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데이빗 린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데이빗 린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8월 28일 월요일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EIDF 2017 with 정성일



EIDF 2017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내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린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셋이서 영화를 관람하고 정성일의 토크를 들었다.

다행히도 토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2시간을 넘지 않았다.
이번에 토크를 들으며 앞으로 데이빗 린치에 관한 정성일의 해설은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난번 <블루 벨벳>을 보고 강의를 들을 때와 똑같은 걸 느꼈다.
나는 데이빗 린치가 좋아서, 그리고 더 좋아하고 싶어서 GV에 참석했지만 정성일씨가 말한 것들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린치를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4월 11일 화요일

<블루 벨벳> with 정성일, CGV 씨네라이브러리


린치 빠돌이짓을 하다가 <블루 벨벳> 재개봉 소식에 소모임 멤버들과 같이 정성일 GV에 참여했다. 영화는 볼만했다. 그런데 예전에 내가 봤을 때 풀리지 않았던 것들은 이번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하나는, 결말부의 방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더불어 노란 양복 남자의 정체도. 다른 하나는, 프랭크라는 캐릭터는 왜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야 했나.

이번에는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정성일씨를 마주했다. 녹음기도 켰다. 처음에는 하는 얘기들이 좀 있어보였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한시간이 지나도 강의 내용은 나아갈 기미를 안 보였다. GV가 두 시간 가까이 흘러도 얘기는 전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같이 포토티켓을 찍기로 했던 일행들을 막차로 보내고 잠시 앉아있다가 결심을 한 뒤 씨네라이브러리를 나왔다. 내가 듣고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정성일씨는 내가 린치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린치가 화가 출신이었다.. 이런 얘기는 평소라면 몰랐을 얘기라서 좋았다. 하지만 <블루 벨벳>에 대한 그의 얘기는 심히 주관적이었다. 이 영화가 라디오가 꾸는 꿈이라는 얘기.. 등등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생각해 보면 근거를 찾기 어려운 해석들. 도식적인 해석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의 해석이 오히려 도식적이라고 느꼈다.
사실 뒷부분 가서는 그의 말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냥 멀뚱멀뚱 앉아있기만 했기 때문에 그의 강의의 질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와 내가 같이 본 이 영화에서 서로가 전혀 다른 것을 보았음은 분명하다.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멀홀랜드 드라이브> 실렌시오 & 3일간 우울함 & 10가지 단서



이번에 세 번째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았다.
소모임 때문이다.
소모임이 아니었더라면 나중에야 다시 보았을 것이다.
내가 소모임에 린치를 전도해서 린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이번에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발제했다.
초반부 2시간을 보다가 집에서 나와서, 학교에서 나머지 30분을 마저 보는 식으로 감상했다.

이 영화를 어느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실렌시오 극장에서의 일이 열쇠가 되었다.
영상과 소리는 분리된다. 그 분리되는 방식이 특이하다.
영상과 소리는 처음엔 하나인 것처럼 놀더니, 영상이 소리를 벗어난다.
트럼펫 연주는 계속되고 있지만 연주자는 트럼펫을 떨구고, 노래를 부르던 여인의 노래는 계속되지만 그녀는 쓰러지고 만다.
소리가 지속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금발 여인과 흑발 여인의 관계를 유추해 보았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끝난 지 오래이지만, 한 쪽에서는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전반부의 기나긴 꿈 장면으로 표출되었다.



영화 얘기는 많이 하지 못 했다. 방금 그 얘기도 하지 못 했다.
소모임에서는 영화와 스토리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나는 스토리가 우선이고 나머지 촬영이나 음악 등의 요소가 스토리를 도운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동등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스토리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말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이루지 못 했다. 소모임에 작년보다 사람이 많아진 것은 좋지만,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어째서인지 여전하다.
나는 그것을 공간의 문제라고 지금 생각해 본다.
우리 동아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좀 더 좁았고, 어느 한 명의 권위가 부각되지 않는다.

쉬는시간이 끝나고, 나는 팬심으로 린치의 드라마 [트윈 픽스]와 <이레이져 헤드>의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한 10분만 보여주려고 했으나 30분은 잡아먹어버린 것 같다. 트윈 픽스 시즌 3 소식을 얘기 안 한 것이 무척 아쉽다. 그렇다고 톡방에서 말하기엔 너무 오타쿠스러울 것 같다.

영상을 보여주고 나서 나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괜히 튼 건가 싶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그 친구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날 다른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갑자기 쪽팔림이 밀려왔다. 왜? 내가 이런 특이취향을 밝힌 것 때문에! 이 친구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는데 내가 좋다고 이런 영상들 보여준 것이 실수였다. 이 날 엄청 우울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울함이 3일동안 지속됐다. 린치 빠돌이짓은 아는 사람들끼리만 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볼 것 같으니, 린치가 제시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단서를 첨부한다.
1) Pay particular attention to the beginning of the film: at least two clues are revealed before the credits.
 
2) Notice appearances of the red lampshade.
 
3) Can you hear the title of the film that Adam Kesher is auditioning actresses for? Is it mentioned again?
 
4) An accident is a terrible event... Notice the location of the accident.
 
5) Who gives a key, and why?
 
6) Notice the robe, the ashtray, the coffee cup.
 
7) What is felt, realised and gathered at the club Silencio?
 
8) Did talent alone help Camilla?
 
9) Note the occurrences surrounding the man behind 'Winkies’
 
10) Where is Aunt Ruth?

2017년 1월 8일 일요일

<스트레이트 스토리> 린치 나름의 실험작

린치의 영화 중 가장 튀는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보았다.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실화
월트 디즈니가 드리는 올겨울 최고의 선물!
데이빗 린치 감독의 생애 최고의 여행이 시작된다

위 멘트가 실제 네이버 영화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카피이다.
그나마 린치스럽다고 딱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노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다.



할아버지의 말씀 1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게 가족이다!



할아버지의 말씀 2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제일 괴로운 일이지...



할아버지의 말씀 3
형제밖에 없다네...


가족주의 미쳐부러~

2017년 1월 7일 토요일

<트윈 픽스 : FIRE WALK WITH ME>(극장판) The Missing Pieces와 함께



미드 [트윈 픽스]의 프리퀄 극장판. 로라가 죽기 이전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세세히 다룬다. 리랜드 파머와 킬러 밥의 정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게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던 리랜드의 일상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는 어린 여자들과 매춘을 일삼으며 자기 딸 로라까지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첫번째 피해자는 로라 파머와 아는 사이라서 리랜드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하지만 로라를 죽이는 그 순간에도 리랜드는 킬러 밥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말아달라며 절규한다. 밥이라는 존재에 정신이 잠식되어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린 것. 여전히 밥이라는 존재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빈칸으로 둔다. 나는 그 점이 좋다. 파일럿 에피소드 촬영 중 즉흥적으로 예정에도 없던 프랭크 실바를 섭외해 밥을 만들어낸 것이 트윈 픽스의 신의 한 수이다. 트윈 픽스의 검은 오두막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내가 아는 한 '미스테리' 장르에 가장 어울리는 설정이다.

몇 년 전 출시된 트윈픽스 극장판 블루레이 디스크에는 90분 가량의 삭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자막은 없지만 팬심으로 이것도 지켜보았다. 내용 이해에 필수적인 장면은 없었다. 드라마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 이후의 장면이 짤막하게 들어가 있다. 극장판에 등장한 반지가 애니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가 밥의 살인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거울에 머리를 박았던 쿠퍼는 앞으로도 검은 오두막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미드 [트윈 픽스] 시즌 1&2를 보고


등하굣길에 폰으로 보던 미드 [트윈픽스].
정말 좋아하는 영화 감독 데이빗 린치의 작품으로 유명한 미드이다.
미드는 물론이고 드라마 자체를 정주행 성공한 게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시즌 2 초반에 로라 파머 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고 윈덤 얼 에피소드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루즈해진다. 완결까지 참고 보느라 고생했다. 실컷 딴 얘기 하다가 에피소드 끝나기 2분 전에 툭 던져주는 떡밥 가지고 겨우 버텼다. 90년대 드라마라 그런지 요즘의 드라마에 비해 호흡이 많이 느리기까지 하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 트윈 픽스에서 여대생 로라 파머가 시체로 발견되어 그 곳에 파견된 FBI 요원 데일 쿠퍼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마을 이야기.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추리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잡다한 마을 내 인간관계가 주로 다뤄져 그 답까지 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잡다한 마을 내 인간관계는 정말 쓸데없다. 누군가는 이것을 트윈 픽스 시리즈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즌 1,2를 보았을 때는 재미도 없고 긴장감도 없을 뿐더러 궁금하지도 않다. 시즌 3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지켜봐야겠다.

흥미로웠던 건 좋든 싫든 수사관 데일 쿠퍼가 초월적인 힘으로 수사를 해나간다는 것. 초능력 수사관 데일 쿠퍼! 추리물을 써나가는 센스는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쿠퍼가 꿈이나 환상을 통해 단서를 얻는 장면의 연출이 너무 좋았다. 지금 봐도 이게 어떻게 TV 드라마에 나와? 할 정도로 매우 신기한 이미지이다. 아예 쓸데없는 거 빼 버리고 검은 오두막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킬러 밥이라는 캐릭터의 존재이다. '순수한 악'이란 것을 한 명의 배우를 이용해 표현하다니 놀랍다.

검은 오두막 장면, 거인 환상, 킬러 밥 환상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명장면이다. 그런데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 벤 혼과 제리 혼 형제가 호텔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회상하는 과거 씬이었다. 그들은 이층침대에 누워 어느 외국인 소녀가 추는 춤을 보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이라 프레임 수가 적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을 찾고 싶은데 어느 에피소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린치의 드라마까지 정주행하며 린치 월드를 구경해 보았다. 드라마 [트윈 픽스]는 이해 가능한 스토리에 린치 특유의 연출이 더해진 드라마이다. 걸출한 드라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린치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장면들에선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한 충격을 느낄 수 있다.

에세이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컬트의 제왕이 들려주는 창조와 직관의 비밀]


한편, 데이빗 린치는 30년간 명상을 해온 명상의 고수로, 2005년 '의식 기반 교육과 세계 평화를 위한 데이빗 린치 재단'을 출범시켰다. 따라서 이 책의 판매수익은 각 학교의 초월명상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으로 보내진다. (책날개 지은이 소개)

영화에서 뭔가를 보았을 때, 좀 더 그것의 정체를 명확히 보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친구와 다시 얘기를 나눠 보자. 그러다 보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38p

이처럼 한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거나, 영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이러저러한 효과를 가지지 않을까 염려한다면 당신은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냥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라. 아무도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40p

<블루 벨벳>의 첫 번째 퍼즐 조각은 빨간 입술, 푸른 잔디, 그리고 바비 빈튼이 부른 노래 [블루 벨벳]이었다. 그다음 조각은 풀밭에 떨어져 있는 잘린 귀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당신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최초의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풀려나간다. 41~42p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순수하고 진동하는 의식의 바다가 있다. 초월명상을 통해서 '초월'하게 될 때 당신은 순수한 의식의 바다로 잠수해 들어간다. 그 바다로 풍덩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 행복감으로 당신은 떨게 될 수도 있다. 순수한 의식을 경험하면, 의식의 바다는 더 생생해지고 더 넓어진다. 또 의식의 바다는 더 펼쳐지고 더 자란다.
(...)
또 의식을 확장하면 당신은 깊은 곳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창의력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의식을 확장하면 당신은 환상적인 게임을 즐기듯이 삶을 살 수 있다. 44~45p

영화 <듄>은 여러 사람의 앞길을 망쳐 버렸다. 결국, 여러 사람이 영화제작에서 손을 떼게 됐다. 75p

특히 처음 리허설 때는 정말이지 많은 얘기를 하게 된다. 여러 가지 말을 나누는데, 때로는 이상하거나 쓸데없는 얘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우들과 조금씩 코드를 맞춰 간다. 85p
흔히 '리허설'이라고 하면 배우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부문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리허설도 있다. 모든 제작진이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는지, 본래 아이디어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다. 86p

다음과 같이 말하면 일이 점점 더 제대로 굴러가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고, 여기가 우리의 현 위치입니다. 우리가 성취할 바는 이것입니다." 90~91p

[트윈 픽스] 92~94p
(파일럿 에피소드 촬영 중 의상 담당자 프랭크 실바로부터 킬러 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사연)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아이디어는 기묘한 방식으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꿈꾸는 일이 촬영장에서 생긴다.
그렇지만, 나도 이 장면을 어디에 쓸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꿈꾸기 시작한다.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도록 내버려 두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는 최종 완성판이 나올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항상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100p

예술가 중에는 분노나 침울함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예술 작업에 도움을 준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분노나 두려움을 꽉 움켜쥐고 작품 속에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에 빠지면 예술가로서의 번득이는 예지나 힘을 잃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108p

나는 한 인간이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포를 회피하려고 마음이 스스로 기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 "심인성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접하게 됐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런 심리현상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121p

나는 상자와 열쇠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127p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도, 도구와 장소가 있는 작업실이 없으면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133~134p

[펠리니] 140~141p
펠리니는 나를 옆에 앉혔다. 그는 침대 두 개 사이에 작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약 30분간 얘기를 나눴다. 나는 질문을 별로 하지 않고 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옛 시절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옆에 앉아 얘기를 듣는 것은 정말로 좋았다. 이윽고 우리는 병실을 나섰다.
그때가 금요일 밤이었는데, 일요일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 결코 깨어나지 못했다.

"큐브릭이 '오늘 우리 집으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우리는 대찬성을 했죠."
그날 그들이 큐브릭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이레이저 헤드>를 보여 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지금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143p

제작사나 돈을 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럴 때 언제나 역효과를 빚는다.156p
당신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영화제가 수없이 많다. 영화제에 수없이 출품하다 보면 나중에라도 배급이나 재정 지원을 얻을 수도 있다. 156p

행복을 키우고 직관을 키워라. 일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라. 그러면 당신의 얼굴은 평화로운 가운데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그러한 당신을 보고 친구들도 행복해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자리를 함께하고 싶어 할 것이다. 162~163p

<로스트 하이웨이>
이러한 영화의 무겁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이끌리다 보면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에 뭔가 숨겨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지만 정작 감독은 '그런 식의 독법은 필요치 않다.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184p




유투브에서 데이빗 린치의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그가 웬 초월명상에 대해 강의하는 걸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그가 얘기하는 초월명상이란 게 딱 봐도 사이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망한 채로 있다가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되어 충동적으로 이 책을 사 버렸다.
이 책은 데이빗 린치의 짦은 메모들로 이루어진 에세이이다. 국내 제목은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컬트의 제왕이 들려주는 창조와 직관의 비밀]이지만 원제가 [Catching the big fish: meditation, consciousness & creativity]이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에서부터 이 책의 판매수익이 데이빗 린치가 세운 초월명상 재단에 전달된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하진 말자...

이래저래 더 실망한 채로 책을 보았는데 내게 생각보다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선 데이빗 린치가 그렇게 좋다 하는 명상은 해 볼 생각이 없다. 나는 명상을 통해 의식을 확장시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근거없는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린치의 작업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같은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
린치의 말에 따르면 그는 '빨간 입술', '푸른 잔디', '바비 빈튼의 블루 벨벳'같은 퍼즐 조각을 차례차례 떠올리면서 <블루 벨벳>을 구상해나갔다고 한다. 아, 역시 보통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니었구나. 그의 영화는 순간 머리를 스친 이미지들의 집합이었다. 그가 영화를 구상한 방식처럼, 영화를 다시 볼 때는 논리보단 직관으로 풀어봐야겠다.

어두운 린치의 세계관과는 달리 그는 행복한 상태에서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더불어 스트레스같은 부정적 감정에서 예술을 끌어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딱 그게 내 방식인데...

이렇게까지 다 알려주는데 린치의 방식대로 한 번 작업해보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만들어 보고 싶은 의지가 샘솟았다.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담겨있다. 물론 그의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광란의 사랑> 린치의 단점



데이빗 린치의 파격적인 멜로영화다.
내용을 들어보면 평범한 범죄멜로물을 떠올리겠지만 역시나 린치만의 연출스타일이 녹아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스토리와 연출은 계속해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갱의 음모에 얽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도망치는 세일러의 이야기는 다른 감독이 연출했어야 옳다.
이건 린치가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멩이가 있어야 할 이야기인데 쫓고 쫓기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단순해서 재미가 없었다.
린치는 복잡한 서사는 못 만들어낸다.
플롯을 넣을 시간에 서사와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미지들을 채워넣기 바쁘다.
결말부에서 빈약한 서사에 어떻게든 오즈의 마법사 모티브를 끼워넣어 초월적인 존재에 의탁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유치해서 차마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오프닝부터 급전개가 시작되지만 이 스피디한 전개는 바로 축 늘어진다.
하나도 재미 없었다.
린치 스타일은 다른 영화에서 다시 보기로.

2016년 8월 6일 토요일

<로스트 하이웨이> 주인공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참 이상한 영화였다.
린치 영화가 원래 그렇지만 참 이상한 영화였다.
영화 주인공인 남자가 영화 중반부에 들어서 다른 인물로 바뀌더니
후반부에 들어선 다시 원래 그 사람으로 돌아온다.
이에 대해선 영화 상에서 딱히 설명을 하지 않는다.
연결은 뒷전이고 마치 짧은 단편 영화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느낌이었다.
또 이 두 명의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는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한 두 명의 캐릭터이다.
연결고리가 보이는 듯하나 더 발전되지는 않는 희미한 인상 정도이다.
이해되는 것은 없고 순간순간의 상황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어떻게든 영화는 끝이 바로 시작점인 루프 구조로 마무리된다.

2016년 7월 21일 목요일

<엘리펀트 맨> 선하지 않은 동기가 낳은 좋은 결과




미안하지만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소

그런 말할 자격이 있나?
당신은 그 녀석을 이용해
같잖은 의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려 했어








바이츠 씨 생각을 했어


그 사람 생각은 왜요?


내가 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존을 호기심 거리로 만들었잖아
안 그래?
카니발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것만 다르지
난 유명 인사가 되어 계속 칭송받고 있어
환자들은 이제 나한테 진료받겠다고 난리야


그야 당신이 훌륭한 의사니까 당연한 거죠
지금이 메릭에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예요
다 당신 덕분이죠


내가 왜 그랬을까? 뭣 때문에?


여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난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나쁜 사람일까?







2016년 7월 10일 일요일

<이레이저 헤드> 줄곧 이 영화를 추천해주다가 친구와 함께



<이레이저 헤드>에 꽂혀 있었던 게 많이 빠져나갔다. 이래서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기가 두렵다. 소리에 집중해서 보았다. 집중하면 할수록 졸린 영화였나? 친구에게 자신있게 적극 추천했었는데 친구도 많이 아쉬움을 표했다.

작년의 나는 이 영화의 기괴함에 그렇게도 빠져 있었다. 마음이 불안정해서 린치의 괴상한 이미지들을 계속 되돌려보고 했던 걸까? 여전히 린치의 세계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2016년 5월 16일 월요일

<블루 벨벳> 참 이상한 데이빗 린치의 스릴러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어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 하필 영화 속 악당이 그런 캐릭터여야만 했는가, 왜 하필 이 영화에 변태성욕이 주 소재로 쓰였는가 하는 의문. 이런 의문들이 들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블루 벨벳>은 그 자체로 기묘한 그림이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볼수록 빠져든다.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가 말을 좀 더 배워야 될 것 같다. 이번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대충은 알 것 같다. <블루 벨벳>을 다시 훑어보며 특징들을 몇개 정리해 보았다.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세트장과 조명.
불안함을 자아내는 사운드.
상황과 반대되는 분위기의 음악.
꺼져버리는 촛불, 조명 인서트.

평범한 일상 속 우리가 보지 못 했던 깊고 어두운 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