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네이키드 런치> 영화가 마약중독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면?



하드 용량이 부족해 영화 파일을 지울 때면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이 영화를 안 볼 것 같아서 지우면 나중에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싶어져서 다시 다운을 받게 된다.
그렇게 다운을 받고 나선 정작 영화를 안 본다.
원할 때 보고싶은 영화를 바로 볼 수 있게 미리 영화를 다운받아 놓지만, 어째선지 정작 파일 목록을 볼 때는 끌리는 영화가 없고 거기서 지워버린 영화가 뒤늦게 보고싶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이다.
지울까 고민되는 영화는 영상을 틀어서 대충 몇몇 장면을 훑어본다.
<네이키드 런치>는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 때 보았던 특이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휴지통에 남아있던 파일을 복원시켜서 겨우 보았다.

문제의 장면은 타이프라이터가 <비디오드롬>의 살아 움직이는 TV처럼 부드럽게 숨쉬다가 남근을 발기시키고 침대 위에 엉켜있는 남녀에게 올라타 엉덩이를 들썩대는 장면이다.
타이프라이터의 남근이 꽤나 에로틱했고 거기에 깔린 정신없는 재즈음악도 좋았다.
나중에 가면 이 장면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한 번 잠들었음에도 시간내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약에 취한 빌이 헛것을 보며 겪는 기이한 일들로 이루어진다.
밑도끝도 없이 커다랑 풍뎅이가 나타나 아내를 죽이라고 명령하질 않나
카페에서는 지인이 갑자기 외계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떤 아저씨는 입술 모양과는 다른 말을 텔레파시로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빌의 표정이 정말 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어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속으로 머뭇거리는 느낌이라 정말 좋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정말 영화에 맞는 배우를 잘 캐스팅하는 것 같다.

영화가 재미없어진 건 뒷부분으로 가면서 영화가 이해되려고 하면서부터이다.
툭툭 터져나오는 괴기스러운 장면들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로 보고 있었는데
빌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몰입이 되지 않았다.
초반부의 에너지만은 실로 엄청났다..
원작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것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엑시스텐즈>를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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