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아노말리사> 홍상수를 닮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시네도키, 뉴욕>에 대한 글을 쓰고싶어져서 찰리 카우프먼이 그 이후로 연출한 <아노말리사>를 보았다. 이렇게 그의 연출작은 지금까지 두 작품.
<아노말리사>의 앞부분은 연출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주인공 마이클과 관객을 기분나쁘게 만든다.
위 스틸컷은 마이클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택시기사 씬이다.
이런 느낌들을 잘 캐치해내 섬세하게 표현한 걸 보면, 찰리 카우프먼이 실제로 우울하고 예민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인형의 디자인 또한 묘하게 불편하다. 얼굴이 두 눈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가면처럼 붙어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공 남녀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같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주인공 남녀를 제외하고는 목소리도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들린다.
마이클에게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은 얼굴을 하고 매력 없는 목소리를 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내용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홍상수 애니버전이라고 해도 되겠다.
예민한 성격의 마이클이 강연을 위해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데, 밤이 외로워서 옛 애인을 불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한 여자에게 반해버려 술자리를 한 후에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아침을 먹으며 그 여자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데, 전날의 사랑스러움이 더는 없다. 그래서 마이클은 괴로워한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그렇게 사랑스럽게 찍어놓고서,
사랑이 식는 과정은 정말 무섭도록 그려낸다.
해결이 되지 않아서 꺼림칙하게 남아있는 것이 좀 있다.
그래서 마이클이 잠깐 동안 벗으려고 했고, 꿈 속에서 떨어트렸던 가면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꿈의 내용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비자 전략에 관한 강연을 하러 온 마이클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마이클 아냐?" 하고 수근거린다.
이는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마이클의 성격을 드러낸 연출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찰리 카우프먼이라는 사람 자체가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사람이라, 의도치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일까.
사랑이 식어버리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암담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끝이 나 버렸던 <무드 인디고>처럼, 아예 영화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될 거란 걸 미리 알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리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났을 때의 후유증은 너무나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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