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0일 일요일
<그 후> 불타오르고 남은 재같은
옛날부터 홍상수 영화 정주행을 하고 있어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이후로는 매번 극장에서 그의 신작들을 관람했다.
이번이 극장에서 본 홍상수의 세 번째 영화이다.
영화 볼 때는 별로인데 끝나고 나면 뭔가를 남긴다.
영화가 별로라고 느낀 이유는 대사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권해효는 알바를 하러 온 김민희에게도, 다시 찾아온 김민희에게도 똑같이 세세한 가족사를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알바생을 뽑을 때도, 자기를 찾아온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정도로 자세한 것은 묻지 않을 뿐더러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지도 않는다.
홍상수가 일상적인 대화법을 몰라서 이런 장면을 반복하는 건 아닐텐데, 그렇다고 그 이유가 영화에서 보이지는 않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창문 닦는 남자처럼, 홍상수 감독은 그냥 이런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집어넣었다고 말할 것 같다.
이렇게 누구나 마음에 걸리겠지만 해결할 수 없는 장면들을 집어넣어놓고 그걸 관객에게 맡긴다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고 나서는 어리둥절했지만, 이제는 불쾌한 장난처럼 보인다.
<그 후>를 본 내게 남은 것은.
무언가 끝나버린 뒤에 오는 텁텁하고 건조한 감정이다.
권해효는 김새벽과의 사랑 때문에 가족도 포기하고 체면도 포기한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흐르고 김민희가 출판사를 다시 찾았을 때의 권해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체념한 듯 행동한다.
권해효는 결국 김새벽과 자신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헤어진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없어서 김새벽과 헤어진 것일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랑이 끝나버린 뒤의 아무렇지 않은,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권해효의 얼굴, 말투를 보여준다.
그것을 보고 나니 좀 슬퍼졌다.
이별을 겪고 나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단점이 명확해서 주저할 수도 있다.
권해효의 아내와 김민희의 싸움은 영화가 그 장면에 내어주는 긴 시간에 비해 재미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아마도 김민희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종교에 관한 대화를 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도올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홍상수 감독은 최근의 영화들과 자기 사생활이 일절 관계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밤과 낮> 이후로는 그냥 보기만 하는 것 같다.
최근작들은 성공률이 그렇게 좋지도 않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