌다.
어째서 이렇게 안 웃긴 사람이 개그맨인지도 모르겠고,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탈영병이 건네준 소총 두 자루가 생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선영은 이종세, 그리고 이발소에서 일하는 뚱보 문도식과 함께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한 강도를 벌인다.
꽤나 눈에 띄는 차림을 하고서도 잡히지 않는 삼인조(?)
어쩌다 그들은 경찰로 위장한 강도에 의해 번 돈을 거의 다 잃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곧 전국적으로 삼인조의 정체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고, 문도식은 도주 중 실수로 사람 한 명을 쏴 죽인다.
이들은 결국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지만, 이미 무장경찰들에 의해 포위된 후이다.
문도식의 밀고를 알게 된 이종세는 소총 두 자루로 결투를 하던 중 문도식의 배신으로 인해 사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한낮의 꿈처럼 끝이 난다.
이상한 매력이 있다.
정말 노잼 영화인데 이상하게 쉽게 잊히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들이 강도를 하는 장면들 중간에 뜬금없이 나오는 공연 장면.
황신혜는 지금이라면 씨알도 안 먹힐 노래실력과 발음으로 Suzie Q를 부르고
안성기와 배창호는 열심히 준비했겠지만 합이 안 맞는 율동을 선보인다.
이 장면 정말 이상하다.
한 장면이라도 환호하는 관객을 비춰줄 법 한데 카메라는 무대만을 향한다.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워 마치 이종세의 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을 당시의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즐거운 한 편의 쇼였을까?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이종세의 텅 빈 내면세계를 보았을까?
이명세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장면을 넣었을까?
영화 정말 재미는 없지만 이상하게 매력이 있다.
정말 이상하다.
이명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이럴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재미가 너무 없기에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는 건 주저가 된다.
<개그맨>이 너무 낡고 낡은 옛날 개그로 드문드문 차 있어 다른 영화들이 걱정이 된다.
대체 왜 영화감독을 하려는 주인공이 개그맨인 것이고, 또 대체 왜 갑자기 탈영병이 나타나서 소총을 주고 그걸로 은행강도를 하는가?
안 어울리는 세 가지 요소들의 조합이다.
뭘 하고 싶었는지 통 감이 안 온다.
갑자기 서늘하게 끝나는 결말은 또 뭐람?
컬트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더욱 관심이 간다.
황신혜가 너무 예쁘다. <기쁜 우리 젊은 날> 1년 뒤에 찍었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화들도 더 찾아보고 싶다.
어쩌면 옛날의 영화가 더 다양했는지도 모른다.
돈을 버는 법을 잘 몰랐던 그들이 만든 특이했던 영화들..
2017년 8월 8일 화요일
<세르비안 필름> 표현을 위한 표현이거나, 유희이거나. 계속되는 고민
악명이 자자한 세르비안 필름을 고어영화 보기 소모임에서 함께 보았다.
세 명이서 보았다.
의외로 분위기가 좋아서 다음에 볼 다른 영화도 용기가 생긴다.
영화가 끝나고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마터스>보다 더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왔고
역시 관객들에게 숨쉴 틈 하나 주지 않았다.
표현들이 너무 강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별 말을 못 하고 같이 샐러드를 사먹으러 갔다.
나는 이번에도 <마터스>를 봤을 때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영화 속의 어떤 잔인한 장면들은 그저 표현을 위한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게 고어 영화 특유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걸 매력으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사실 고어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다.
그런 잔인한 장면들이 아주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혐오스러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남고, 다시 찾아보게도 된다.
소모임의 다른 멤버들은 이런 영화들을 확실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고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멤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둘 다 조금씩은 달랐지만 잔인한 장면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는 있었다.
나도 어느정도의 희열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이 이런 영화들을 즐기고 있음을 당당히 인정하는 그들이 어느정도는 대단하다고 느낀다.
사실 이렇게 과하게 잔인한 장면들이 장르적 쾌감을 위해 흔히 쓰인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에 흔쾌히 동참하기가 어렵다.
이걸 보고 즐겨도 되는가?
앞으로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음에 소모임에서 보게 될 영화는 이런 고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2017년 8월 7일 월요일
<터스크> 사진만 간직하고 싶다
동아리 선배가 밥을 먹다가 이 영화 얘기를 들려줬다.
다리를 자르고 살을 기워서 사람을 바다코끼리로 만들어버리는 내용.
줄거리에 적힌 '바디 호러'라는 문구만 보고 갔다가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사람의 몸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있었다.
며칠 안 지나서 바로 <터스크>를 다운받아 보았다.
내게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의 바다코끼리의 생김새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꽤 무섭지만
영화 자체가 무섭진 않다.
딱히 플롯이 긴장감 있게 짜인 것도 아니고
바다코끼리 분장은 고무로 만든 옷 티가 너무 난다.
그리고 영화는 바다코끼리 이야기 말고 딴 얘기를 많이 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경위가 궁금하지만 굳이 알아보고 싶진 않을 정도이다.
느낄 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 영화였다.
바다코끼리 사진만 몇 장 간직하고 싶다.
+조니 뎁이 언제 나오나 하고 봤는데 이미 형사 역으로 나왔었다.
조니 뎁인지 몰라볼 정도로 연기도 못 하고 분장도 이상하다.
<범죄의 재구성> 낡은 오락영화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이다.
최동훈을 좀 좋아해서, 즐기고 싶어서 이 영화를 골랐다.
영화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2004년에 찍은 오락영화인데
그 시대 우리나라 영화들은 죄다 이랬나 싶을 정도로 올드하다.
어쩌면 그 시대에 가장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나중에 보았을 때 가장 올드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도둑들>이라는 영화와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내용이지만
스케일은 많이 작고 아직은 위트도 부족하다.
<범죄의 재구성>에 드러난 매력들을 그대로 극대화시킨 것이 <도둑들>이라고 보면 된다.
<범죄의 재구성>같은 영화는 사실 <도둑들>을 본 관객이라면 볼 필요가 없다.
더 좋은 기술에 더 세련된 유머코드가 담긴 오락영화 보면 된다.
최동훈은 왜 이렇게 사기라는 소재에 집착하나 싶다.
인물도 속고 관객도 속고..
-나는 이런 식으로 영화 그 자체도 좋지만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
2017년 8월 1일 화요일
<내일부터 우리는> 드디어 윤성호를 보다.
윤성호가 연출한 웹드라마를 그대로 엮어 극장에서 상영했다.
소속 배우의 은밀한 사진을 인터넷에 퍼지기 전에 SNS 상에서 삭제하기 위해 분투하는 연예기획사 직원들의 이야기이다.
박얘쁜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스토리라 신선하긴 하지만 속도감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다.
GV가 매우 좋았다.
웹드라마 끝부분에 부록으로 "영화란 여행같은 거다"라는 대사가 담긴 영상이 나온다. <은하해방전선>에 나왔던 대사를 셀프 패러디한 것이다. 그래서 웹드라마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긴 하지만 윤성호씨와 이런 농담을 주고받고 싶었다. 감독님은 웹드라마를 망리단길에 비유해서 대답해 주셨다.
인터넷으로 서비스되는 웹드라마를 가지고 극장을 찾았는데, 혹시 영화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지 질문했다. 이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 주셨다. 웹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짚어주었다. 웹드라마는 5초 내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지속적으로 붙잡아놓을 수 있어야 하지만 영화는 좀 다르다. 영화는 5분 10분 정도 지루해도 관객들이 어느정도 기다려준다.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좋았다고 기억하는 건 웹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답변이었다. <내일부터 우리는>을 보면서 한편으로 많이 실망했었다. <은하해방전선>과 이전의 <삼천포 가는 길>같은 생기있는 단편들을 찍던 사람이 왜 그닥 웃기지도 않은 웹드라마를 찍고 있을까? <백역사>라는 단편을 보면서 영화가 이제는 그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지만 자신의 작업물을 극장에서 다시 보면서 영화를 더 찍고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면 했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들에도 감독님이 매우 정성스레 답변해 주셨다.
GV가 꽤 긴 시간 동안 진행되지도 않았지만 꽉 찬 GV였다.
웹드라마를 극장에서 상영하니 사운드가 많이 튄다는 얘기도 있었다. 웹드라마는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못 하도록 러닝타임 내내 효과음을 집어넣는데, 이걸 극장에서 2시간 동안 연속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호흡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웹드라마를 극장용으로 편집할 때는 사운드를 많이 덜어낼 계획이라고 하셨다.
궁금했지만 실수로 질문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TV 시리즈와 영화판에 이어서 또 연예기획사 얘기를 하는가? 이것 이후로 찍은 웹드라마도 연예기획사 얘기였던 것 같은데? 윤성호 감독님은 누군가의 뒤에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고 하셨다. <은하해방전선>도 배우들을 뒤치다꺼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선상에 있는 것 같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면 내 주위에 있는 오합지졸들이 나랑 함께 갈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하셨다. 이 질문을 해주신 분께 너무 감사하다.
배우들도 극장을 찾았다.
웹드라마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CLC의 유진은 정말정말 말랐다.
박종환 배우는 스크린 속에서는 말라 보였지만 실제로는 몸이 좋아 보였다.
윤성호 감독은 자기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열심히 얘기했다.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자기가 영화에 계속 동성애를 집어넣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다.
<내일부터 우리는> 속에 나온 것처럼 자기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는 고백도 하셨다.
윤성호씨는 앞으로도 열심히 계속 작업하실 것 같다.
웹드라마는 딱히 보고싶지 않다.
옛날 느낌으로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찍으라는 투자자가 나타났으면 정말 좋겠다.
웹드라마 자체는 재미 없었지만 정말 좋은 소재였던 것 같긴 하다.
어릴 때 자기 몸 사진을 찍어 자기 혼자 소장했던 것이 사과해야 할 일인가.
GV에서 유진이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분이 이상했다.
<이레셔널 맨> 질문을 던질 자격이 안 돼 있다
폐인처럼 살아가던 에이브라는 인물의 삶은 살인욕구를 느끼면서부터 180% 달라진다.
그는 꽤 도발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면 죽여도 되는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란 있는가?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면 저질러도 되는가?
이런 비상식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데에는 관객의 상식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각오와 확신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에이브라는 사람을 진짜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를 하나의 소동 쯤으로 끝내버린다.
나는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을 보충해 또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고 완전범죄가 가능한데다가 내가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살인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영화는 살인을 미화해버리는 위험한 영역까지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결국엔 관객들이 기존에 가지던 상식이 옳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무책임하다.
그냥 우디 앨런이 선곡하는 재즈 음악들에 얹혀서 흥얼흥얼 피식 하며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우디 앨런은 이제 이런 적당한 영화들만 찍기로 했나 보다.
영화보다는 TV 시트콤으로 보고 싶다.
<마터스>를 보고 바로 관람해서인지 상대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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