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5일 월요일

<망각의 삶> 영화 만드는 영화





 나는 영화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은하해방전선>, <힘내세요 병헌씨>가 있다. 대부분의 영화 만드는 영화는 영화 만들기를 참 힘들면서도 또 매력적인 과정으로 그린다. 갖은 역경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영화 만들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난 이런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는 영화 만들기의 흥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그 영화 만들기의 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거기 표현된 게 실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흥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직접 찍어보면 뭐가 진짠지 알 수 있겠지..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 만드는 영화들이 영화 만드는 '사람'에 주목하는 드라마였다면 <망각의 삶>은 영화 만드는 '상황'에 주목하는 코미디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생기는 별 지랄같은 상황들을 다룬 세 개의 에피소드가 '꿈'을 연결고리로 하여 묶여 있다.
매력적인 건 여기서 그리 거창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소재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치밀하게 사용된 소재가 아닌, 세 개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하나의 장편영화에 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이 영화 전반적으로 흐르는 무겁지 않은 웃음이 참 좋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 만드는 친구들한테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더럽게 힘든 일이 끝나고 하하하 웃으며 함께 털어버리면 딱 좋을 것 같다.





2016년 1월 24일 일요일

<텐텐> 미키 사토시의 순간들


1.






2.



내가 미키 사토시의 영화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장면들 때문이다. 문득 음악과 함께 훅 파고 들어오는 장면들이 있다. 문득. 별 시덥잖은 농담을 하다가 진지해지는 이 순간이 미키 사토시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2016년 1월 23일 토요일

1.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시나리오에 담는다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었다.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너무 자기만족적이라고 여겨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여러 사람이 봐야 하는 영화에 자기 이야기를 한다라..
얼마 전 시나리오 같이 쓰는 형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 형 글엔 자기 이야기가 많았다. 시나리오가 나쁘진 않았는데 난 마지막에 "너무 자기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자기 얘기를 하면 안 될 이유같은 건 없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자기 얘기'를 싫어했던 건 아무래도 그 '자기 얘기'가 실패한 사례를 여럿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내 주위 사람들은 너무 민망해할 것 같다. 내가 내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어떻게든 내 시선으로밖에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내 이야기 속에 다른 시각을 가지고 등장했던 이들에겐 얼마나 우습게 들리겠는가. 바로 그거다. 내 이야기가 내가 실제로 겪은 일들이었음을 주위 사람들이 못 알아채기만 한다면 그리 민망하진 않을텐데 어떻게든 저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밖에 없지 않나.

되게 민망했던 기억 하나. 어릴 때부터 난 소설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하나 시작해서 끝을 본 소설이 있긴 했나 싶을 정도로 구상만 했다. 중학교 때, 대지진이 일어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하나 구상하고 있었다. 나와 친했던 친구는 슥 다가와 내 소설의 인물 설정을 보고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대부분 같은 반 학우들의 이름을 살짝 비튼 것에 불과했으며, 인물 성격이 딱 그 애들 성격 그대로였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 때 내가 구상했던 소설은 나 혼자 주위 애들을 인형삼아 벌였던 망상 놀이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그 때의 날 어떻게 보았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가끔씩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의 당사자가 영화를 볼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상상에 바로 그 생각을 접는다. 나의 경우에는, 모든 저작물이 스트레스에서 나온다. 언제나 나는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 왔고, 내가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대부분이 누구와의 안 좋았던 기억들의 재현일 것이다. 둘이 싸우면 어느 한 쪽의 얘기만 들어서는 절대 그 사건 전체를 볼 수 없다. 어느 부분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크게 왜곡되기도 한다. 나는 그 어느 한쪽의 이야기를 살면서 여러번 들어왔고 그 사람들의 분노에 찬 눈빛을 무시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 하나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들이 무척 한심하게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한심하게 보이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도 좀 섭섭하다. 나는 내가 겪은 일밖에 모른다. 앞으로 무슨 영화를 만들게 되든 결국엔 내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남의 각본으로 만들면 끝나는 문제일까? 근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영화를 하고자 했던 이유를 무시하는 선택이 된다.
일단 내가 경계하고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 영화에서 남의 뒷얘기를 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나의 거의 모든 영화는 스트레스에서 나왔지만 내 주위 사람에게 상처줄 일만 안 하면 되지 않나.
아니 또 근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남의 뒷얘기를 뺀다면 할 수 없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일단 내가 정말 피하고자 했던 이야기 방식을 택해보겠다. 나중 되면 이런 얘기는 두번 다시 못할테니 지금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일단 해 봐야지... 혹시 어쩌면 이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구..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시리어스 맨> 시리어스 맨이 본 시리어스 맨



나는 정말 심각한 사람이다. <시리어스 맨>은 심각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심각한 사람들은 좀 기분나빠할 영화'라는 표현을 어디서 듣긴 했어도 그게 나의 과하게 심각한 부분에 도움이 된다면 문제 없다는 생각으로 <시리어스 맨>을 보았다.



래리 고프닉은 상황이 심각하다. 이 일 저 일이 겹치고 겹쳐 정말로 힘든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라는 말이 그에겐 무책임하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일은 조금씩 풀려가는가 싶었지만 얼씨구,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라'라는 메세지를 주다니. 어차피 인생은 최악이니까 마음 놓아라.

일단 주인공 래리가 딱히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려 든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일들을 굳이 복잡하게 풀어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제시하고 '불확실함의 정리'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으니 썩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리고 매사에 serious한 내가 보기에는 마지막 결말이 이렇게 보인다. 마음 놓아봤자 어차피 인생은 최악이다 (+흥겨운 음악). 영화가 제시한 쪽과는 좀 다르다. 일단 인생이 최악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마음 놓아봤자 어차피 인생은 최악이다 + 흥겨운 음악에는 좀 더 짙은 조소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쌩뚱맞게 배경은 시대극이다. 배우 한 쌍이 나오며 남자가 만난 랍비를 여자는 귀신이라고 한다. 남자는 이미 그 사람을 집으로 초대했고, 여자는 언쟁 끝에 정체 불명의 남자를 칼로 찌른다. 칼에 찔린 그 자는 웃으며 집 밖으로 나가고, 그렇게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나는 이것을 랍비를 포함해 고리타분한 해법만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말이 사실 쓰잘 데 없는 말이라는 것을 돌려가며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별 의미 없이 집어넣은 거라 하더만. 아.. 코엔 형제 안 맞아.


<시리어스 맨>에는 Serious Man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 래리의 아내와 바람난 남자 싸이가 죽고 나서 장례식 장에서 "그는 정말 serious man이었습니다." 하고 나온 대사와, 참다 참다 못 견딘 래리가 "저는 serious man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라고 한 대사. 공통점은 serious man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지 부정적인 의미로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의미 말고 조금 다른 의미로 비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봐도 글쎄, 그건 아니다. <시리어스 맨>의 serious man은 대체 무슨 뜻으로 쓰인 말일까.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프랑스 영화처럼> 신연식 감독 옴니버스 영화

1월 7일 광화문 씨네큐브. <프랑스 영화처럼> 시사회.
정말 좋은 영화를 두 편이나 만난 날. 기분이 좋았다.


타임 투 리브

장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에는 감정을 쌓아올릴만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1박 2일의 촬영기간은 사흘 동안의 이야기를 담기 충분치 않다.
어머니와 네 딸들이 나눴을 좋은 이야기, 그들이 먹었을 좋은 음식들이 생략된 것이 무척 아쉽다.
장편으로 만들었더라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또 네 딸들의 캐릭터가 다들 비슷비슷하고 분명치 못했다는 친구의 말에 동감!





맥주파는 아가씨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아쉬웠던 영화.
술집에서 뭔가 해 보려는 남자들 얘기.
신연식 감독이 고등학교 때 쓴 연극 느낌의 각본이라고 한다.
하나의 작은 콩트.

자기 진심은 그렇게 알아달라면서 남의 진심을 모르냐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행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나와 다솜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구는데
안 착한 장애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이 눈여겨볼 점.




리메이닝 타임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타임 투 리브>가 장편이 더 나았을 영화라면
<리메이닝 타임>은 장편으로 반드시 찍어야 하는 영화이다.
100일의 시간밖에 함께할 수 없는 연인.

<리메이닝 타임>을 장편화한다고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연인의 자식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면 재밌을 것 같다.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온 자식은 어머니로부터 '젊었을 적 점 본 얘기'를 듣게 되고
극적으로 아버지와 재회한 자식은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이어 준다.
하지만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진짜로 100일 뿐이었고
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다 죽는다.

좀 극단적인데.. 더 감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 소재이다.
100일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내가 감독이었다면 이 아이디어로 장편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스티븐연 배우의 한국말 연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프랑스 영화처럼

옴니버스를 엮은 표제 <프랑스 영화처럼>과 동명의 단편.
신연식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이유미 배우가 성인의 모습으로 나와 반가웠다.
이 각본도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 썼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맥주파는 아가씨>에 등장한 다솜이 여기에 전혀 다른 이미지의 인물로 출연한다는 점.
그렇지만 이 둘이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
마침 다솜이 언급하는 '평범한 삶'이라는 단어가 이 둘을 엮어 주고 있다.
다른 그림이지만 그렇다고 붙여 볼 수 없는 것도 아닌 그림.
단편과 단편을 붙였을 때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재미. ex)<옥희의 영화>

<맥주파는 아가씨>를 보고선 '남자는 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프랑스 영화처럼>까지 보고 나니 '여자는 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을 모으면 그 중에서 몇 개 빵꾸가 있기 마련인데
아쉬운 작품은 있어도 다들 좋은 단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신연식 감독의 영화는 한 편 걸러 한 편 좋았던 것 같다.
<러시안 소설>과 마찬가지로 화면이 되게 예쁜 영화였다.
조명 때문인건지 보정을 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부드럽고 예쁜 질감이었다.
다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ㅎㅎ

극장에서 신연식 감독을 보았지만 관객들 앞에 공식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한 번 인사라도 해 주지..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유스> Simple Song #3

수영 하고 나서 영상자료원 가기 전에 시간이 비어서
졸릴까봐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사들고
아트나인에서 <유스>를 보았다.
뒤늦게 그게 개봉 첫 상영이란 걸 알았다.
정말 좋은 영화를 두 편이나 만났던 그 날.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올해 개봉작을 아직 많이 보지 못 했지만, 2017년을 맞이하며 올해의 베스트를 꼽을 때면 <유스>가 가장 먼저 기억나지 않을까. 그 때 느낀 것들은 너무 많아 다 기억나지 않는다. Simple Song이 자꾸 입을 맴돌 뿐..

F 왜 하필 제목을 YOUTH로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두 노인의 눈에 보이는 건 젊음뿐이기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젊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젊음을 지켜보는 두 노인의 눈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고 제목을 '늙음'으로 짓자니 칙칙하고..?

F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인물에 깊이 이입되어 영화를 보았다.




<유스>를 보며 느낀 좋음이 어떤 좋음이었는지 분석해 보고 싶어지면 <유스>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아직은 <유스>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아마데우스> 나는 거창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명작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하지 말고 "거창한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해야겠다. 내가 정말로 싫어했던 건 거창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명작들이 거창해서 나는 명작 영화를 안 좋아한다고 뭔가 꺼림칙한 느낌으로 말하고 있었다.

거창한 것이 왜 싫냐. 너무 존엄해 보여서 싫다. 영화가 나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느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난 내가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려 한다. <아마데우스>는 내가 보기엔 너무 거창하다. 보다 보면 가벼운 장난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것조차도 거창한 분위기 속에서 움직인다. 할아버지가 애써서 농담하는 걸 짠하게 듣고 있는 내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