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리얼> (2) 남은 부분을 확인하고서, 잡지에 실을 글


<리얼>
제작비는 115억, 손익분기점는 300만명, 그러나 관객수는 47만에 그친 영화가 있다. 나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안 본, 아무도 안 봤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리얼>(Real)
2016 한국 청소년 관람불가
액션,느와르 상영시간:137분
개봉일:2017-06-28 누적관객:470,107명
감독:이사랑
출연:김수현(장태영) 성동일(조원근) 외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전쟁 “나와 똑같이 생긴 놈이 나타났다”
카지노 ‘시에스타’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 앞에 암흑가 대부 조원근(성동일)이 카지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타난다. 조원근의 개입으로 카지노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장태영은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자를 찾아 나선다.
어느 날, 이름뿐만 아니라 생김새마저 똑 같은 의문의 투자자(김수현)가 나타나 자금은 물론 조원근까지 해결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의문의 투자자의 등장으로 조원근과 카지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고 이들을 둘러 싼 거대한 비밀과 음모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오직 진짜만이 모든 것을 갖는다! (출처: 씨네21)
(물론 영화 진행방식이 줄거리와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글을 읽는 데에 그리 중요하진 않기 때문에 대충 이런 영화구나 정도로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세울 것이 없어서일까 오로지 설리의 베드신만으로 홍보를 했기에 나는 이 영화의 실패를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가지 이유가 있어서 개봉 첫날에 극장에서 <리얼>을 관람하고 말았다.


첫번째로 나는 설리의 노출이 궁금했다. 그동안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 무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예능에 나와서 적당히 소녀스런 모습을 보이던 걸그룹의 멤버인 설리가 돌연 아이돌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 직접 베드신을 찍다니. 나는 그녀가 이전과 너무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서 깜짝 놀랐다. 충격적이면서 새로운 소식이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아이돌이라는 두터운 포장지가 벗겨지는 순간을 나는 하루라도 일찍 마주하고 싶었다.


두번째로 영화가 망작이라는 걸 사전에 알고 보면 나름의 특이한 재미가 있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 골치 아프게 판단할 필요 없이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이 망한 영화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다. 그래서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보고 화가 난 관객들의 평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관객은 거의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리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영화보다 재미있는 감상평들이 인터넷에 쏟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영화를 직접 보면 그 유머의 흐름에서 남다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의 작품성이 경악스러운 수준일수록 사람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는데, 그렇게 되면 일단 티켓값은 한다. 내가 영화를 보러 간 당일 아침 일찍부터 <리얼>이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의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세번째로 사람들이 다들 망작이라고 칭하는 영화에서 의외로 괜찮은 구석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다. 도시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를 트는 것보다 사막에서 목이 말라서 죽어가다가 오아시스를 찾았을 때가 더 좋다고 하면 다들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꿈을 위해 이 거대한 실패를 직접 극장에서 마주하고 타산지석으로 삼고 싶었다. 적어도 기대하고 봤다가 애매한 퀄리티에 실망하게 되는 여느 영화들보다는 <리얼>이 내게 좀 더 흥미로운 실패 사례였다.


그런데 맙소사, 영화가 너무 별로였다.
첫번째 문제는 가뜩이나 꼬인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있어 꼭 필요했던 부분들을 이 영화는 과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냥 삭제해 버렸다. 이사랑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뭐지?’ 하는 아리송한 느낌을 갖게끔 의도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패기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영화가 최소한 알아들을 수 있게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1부 ‘탄생’을 보고 대다수의 관객들 역시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역시나 시작부터 위태로웠다.


두번째로 대본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 내가 들은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어색했다. 그래서 연기 자체도 지켜보기가 너무 불편했다.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도 안 쓰는 단어, 말투로 대사를 쓰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


세번째로 액션 씬을 되게 못 찍는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액션 느와르이다. 그런데 액션을 못 찍는다? 말 다했다. 정확히 한시간을 기다려서야 나오는 첫 액션 씬은 최악이다. 칼을 든 괴한들이 자동차 안의 장태영(김수현)을 습격하는 장면이었는데, 카메라가 자동차 주위를 어수선하게 뱅뱅 돈다. 가뜩이나 조명이 어두워서 누가 누구인지도 구별이 안 되는데, 눈에 힘을 주면 겨우 볼 수 있는 배우들의 움직임마저도 차체가 다 가려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악당 소굴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타격감이 매우 구리다. 귀를 의심케 하는, 살면서 처음 들어본 구린 소리가 타격음으로 삽입된다. 또 여기서 모든 악당들은 한 명도 빠짐 없이 장태영의 펀치 한 번에 나가떨어진다. 그러다가 원펀치 액션이 채 끝난 것 같지도 않은데, 어중간한 지점에서 편집을 해서 바로 악당 소굴이 불타는 장면, 그리고 건너편 건물에서 태연하게 두 명의 장태영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안 맞는 장면들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이다. 이쯤하니 꽤 너그러운 나도 남은 부분이 어떻게 돌아갈지 확실히 예상이 갔다. 그래서 나는 러닝타임을 한시간 남기고 바로 극장을 나와버렸다. 티켓 값이 아까웠지만 나는 중간에 나왔기 때문에 60분 정도 되는 시간을 번 것이다.


승리자의 기분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리얼>의 평들을 읽어보는 것도 잠시, 영화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문제삼는 영화 끝부분의 충격적인 액션씬 때문이다. <리얼>의 티켓을 끊어놓고도 그 엄청난 장면을 보지 못 했다는 점은 마음 속의 짐으로 남았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고려대학교 내 방송국 KUBS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5시 반부터 6시까지 방송되는 [시네:망]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리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궁금증 하나쯤 해결하는 것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미처 보지 못 했던 <리얼>의 후반부로 끌려왔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모두가 경악했던 영화의 후반부에서 의외로 괜찮은 점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를 찾다 포기한 내가 드디어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쥐어짜낸 장점 하나보다 앞서 언급한 단점들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항상 나쁘게 대하다가 가끔 잘 해주는 사람한테 마음이 가는 것처럼.. 아무튼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장점 하나가 바로 볼거리이다. 더럽게 재미없는 영화지만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꽤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모두가 오프닝부터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화려한 쓰레기일지라도.. 그 화려함에서 오는 시각적 쾌감만은 인정한다.


첫번째 볼거리는 배우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목하는 배우는 딱 두 명일 것이다. 김수현과 설리이다. 김수현은 어떤 영화에서도 이렇게 러닝타임 내내 등장한 적이 없고, 맡고 있는 역할조차 다양하기에 그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면 만족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수현과 설리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파격적인 노출까지 감행했다. 이들의 노출이 내용 진행에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두번째 볼거리는 색조명이다. <리얼>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면 보통의 영화에선 허용되지 않는 특이한 조명을 칠 수 있다. 덕분에 영화에 담긴 밤의 도시는 붉은색과 청록색 계열로 떡칠되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미지가 너무 과잉되었다는 시선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화려한 이미지가 시원시원하게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마지막 볼거리는 바로 신개념 액션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액션 시퀀스가 바로 결말부에 나온다. 장태영은 카지노를 공격하는 악당들을 마약에 취한 채로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때려눕히는 환상에 빠진다. 이번에는 펀치가 더 강력해진 건지, 악당이 벽까지 날아가서 벽이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장태영은 이제 총에 맞아도 저절로 치유까지 된다. 드래곤볼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러다 수족관의 유리가 깨지고 카지노가 물바다가 되면서 <리얼>을 불구덩이로 내몰았던 그 악명높은 ‘발레 시퀀스’가 나온다. 장태영은 이제 붉은 양복을 입고 발레를 시작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액션이 되고, 장태영의 몸이 채 닿지도 않은 악당들이 여기저기 나가떨어진다. 끝까지 치닫는 극의 진행때문에 극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장면 자체는 볼만했다.
이 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시도할 수 없는, <리얼>이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하지만 정도껏 해야 한다. 이 영화에 헛되이 시간과 노력을 바친 인재들이 차라리 김수현과 함께 15초 정도의 짧은 광고를 만들었다면 반응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아니 그냥 이중인격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다 집어치워버리고 김수현, 설리의 2시간짜리 영상 화보집을 만들었어도 이것보단 나았을 것이다.
내용은 이해하려고 해봐야 어차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시나리오 같지도 않다. 그저 김수현을 데리고 중국에서 외화벌이를 하고 싶었나 보다. 당연히 해외시장에서도 일은 잘 안 풀렸다.
나는 볼거리를 이 영화의 장점으로 뽑았지만 누군가가 이 영화의 예쁜 장면들을 모은 편집본을 유투브에 올린다면 당연히 그걸 보는 게 낫다. 안 올라온다면 그냥 페이스북에 떠도는 ‘기분 좋아지는 영상’ 류의 것을 보는 것도 좋다. 젤리를 자르고.. 정리정돈하고.. 기계가 돌아가고.. 이런 영상 말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액체괴물 동영상을 137분 보는 게 더 낫다. (액체괴물 비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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