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밤샘영화제 <싱 스트리트> 왜 더 크려고 하지 않는가?
과에서 진행한 밤샘영화제 다섯 편의 영화 중 첫 영화.
가장 기대하는 영화 한 편이었다.
개봉 당시 극장에 굳이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 시큰둥했지만
친구가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고, 가벼워서 다 같이 모여서 보기도 좋을 것 같았다.
영화는 밑도 끝도 없이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내용과 형식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
저 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귀여움과 뜬금없는 전개가 합쳐져 유머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본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갑자기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든지
뭔가 있어보여서 이름도 모르는 흑인 애를 밴드 멤버로 섭외한다든지.
좀 더 서론이 길어야 되는 거 아니야? 벌써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장편 영화를 세 번째 만드는 존 카니의 패기였다.
나는 지금까지 주구장창 데모CD 만드는 음악영화만 찍어온 사람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런 영화 찍을 거고, 이런 영화에서 안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은 이제 알아!
밴드의 리더는 노래도 잘 못 하고 악기도 못 다루지만 금세 엄청 좋은 노래 한 곡이 뽑힌다.
프로듀서는 이거 뭐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싶더니 복고 감성이 풀풀 풍기는 멋진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어버린다.
밑도 끝도 없다는 거 누구나 다 알지만 그냥 넘어갔다.
존 카니는 이 영화에서 밴드의 시행착오..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통통 튀는 음악 몇 곡, 옛날에 멋졌던 블링블링한 의상들, 그리고 연애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을 영화로 찍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 전개의 중심을 차지하는 연애 이야기가 너무 재미가 없다.
그냥 음악에만 몰빵해서 2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그랬나 싶었다.
남자애 여자애가 자기 가족 얘기를 꺼내면서.. 기쁜 슬픔인가 뭔가 얕은 수작 부리는 대사를 늘어놓고.. 영화는 너무 노잼이 되어버린다.
여기서부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보여질지 훤해서 지루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영화의 좋았던 점들을 짚고 가자면
1.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깔리는 환상 장면
뮤지컬 영화처럼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여 춤사위를 벌인다. 이게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여주인공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남주인공이 그리는 상상이기 때문에 특이한 슬픔을 자아낸다. 정말 그저 그렇게 뻔히 흘러가는 영화에서 딱 하나 건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각적으로도 매우 즐겁다.
2. 암울한 동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트레인스포팅>을 떠올렸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 동네가 시궁창 동네임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형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집을 못 나서는 게 좀 슬펐다. 내가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에 이런 테마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3. 악역 캐릭터에게 관용을 베풀기
나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일진 캐릭터가 언제쯤 주인공을 방해하는 최후의 관문으로 등장할지 기대했는데 영화는 주인공이 그에게 관용을 베푸는 식으로 악역 캐릭터를 멋지게 활용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저런 사람도 자기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면 잘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도 느꼈다.
영화 전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존 카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 카니는 <원스>에서 하던 걸 음악과 내용 면에서 메인스트림화한 <비긴 어게인>으로 대성공을 이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비긴 어게인>에서 <싱 스트리트>로 가면서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주인공을 어린애들로 바꾸었다. 그거 말곤 진짜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연애 스토리는 확실히 구려졌다.
기존에 먹혔으니 똑같은 걸로 안전빵 영화를 만드는지, 아니면 존 카니가 실제로 이딴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 만들면 앞으로는 이 사람 영화 보고싶지 않다.
내용이 지루함의 끝을 달렸다.
소년 소녀의 꿈.. 좌절.. 그리고 희망..! 이런 얘기를 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방식으로 대충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음악은 충분히 잘 만드니 스토리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음악에 몰빵하든지 하면 좋을 것 같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