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본 두 번째 영화. 두 번에 걸쳐.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아.. 망했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애들이 재밌어했다.
그렇게들 이 영화가 쩐다고 하던데, 줄거리 절대 읽지 말고 보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학교로 가져갔다.
내 보는 눈은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이 영화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이다.
러닝타임이 절반이 지나가도 좀처럼 이야기가 시작할 것 같지 않자 '아.. 내가 영화를 잘못 골랐구나' 했지만 생각보다 애들이 되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나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이 영화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패를 너무 대놓고 보여줬다. 단지 그게 조합하기 까다로운 패였을 뿐이다.
나는 그걸 절대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야?' 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때리니 그냥 아픈 느낌만.
그냥 '아.. 그래?' 하고 시큰둥.
아예 전혀 다른,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반전을 주는 식이었더라면 정말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테다.
성전환과 안면이식 수술 등의 얕은 트릭으로 수를 쓴 '반전을 위한 반전'.
오밀조밀하게 큰 그림을 짠 하고 만들어냈는데 문제는 그게 별로 재밌지 않은 그림이야.
전반부의 과거 이야기가 대체 뭘 하고자 하는건지 답답한 느낌밖에 안 들었기에 나는 이 영화를 그리 좋은 영화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놀라웠던 건, 그동안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필연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던 모순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백 투 더 퓨처>에서 나오는, 과거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가 멀어지자 자기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식의 클리셰 말이다.
<타임 패러독스>의 시간여행은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그림처럼, 온전한 우로보로스 한 개체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 어떤 것도 해할 수 없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묘한 그림.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는, 애초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그림.
우리나라에서 붙은 '타임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의미는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일 테다.
이런 식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 없었으므로..
반전만을 보고 달려온 영화의 반전으로 앞부분의 지루함을 퉁쳐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앞부분의 지루함을 더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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