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9일 일요일
<옥자> 봉준호이기 때문에 아쉬운 거겠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학교 내에 있는 극장에서 <옥자>를 보았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
그리고 영화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나서는 옥자가 어떻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는데 아쉬움이 좀 있어요.."
영화를 본 직후 친구와의 대화로 돌아가서.
1.
나는 옥자를 구출하려는 단체 ALF와 옥자를 이용하려는 미란도 회사 각각의 입장이 균형있게 제시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갸우뚱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ALF보다는 미란도 회사 쪽의 논리에 설득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봤던 것 같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해방하려는 ALF의 이야기는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 했다.
개체 수로만 따지면 한 마리 생명으로 더 많은 양의 고기를 제공하는 슈퍼돼지를 먹는 게 평범한 돼지를 먹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이들에겐 슈퍼 돼지 박람회를 망쳐놓음으로써 퍼뜨릴 정치적 메시지가 이 시간에도 도살되는 평범한 돼지들의 생명보다 값진 것이었나?
슈퍼 돼지를 구출하려 애쓰는 그들을 보니 그렇게 맛있다는 슈퍼 돼지가 한 입 먹고싶어졌
다.
미란도 사가 이루려는 목표에 대한 설득보다 오히려 ALF의 목표 설득이 부족했다.
2.
미자와 옥자의 사랑은 간단하다.
미자는 옥자를 사랑하고, 옥자도 미자를 사랑한다.
오프닝부터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열심히 납득시키려 들고, 나도 납득되었다.
미자에게는 옥자를 구하러 미국으로 갈 이유가 있다.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심플한 스토리는 봉준호 치고는 많이 실망스럽다.
3.
봉준호의 <괴물>은 대한민국이 괴물과 가족들에게 대응하는 사회적인 이야기와, 잃어버린 딸을 찾으려는 가족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두 잘 소화해냈다.
하지만 봉준호의 <옥자>는 ALF와 미란도 사가 대립하는 사회적인 이야기, 미자와 미란도 사가 옥자를 두고 대립하는 개인적인 이야기 양 쪽에 있어서 미흡했다는 생각이 든다.
4.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봉준호가 말하던 삑사리가 이거구나! 했던 장면이 있다.
미자가 미란도 사 카운터 앞의 통유리에 몸을 던지는 장면.
통유리는 한 번에 깨지지 않고 요란하게 진동하다가 잠시 뒤에 와장창 무너져내린다.
좀 있으면 미자가 유리에 몸을 던질 것이 명백한 상황 -> 그러나 유리는 깨지지 않는다. 휴 놀랐네! -> 하지만 방심한 사이에 유리가 무너져내린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데에는 꼭 엄청난 기술이 요구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어차피 깨질 유리,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얼마 안 든다.
미자의 할아버지는 미자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동시에 옥자를 팔아넘겨서 미자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 인물상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악역이라는 자각은 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미란도 사 직원 역으로 나온 최우식 캐릭터는 정말 쓸데없었다.
사대보험 얘기를 하지만 영화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다.
어설픈 관심이 오히려 영화의 통일성을 해치는 경우.
얼마나 큰 동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미란도 사에 보복을 하려는지 그가 ALF에 가입한다는 결말 또한 어이가 없었다.
루시 미란도라는 캐릭터와 낸시 미란도라는 캐릭터.
일부러 1인 2역을 시켜가며 쌍둥이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영화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
ALF와 미란도 사의 대립이 사회적인 이야기였다면, 옥자와 미란도 사의 대립은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직업의 분업으로 인해 우리 삶이 나아진 이유 중 하나로 직접 우리가 고기를 얻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점이 있다.
물론 동물의 죽음이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원한다면 고기는 얻으면서 동물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될 수 있다.
영화는 고통받는 슈퍼 돼지들을 보여주면서
자기 자신만 실천해도 좋을 신념을 남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신념이 강하기 때문일 텐데,
미란도 회사가 질 좋은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널리 공급하는 데 성공한다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줄어들 거라 말하는데,
미란도 회사가 슈퍼 돼지의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한다면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기아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세계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동물들을 뒤로 하고
전세계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생명들을 뒤로하고 굳이 미란도 사의 옥자 한 마리를 구출하려 애쓰는 데에는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보는데 설명이 미흡했다.
동물의 개체 수로만 따져 봤을 때 수많은 동물들을 구하는 것보다 옥자 한 마리를 구하는 게 낫다고
미란도 사에서 사육해서 도살하는 슈퍼 돼지를 영화 속 인물들은 참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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