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소름> 차원이 다른 공포영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너무 보고싶었다.
방 안에만 있는 시간이 매우 늘어나면서 아파트라는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무대로 한 공포게임을 가장 하고 싶었으나 구할 수가 없어 하지 못 했다.
대신 다 무너져가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소름>을 보았다.

<소름>은 일반 공포영화들과 차원이 다른 서정적인 공포영화이다.
깜짝 놀라는 장면이 없다. 공포영화니 억지로 끼워넣은 장면이 하나 있긴 한데 흐릿하게 보여 걱정할 것이 없다.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면 대신 이 영화는 인물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포착해내며 관객과 가까워지기를 택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인물에 동화되어 작은 공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귀신이라는 존재가 인물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지만 결코 사람들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귀신 이야기에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귀신을 마주한 적은 없기 때문에 이런 공포가 더 익숙하고 마음에 든다. <소름>은 이런 식으로 실제로 사람들이 누구나 느껴본 적 있을 마음 속 어딘가의 공포를 건드린다.

또 배경인 아파트의 생김새가 너무 강렬하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지어지기 시작하던 때에 만들어져서인지 복도 양 옆에 집들이 붙어있고 맨 끝이 뻥 뚫려있는데 빛은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낮에 인물을 찍으면 복도는 어둡고 뒤편에는 햇빛이 보이는 특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아파트 벽에는 때가 줄줄 흐르고, 전단지와 테이프,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집 내부 또한 벽지가 오래되고 창이 낡은 종이로 되어 있다. 화장실엔 타일 하나도 붙어있지 않다. 게다가 아파트 벽이 얇아서인지 빗소리,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 밤에 술취한 이웃이 우는 소리, 남녀가 섹스하는 소리까지 다 귀에 들어온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닌 것 같은 이 곳이 영화의 진정한 주역이라 말하고 싶다. 로케이션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해냈다!

김명민, 장진영 두 배우 또한 광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없을 정도로 이 둘은 각자의 배역에 깊이 몰입해 충격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주인공 한 명이 상대방과 언쟁이 격해지다 결국 죽이게 되는 롱테이크 씬이다. 멀쩡히 소리내어 말하고 움직이던 사람이 그대로 죽음에 처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처참한 장면이다.

단 하나 따라가기 어려운 지점은 아파트에 얽힌 괴담의 실체이다. 인물관계를 억지로 조성한 것 같으면서도 말이 조금은 되고.. 이러한 설정이 있었기에 의미를 가지는 장면들도 있는데.. 공포스럽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반전요소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간만에 수작 공포영화를 만났다. 그것도 국산 공포영화를.
공포영화답지 않게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던 이 영화에서 느낀 공포를 나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만나보고 싶다.
호러영화가 곧 깜짝 놀래키는 영상으로 굳어져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돈의 팔촌> 이런 로맨스, 이런 감정..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이라는 영화를 안 좋게 봐서 장현상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팍 죽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는 정말 잘 만든 영화같아서 그 에너지를 기대하고 <사돈의 팔촌>을 보았다.
매우 마음에 들었다.
조마조마한 사랑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정말 좋았다.
두 남녀는 사촌관계이다.
이들은 어린시절 둘 사이의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친척들끼리의 문제가 생겨 오랫동안 못 보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러나 이내 서로가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진짜 로맨틱한 영화였다.
굳이 유명한 배우나 예쁜 로케 없이도 로맨스는 탄생할 수 있구나 싶었다.
흐름도 자연스러워서 영화가 사촌끼리 연애를 한다는 매우 특이한 설정에 먹혀버리지 않고 감정만으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른이 돼서 뭘 경험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봤자 아이때 느꼈던 감정만큼 크진 않대."

특이한 것은 남자 아역이 뚱뚱한 아이라는 점.
아쉬운 것은 사촌관계 설정 자체가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지만 그다지 중요한 의미는 없다는 점.

그래도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이후 영화들도 꾸준히 잘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김정일.. 만세..?



"화려했던 무대와 어두웠던 관객석, 초라했던 나는 메탈티를 입었네~"

친한 형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
정식개봉은 안 할 줄 알고 일부러 서울아트시네마까지 찾아가서 보았다.
알고보니 <논픽션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정윤석 감독의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기묘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이 영화는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후반부에 일어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극적인 요소를 더해서 더 좋았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쉽게 오지 않는.. 신이 내려준 기회이다..

뭐 그 사건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즐겼을 것 같다.
가장 처음 관객들을 사로잡는 건 뜨겁고 강렬한 사운드,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타이포그래피 뮤직비디오이다.
곡이 너무 좋아서 [서울불바다] 앨범을 다운받아 계속 듣는 중이다.

다음은 밤섬해적단 드러머 권용만씨 특유의 유머코드.
별로 웃기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엄청 재밌다.
재밌는 얘기를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해서 더 웃기다.

그리고 북한..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뭐시기..
보면서는 무릎을 탁 쳤지만 영화의 논리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구려

정윤석씨의 차기작이 기대되며
권용만씨가 진행하는 시네마지옥의 앞날이 기대된다.
너무 좋았던 이 영화를 추천해준 형이 고른 또 하나의 영화는 <로우>이다. 언젠간 볼 것 같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벨벳 골드마인> 그런 유행이 있었구나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모임을 했었다.
영화도 재미없는데 모임에서 나눈 얘기도 정말 재미없었다.
나는 영화 속에 담긴 문화에 대해 락덕후 혹은 발제자가 멋지게 말을 덧붙여주길 바랐는데
동성애에 대한, 다들 조심스러워해서 말문이 막히는 얘기만 하다 왔다.

사실 별로 할 얘기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분위기.. 그런 것들이 거의 전부처럼 보인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과 느낌이 비슷했다.
서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치 않게 취급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 락 음악이 깔린다.
그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제자에게 조금 실망을 했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괜한 감정 안 잡는 게 더 좋았을텐데


배두나가 보고싶어서 보았다.
이 영화는 로맨틱 추리 연애담을 표방한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있는 연애편지를 친구가 자기에게 보낸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녀를 짝사랑하던 친구는 자기가 그 편지를 쓴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 사귀게 된다.
하지만 이내 여자가 진실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둘은 이어진다는~ 이야기~

배두나 하는 짓이랑 영화 분위기 자체가 귀여웠다.
가사 있는 노래가 너무 많이 깔리는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노래 까는 센스가 좋다.
윤종신이 부른 '환생'이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너무 질질 끈다.
100분도 안 되는 영화가 10개가 넘는 파트로 쪼개져 있는 건 화법의 문제이다.
후반부에 가선 특히나 별 몰입도 안 되고 지루한 우울한 감정들을 늘어놓는다.
배두나의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발랄하며 화장기 없는 분위기가 끝까지 이어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이 감독 나랑 안 맞아...


너무 궁금해서 봤었다.
러닝타임이 2시간 반정도 되는데 체감 4시간은 됐던 것 같다.
뭔 얘기를 하는 건지.. 눈만 뜬 상태였고 영화엔 도무지 빠져들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게 없고, 다시 보고싶지도 않다.
그냥 이상하다는 느낌만 너무 많이 든다.
씬도 꽤 많고 열심히 찍은 것 같은데, 대체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
<매그놀리아>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폴 토마스 앤더슨 정말 안 맞는다.

<몬스터> 코미디영화 주인공이 스릴러영화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


6월에 본 영화를 이제서야 리뷰한다.
친한 형이 엄청난 괴작이라며 내게 추천한 영화이다.
당시에 매우 특이하게 보았다.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지 않는 건 좀 아쉽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 전체관람가 영화를 섞어낸 느낌이다.
이민기의 세계는 어둡고 잔인하지만, 주인공인 김고은의 세계는 코미디의 화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둘의 세계를 충돌시키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민기는 농담 하나 없이 진지하려 하지만, 자꾸 김고은이 거기에 초를 치는 식이다.
어느정도 의도된 잡탕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니 이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조금은 마음에 든다.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아노말리사> 홍상수를 닮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시네도키, 뉴욕>에 대한 글을 쓰고싶어져서 찰리 카우프먼이 그 이후로 연출한 <아노말리사>를 보았다. 이렇게 그의 연출작은 지금까지 두 작품.
<아노말리사>의 앞부분은 연출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주인공 마이클과 관객을 기분나쁘게 만든다.
위 스틸컷은 마이클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택시기사 씬이다.
이런 느낌들을 잘 캐치해내 섬세하게 표현한 걸 보면, 찰리 카우프먼이 실제로 우울하고 예민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인형의 디자인 또한 묘하게 불편하다. 얼굴이 두 눈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가면처럼 붙어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공 남녀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같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주인공 남녀를 제외하고는 목소리도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들린다.
마이클에게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은 얼굴을 하고 매력 없는 목소리를 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내용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홍상수 애니버전이라고 해도 되겠다.
예민한 성격의 마이클이 강연을 위해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데, 밤이 외로워서 옛 애인을 불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한 여자에게 반해버려 술자리를 한 후에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아침을 먹으며 그 여자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데, 전날의 사랑스러움이 더는 없다. 그래서 마이클은 괴로워한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그렇게 사랑스럽게 찍어놓고서,
사랑이 식는 과정은 정말 무섭도록 그려낸다.

해결이 되지 않아서 꺼림칙하게 남아있는 것이 좀 있다.
그래서 마이클이 잠깐 동안 벗으려고 했고, 꿈 속에서 떨어트렸던 가면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꿈의 내용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비자 전략에 관한 강연을 하러 온 마이클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마이클 아냐?" 하고 수근거린다.
이는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마이클의 성격을 드러낸 연출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찰리 카우프먼이라는 사람 자체가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사람이라, 의도치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일까.

사랑이 식어버리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암담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끝이 나 버렸던 <무드 인디고>처럼, 아예 영화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될 거란 걸 미리 알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리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났을 때의 후유증은 너무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