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화양연화> 교내 소규모 영화감상실에서 잠을 이겨내며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간 학교에서 <화양연화>를 상영했다.
학교에 있는 작은 영화감상실에서 하루에 두 번씩 영화를 틀어준다.
이번달 초에 <화양연화>를 보러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반가운 마음에 보러 갔다.
감상실엔 2인용 소파가 3개씩 3열로 놓여있고, 나는 맨 뒤 가운데에 앉았다.
감상 신청자는 5명이었는데 내 앞에 한 남자만이 들어오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왕가위 영화답게 누가 누구인지, 지금 하는 말의 주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집에서 봤더라면 끊고 침대로 갔겠지만, 밖에서는 웬만한 똥작이 아니라면 꾸역꾸역 본다.
자다 일어나면 보통의 영화는 다 이해가 안 가서 재미가 없는데, <화양연화>는 내가 한 1분만 졸았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없었다.
오히려 잠들기 전보다 정신이 선명해져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 없었다.
영화는 한편으로 웃겼다.
사람이 움직이는 장면에 슬로우가 걸리면 어김없이 노래가 깔린다.
계속 똑같은 노래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게 웃기다.
<화양연화>의 마지막은 제목이기도 한 화양연화를 가슴 속에 묻으며 끝이 난다.
사랑이 지나간 뒤 그리움에 그들이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간 마무리가 매우 좋았다.
영화 마지막에 끝날 때 자막이 나오는 것도 정말 좋다.
나는 나중에 영화를 만들면 꼭 마지막에 영화 끝날 때는 자막을 넣고 싶다.
예전에 제대로 못 본 것 같아서 두번째 보았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못 봤다.
영화가 별로다 싶었으면 앞으로 안 볼텐데, 영화가 괜찮아도 또 볼지도 모른다.
이번에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이들이 걸어다니는 건물이다.
실제로 있는 곳일까?
벽에 알아볼 수 없는 그림들이 수없이 붙어있다.
어떻게 저런 장소를 헌팅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이키드 런치> 영화가 마약중독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면?
하드 용량이 부족해 영화 파일을 지울 때면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이 영화를 안 볼 것 같아서 지우면 나중에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싶어져서 다시 다운을 받게 된다.
그렇게 다운을 받고 나선 정작 영화를 안 본다.
원할 때 보고싶은 영화를 바로 볼 수 있게 미리 영화를 다운받아 놓지만, 어째선지 정작 파일 목록을 볼 때는 끌리는 영화가 없고 거기서 지워버린 영화가 뒤늦게 보고싶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이다.
지울까 고민되는 영화는 영상을 틀어서 대충 몇몇 장면을 훑어본다.
<네이키드 런치>는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 때 보았던 특이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휴지통에 남아있던 파일을 복원시켜서 겨우 보았다.
문제의 장면은 타이프라이터가 <비디오드롬>의 살아 움직이는 TV처럼 부드럽게 숨쉬다가 남근을 발기시키고 침대 위에 엉켜있는 남녀에게 올라타 엉덩이를 들썩대는 장면이다.
타이프라이터의 남근이 꽤나 에로틱했고 거기에 깔린 정신없는 재즈음악도 좋았다.
나중에 가면 이 장면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한 번 잠들었음에도 시간내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약에 취한 빌이 헛것을 보며 겪는 기이한 일들로 이루어진다.
밑도끝도 없이 커다랑 풍뎅이가 나타나 아내를 죽이라고 명령하질 않나
카페에서는 지인이 갑자기 외계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떤 아저씨는 입술 모양과는 다른 말을 텔레파시로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빌의 표정이 정말 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어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속으로 머뭇거리는 느낌이라 정말 좋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정말 영화에 맞는 배우를 잘 캐스팅하는 것 같다.
영화가 재미없어진 건 뒷부분으로 가면서 영화가 이해되려고 하면서부터이다.
툭툭 터져나오는 괴기스러운 장면들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로 보고 있었는데
빌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몰입이 되지 않았다.
초반부의 에너지만은 실로 엄청났다..
원작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것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엑시스텐즈>를 볼 것 같다.
<라쇼몽> 소설 [덤불 속]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보았지만
대학 수업시간에 재밌는 과제를 내 주었다.
[덤불 속]이라는 소설을 읽고 '범인'이 누구인지 논리적으로 밝혀오는 것.
마치 형사가 된 것처럼 소설 속 여러 인물의 증언을 읽으며 꽤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 과정이 잘 안 풀려서 편법으로 영화 <라쇼몽>을 보았다.
확실히 활자로만 읽다가 이미지가 더해지니 이해가 더 잘 갔다.
그러나 영화 <라쇼몽>은 소설 외부의 상상력을 끌어들여 자의적으로 결말을 덧붙였다.
영화는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뜬금없이 희망적으로 끝이 난다.
흥미롭긴 하지만 소설 속의 단서들로만 범인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던 나는 영화의 이미지에서만 영감을 얻고 혼자서 나름의 결론을 지었다.
내가 보기에는 나의 추리가 완벽했지만, 범인을 다른 쪽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놀랐다.
이 과제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같은 범인을 지목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각자의 단서를 합친 뒤 발표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의 추리를 반박하며 내 주장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발표를 할 때는 어째서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점수가 배당된 과제보다 더 열심히 해 갔는데, 원했던 만큼의 대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라벨:
구로사와 아키라,
덤불 속,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원작 소설
<비밀은 없다> 무엇때문에 독특했나,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JTBC [전체관람가]를 보다 이경미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다.
<비밀은 없다>의 예고편을 살짝 삽입해 주었는데, 필이 딱 꽂혔다.
숲 속에서 카메라가 낮은 높이에서 어딘가로 향해 가는 영상에 무키무키만만수 느낌의 노래가 깔렸다.
그 전에 누군가 <비밀은 없다> VR 상영이 무섭더라 하는 얘기를 한 것도 기억이 나서
내친 김에 영화를 직접 보았다.
정말 매력적인 영화였다.
OST가 마음에 들어서 며칠씩이나 들었다.
감독 인터뷰도 일부러 많이 찾아보았다.
영화 자체가 찝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기존 스릴러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서 더욱 놀라웠다.
시작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딸이 실종이다.
이야기는 파고들수록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 변화가 전혀 말이 안 되는 변화가 아니라 좋았다. 알고보면 다 영화 내부에 단서가 있는 식이다.
'와 어떻게 내용이 이렇게 되지?' 싶은 충격적인 장면들이 태연하게 찍혀서 더 놀랍다.
이제는 영화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았으니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분석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아리까리한 것은 마지막 구타 장면의 정서이다.
속시원해해야 할지.. 코미디로 웃어줘야 할지.. 허탈해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불쾌해해야 할지..
복합적인 정서가 느껴졌는데, 이 장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쉽다.
영화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뷰를 쓰기도 전에 김주혁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접한 소식이라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의 영화들을 몇편 더 돌려보고 싶다.
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 1408> 어린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설정으로 쥐어짜기
무서운 공포영화가 보고싶었다.
아무 것도 조사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누가 말해줬던 <1408>을 보았다.
기대 이하였다.
무서운 느낌은 있었지만 영화가 너무 발랄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무서움이 엄습하는 영화가 아니라
의외로 주인공이 묵는 1408호가 판타스틱하게 변화하는 화려한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밀실 배경 영화가 아니었다.
밀실 배경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사람이 많으면 대사로 승부를 보고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든 배경에 변화를 주고.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려는 힘겨운 노력이다.
주인공의 심리적 약점이 필요한 영화였는데, 그 약점으로 주인공이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설정을 넣었다.
똑같은 설정이라도 잘 표현하면 괜찮았을 텐데, 이 영화는 너무 기계적이었다.
쥐어짜기. 이 표현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에너미> 해석 글을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는..
내가 이 영화를 왜 보고싶어했더라?
꽤 오래 전부터 보고싶어했다.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충격적인 결말의 영화 순위 글 때문이다.
방 안에 커다란 거미가 붙어있는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얘기를 보고 난 좀 궁금해졌다.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건 내가 제이크 질렌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드니 빌뇌브가 꽤 유명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유독 요즘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말로 하면 뻔한 것 같지만 영화로 보면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초반에는 영상과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불일치시키는 연출이 있었는데 후반부에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굉장히 몰입감 있는 스릴러였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가 꽤 당혹스러웠다.
도플갱어가 주인공의 아내와 섹스하려고 주인공을 협박하는데,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리 나쁜 놈으로 표현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좀 더 생각해 보면 아 그럴 만도 했겠다 싶긴 하다.
그래도 연출 잘 하면서 이런 부분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로 당혹스러웠던 것은 앞서 언급한 결말이다.
이게 대체 뭐지? 싶으면서 이해가 안 가는 결말이었다.
엔딩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혼자서 꾸역꾸역 이해를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써 놓은 해석 글을 찾아 보았다.
사실 도플갱어 둘 중 하나는 가상의 존재였고, 거미는 욕망의 은유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나서 이 영화에 정이 확 떨어졌다.
좋지 못한 반전이다.
그동안 당연하게 보아왔던 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
밝혀진 반전을 아래에 깔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면 이해가 안 갈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극 자체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도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얘는 상상 속의 존재이며.. 이건 뭘 상징하고.. 결국엔 이러저러한 이야기다..?
관객에게 직접 말을 못 하는 시나리오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찍은 게 드니 빌뇌브의 실수였으면 좋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사가 낀 것처럼 영화 내내 누런 모습을 보여주는 황색 도시이다.
혹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이들이 사는 '도시'라고도 하던데, 공감이 간다.
<해피 투게더> 8월 영자원에서 의문의 버전으로
8월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재감상했다.
화면의 질감이 너무나도 좋았다.
필름상영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필름상영이었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필름을 부르짖는 이유를 알겠다.
부스스하고 선명하지 않았다.
끝나고 나가면서 주위의 누군가가 "몇몇 장면들이 잘렸다"고 한 말을 들었다.
정말 생각해 보니 오프닝 부분의 충격적인 베드신이 없었다.
그리고 장면들마다 필터를 씌웠는지 색도 달랐던 것 같다.
어떤 버전으로 상영을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 <해피 투게더>를 또 볼 때면 이 날만큼의 감흥은 없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잘 기억이 안 난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동아리에 가서 얘기를 할 때도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났다.
지금까지 내가 본 왕가위의 모든 영화들은 다 휘발성이 강하다.
볼 때는 느낌이 있지만 그 느낌이 내 머리로는 기억으로 잘 안 남는 것 같다.
8월에 극장을 찾았을 때 드디어 <해피 투게더>를 온전히 느낀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OST를 찾아서 많이 들었다.
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아내는 고백한다> 아내는 고의로 남편을 죽였나? 법정 스릴러
영자원 영상도서관에서 감상.
원래 보려는 영화가 있었는데 한글자막이 없어서 못 보고 차선으로 선택했다.
전혀 정보가 없는 감독이었는데 아는 형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1961년 흑백영화라니.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으나 막상 영화를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내용은 법정스릴러이다.
로프에서 남편의 줄을 끊어버린 여인과, 그 여인이 사모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했다.
연출 스타일도 그리 옛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베이비 드라이버> 정작 자동차 액션은..
에드가 라이트라는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동아리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얘기가 나와서 홧김에 여럿이 보러 갔다.
왕십리까지 가느라 지각을 해버렸다.
다행히도 내가 놓친 부분은 네이버에도 풀려있는 장면이라 아예 놓친 부분은 없었다.
영화는 내가 기대한 정도로 재밌지는 않았다.
병맛 액션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음악에 액션이 타이밍 딱딱 맞게 어우러지는 정도이다.
문제는 제목이 '베이비 드라이버'인 만큼 자동차 액션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자동차 액션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장면도 그리 잘 찍진 못 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액션 쪽에 신경을 더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자동차 액션보다 총질하는 장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에드라 라이트라는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싹 줄었다.
그냥 차라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하나 다운받아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밤샘영화제 <가족의 탄생> 가족과 가족이 이어지는 순간을 담아내다
내가 이 영화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남들은 다 좋다는데 재미없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다시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 밤샘영화제에서 보게 된 거, 예전에 봤을 때보다 좀 더 재밌게 봤으면 싶었다.
그렇게 보게 된 <가족의 탄생>이 이번 밤샘영화제에서 본 다섯 편의 영화 중 제일 괜찮았다.
어릴 때의 내가 이 영화를 몰라봤던 건 아마도 영화를 이해할 만큼의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다.
영화 색깔이 좀 독특하다. 어떤 장르 안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다.
코미디인 것 같으면서도 웃기려 만든 영화는 아니다.
드라마 장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옛날의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잘 안 왔을 것 같다.
좋았던 것은 영화의 섬세함이다.
예전에는 내가 둔해서 잘 캐치하지 못 했겠지만, 문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편의상) 1부에서는 문소리의 감정이 다 느껴졌다.
꼭 대사로 "짜증난다", "어이가 없다" 이런 말을 안 해도 감정은 다 전해진다.
오히려 그런 대사를 안 쓰고 어이없는 상황과 짜증이 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감정을 잘 전달한다.
눈치 없는 엄태웅과 그걸 다 받아주느라 지친 문소리를 보면서 1부에 깊이 빠져들었다.
2부는 날카로운 성격의 공효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하는 얘기는 너무 뻔해서 별로였다.
주변 신경 안 쓰고 자기 감정만 내세우던 사람이 뒤늦게 어머니의 유품을 보며 눈물을 터뜨린다..
3부는 오프닝에 나왔던 정유미와 봉태규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이제껏 보아오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이 연결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정유미가 1부에 나왔던 여자아이였다는 사실이 반전인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기차 역에서 배우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장면도 중요하다.
일단 크레딧 장면부터 보자.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어딘가로 향한다.
이들이 가족으로 묶이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몰라볼 때의 장면인가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을 캐릭터들이 서로를 못 알아보기도 하고
한 사람을 연기한 어린 배우와 젊은 배우가 마주치기도 한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 의미를 찾았다.
영화는 그동안 보여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의 이야기를 겪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그 장면이 특이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일반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유미가 맡은 캐릭터의 반전은 그동안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가족으로 묶일 때의 놀라움을 잘 보여준다.
엔딩 크레딧 장면과 함께 본다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 그 누구도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전혀 관련 없어 보였던 1부의 가족과 2부의 가족도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남자사용설명서> 유난히 긴 두 숏에서 현장의 에너지를 상상했다
요즘 JTBC에서 하는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다.
거기서 관심있는 감독이 생겨 지난번에는 <비밀은 없다>를 보았고
이번에는 <남자사용설명서>를 보았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이다.
[전체관람가]에서는 김보성과 이동준 배우를 캐스팅해 그들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특이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 이름은 <랄라랜드>.
랄라랜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이원석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남자사용설명서는 능력있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 하는 여자주인공이 의문의 '남자사용설명서' 비디오를 손에 넣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자인 입장에서 남자가 물건으로 다뤄지는 것이 유머라고 해도 보기 썩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를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두 장면을 눈여겨 보았다.
둘 다 오정세 배우의 연기를 꽤 긴 길이의 숏으로 담아낸 장면이다.
하나는 오정세가 다짜고짜 이시영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매우 긴 장면이고
하나는 오정세가 이시영이 바람이 났다고 착각하고 "잤지?"를 연거푸 물어보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이 제일 재밌고 특이했다.
영화 진행에 있어서 짧게 자르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었을텐데
오정세 배우가 너무 연기를 웃기게 잘 해서인지 일부러 길게 넣은 것 같다.
<랄라랜드> 메이킹 영상을 보니 이원석 감독은 현장 분위기가 되게 좋았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 두 장면도 매우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의 즐거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밤샘영화제 <매기스 플랜> 세상살이 쉬운 일 하나도 없구나
밤샘영화제 두 번째 영화.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서 골랐다는 말에 로맨틱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조금 나이든 사람들의 결혼과 육아, 불륜을 소재로 삼았다.
그 친구는 영화 자체의 톤이 부드럽고 귀여워서 이 영화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각본을 잘 써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을 참 잘 한다.
뻔하지 않게 적당히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영화를 돌이켜보면 나는 비슷한 영화로는 우디 앨런의 코미디 쪽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렇다 할 특징을 찾을 수가 없는 <매기스 플랜>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좋았던 씬은
그레타 거윅이 피클맨으로부터 기증받은 정자를 자궁에 주입하고
좋아하고 있는 에단 호크가 찾아와서 방과 몸을 깨끗이 하고 그를 맞이한 다음에
에단 호크가 그녀를 사랑한다며 고백하고 섹스를 하는 장면
처음 느껴본 감성이었다.
그 장면에서 흘러나온 노래때문인지 조금 슬픈 기분이었다.
하는 행동에서 인물들의 나이들었음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나이들었음이 왜 슬픈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나이듦을 원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물론 이 장면은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다.
결말 부분은 해피 엔딩을 암시하지만
매기의 아이의 아빠로 추정되는 피클맨이 어떤 남자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매기가 앞으로도 지난 일과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힘들었고 앞으로도 또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슬펐다.
물론 딱히 슬픈 영화는 아니다.
밤샘영화제 <싱 스트리트> 왜 더 크려고 하지 않는가?
과에서 진행한 밤샘영화제 다섯 편의 영화 중 첫 영화.
가장 기대하는 영화 한 편이었다.
개봉 당시 극장에 굳이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 시큰둥했지만
친구가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고, 가벼워서 다 같이 모여서 보기도 좋을 것 같았다.
영화는 밑도 끝도 없이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내용과 형식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
저 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귀여움과 뜬금없는 전개가 합쳐져 유머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본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갑자기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든지
뭔가 있어보여서 이름도 모르는 흑인 애를 밴드 멤버로 섭외한다든지.
좀 더 서론이 길어야 되는 거 아니야? 벌써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장편 영화를 세 번째 만드는 존 카니의 패기였다.
나는 지금까지 주구장창 데모CD 만드는 음악영화만 찍어온 사람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런 영화 찍을 거고, 이런 영화에서 안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은 이제 알아!
밴드의 리더는 노래도 잘 못 하고 악기도 못 다루지만 금세 엄청 좋은 노래 한 곡이 뽑힌다.
프로듀서는 이거 뭐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싶더니 복고 감성이 풀풀 풍기는 멋진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어버린다.
밑도 끝도 없다는 거 누구나 다 알지만 그냥 넘어갔다.
존 카니는 이 영화에서 밴드의 시행착오..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통통 튀는 음악 몇 곡, 옛날에 멋졌던 블링블링한 의상들, 그리고 연애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을 영화로 찍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 전개의 중심을 차지하는 연애 이야기가 너무 재미가 없다.
그냥 음악에만 몰빵해서 2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그랬나 싶었다.
남자애 여자애가 자기 가족 얘기를 꺼내면서.. 기쁜 슬픔인가 뭔가 얕은 수작 부리는 대사를 늘어놓고.. 영화는 너무 노잼이 되어버린다.
여기서부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보여질지 훤해서 지루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영화의 좋았던 점들을 짚고 가자면
1.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깔리는 환상 장면
뮤지컬 영화처럼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여 춤사위를 벌인다. 이게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 여주인공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남주인공이 그리는 상상이기 때문에 특이한 슬픔을 자아낸다. 정말 그저 그렇게 뻔히 흘러가는 영화에서 딱 하나 건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각적으로도 매우 즐겁다.
2. 암울한 동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트레인스포팅>을 떠올렸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 동네가 시궁창 동네임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형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집을 못 나서는 게 좀 슬펐다. 내가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에 이런 테마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3. 악역 캐릭터에게 관용을 베풀기
나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일진 캐릭터가 언제쯤 주인공을 방해하는 최후의 관문으로 등장할지 기대했는데 영화는 주인공이 그에게 관용을 베푸는 식으로 악역 캐릭터를 멋지게 활용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저런 사람도 자기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면 잘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도 느꼈다.
영화 전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존 카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 카니는 <원스>에서 하던 걸 음악과 내용 면에서 메인스트림화한 <비긴 어게인>으로 대성공을 이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비긴 어게인>에서 <싱 스트리트>로 가면서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주인공을 어린애들로 바꾸었다. 그거 말곤 진짜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연애 스토리는 확실히 구려졌다.
기존에 먹혔으니 똑같은 걸로 안전빵 영화를 만드는지, 아니면 존 카니가 실제로 이딴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 만들면 앞으로는 이 사람 영화 보고싶지 않다.
내용이 지루함의 끝을 달렸다.
소년 소녀의 꿈.. 좌절.. 그리고 희망..! 이런 얘기를 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방식으로 대충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음악은 충분히 잘 만드니 스토리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음악에 몰빵하든지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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