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데이빗 린치는 30년간 명상을 해온 명상의 고수로, 2005년 '의식 기반 교육과 세계 평화를 위한 데이빗 린치 재단'을 출범시켰다. 따라서 이 책의 판매수익은 각 학교의 초월명상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으로 보내진다. (책날개 지은이 소개)
영화에서 뭔가를 보았을 때, 좀 더 그것의 정체를 명확히 보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친구와 다시 얘기를 나눠 보자. 그러다 보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38p
이처럼 한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거나, 영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이러저러한 효과를 가지지 않을까 염려한다면 당신은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냥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라. 아무도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40p
<블루 벨벳>의 첫 번째 퍼즐 조각은 빨간 입술, 푸른 잔디, 그리고 바비 빈튼이 부른 노래 [블루 벨벳]이었다. 그다음 조각은 풀밭에 떨어져 있는 잘린 귀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당신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최초의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풀려나간다. 41~42p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순수하고 진동하는 의식의 바다가 있다. 초월명상을 통해서 '초월'하게 될 때 당신은 순수한 의식의 바다로 잠수해 들어간다. 그 바다로 풍덩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 행복감으로 당신은 떨게 될 수도 있다. 순수한 의식을 경험하면, 의식의 바다는 더 생생해지고 더 넓어진다. 또 의식의 바다는 더 펼쳐지고 더 자란다.
(...)
또 의식을 확장하면 당신은 깊은 곳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창의력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의식을 확장하면 당신은 환상적인 게임을 즐기듯이 삶을 살 수 있다. 44~45p
영화 <듄>은 여러 사람의 앞길을 망쳐 버렸다. 결국, 여러 사람이 영화제작에서 손을 떼게 됐다. 75p
특히 처음 리허설 때는 정말이지 많은 얘기를 하게 된다. 여러 가지 말을 나누는데, 때로는 이상하거나 쓸데없는 얘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우들과 조금씩 코드를 맞춰 간다. 85p
흔히 '리허설'이라고 하면 배우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부문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리허설도 있다. 모든 제작진이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는지, 본래 아이디어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다. 86p
다음과 같이 말하면 일이 점점 더 제대로 굴러가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고, 여기가 우리의 현 위치입니다. 우리가 성취할 바는 이것입니다." 90~91p
[트윈 픽스] 92~94p
(파일럿 에피소드 촬영 중 의상 담당자 프랭크 실바로부터 킬러 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사연)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아이디어는 기묘한 방식으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꿈꾸는 일이 촬영장에서 생긴다.
그렇지만, 나도 이 장면을 어디에 쓸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꿈꾸기 시작한다.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도록 내버려 두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는 최종 완성판이 나올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항상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100p
예술가 중에는 분노나 침울함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예술 작업에 도움을 준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분노나 두려움을 꽉 움켜쥐고 작품 속에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에 빠지면 예술가로서의 번득이는 예지나 힘을 잃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108p
나는 한 인간이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포를 회피하려고 마음이 스스로 기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 "심인성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접하게 됐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런 심리현상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121p
나는 상자와 열쇠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127p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도, 도구와 장소가 있는 작업실이 없으면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133~134p
[펠리니] 140~141p
펠리니는 나를 옆에 앉혔다. 그는 침대 두 개 사이에 작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약 30분간 얘기를 나눴다. 나는 질문을 별로 하지 않고 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옛 시절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옆에 앉아 얘기를 듣는 것은 정말로 좋았다. 이윽고 우리는 병실을 나섰다.
그때가 금요일 밤이었는데, 일요일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 결코 깨어나지 못했다.
"큐브릭이 '오늘 우리 집으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우리는 대찬성을 했죠."
그날 그들이 큐브릭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이레이저 헤드>를 보여 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지금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143p
제작사나 돈을 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럴 때 언제나 역효과를 빚는다.156p
당신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영화제가 수없이 많다. 영화제에 수없이 출품하다 보면 나중에라도 배급이나 재정 지원을 얻을 수도 있다. 156p
행복을 키우고 직관을 키워라. 일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라. 그러면 당신의 얼굴은 평화로운 가운데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그러한 당신을 보고 친구들도 행복해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자리를 함께하고 싶어 할 것이다. 162~163p
<로스트 하이웨이>
이러한 영화의 무겁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이끌리다 보면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에 뭔가 숨겨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지만 정작 감독은 '그런 식의 독법은 필요치 않다.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184p
유투브에서 데이빗 린치의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그가 웬 초월명상에 대해 강의하는 걸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그가 얘기하는 초월명상이란 게 딱 봐도 사이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망한 채로 있다가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되어 충동적으로 이 책을 사 버렸다.
이 책은 데이빗 린치의 짦은 메모들로 이루어진 에세이이다. 국내 제목은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컬트의 제왕이 들려주는 창조와 직관의 비밀]이지만 원제가 [Catching the big fish: meditation, consciousness & creativity]이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에서부터 이 책의 판매수익이 데이빗 린치가 세운 초월명상 재단에 전달된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하진 말자...
이래저래 더 실망한 채로 책을 보았는데 내게 생각보다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선 데이빗 린치가 그렇게 좋다 하는 명상은 해 볼 생각이 없다. 나는 명상을 통해 의식을 확장시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근거없는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린치의 작업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같은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
린치의 말에 따르면 그는 '빨간 입술', '푸른 잔디', '바비 빈튼의 블루 벨벳'같은 퍼즐 조각을 차례차례 떠올리면서 <블루 벨벳>을 구상해나갔다고 한다. 아, 역시 보통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니었구나. 그의 영화는 순간 머리를 스친 이미지들의 집합이었다. 그가 영화를 구상한 방식처럼, 영화를 다시 볼 때는 논리보단 직관으로 풀어봐야겠다.
어두운 린치의 세계관과는 달리 그는 행복한 상태에서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더불어 스트레스같은 부정적 감정에서 예술을 끌어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딱 그게 내 방식인데...
이렇게까지 다 알려주는데 린치의 방식대로 한 번 작업해보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만들어 보고 싶은 의지가 샘솟았다.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담겨있다. 물론 그의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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