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일요일
<싱글라이더>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반전은 뭘까
<싱글라이더>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하는 아는 형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이다.
신인 감독이 시나리오만으로 이창동 제작에,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워너 브라더스 사에서 배급을 받았기에 그 형은 이 영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전문가 평점, 주위 사람들의 후기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문라이트>를 제쳐두고 난 <싱글라이더>를 보러 갔다.
이 영화를 본지 좀 됐지만 아직까지도 반전에 대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이병헌이 무언가를 보여준다며 소희를 끌고간 곳은, 소희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였다. 그리고 차례로 이 두 인물이 실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반전이었다.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감독은 그 이전부터 단서를 보여주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둔했나 보다. 나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이 사람들이 왜 항상 똑같은 옷만 입지~ 하는 생각만 조금 했다. 나는 이 영화의 반전이 매우 당혹스러웠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기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병헌이 유령이었다, 소희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극 초반에 보여줬더라면 '죽은 자의 여행'이라는 테마로 좀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후반부에 가서야 진실을 알게 된 나같은 관객들은 이 반전이 마치 이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인물들의 감정이지, 이 사람들이 죽고 살았고가 아니다. 내가 전달받던 감정들과 이 영화의 반전을 엮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내가 문제로 삼은 건 후반부에 위치한, 쓸데없는 반전이다. 지금 나는 이것을 '반전'이라는 형태로 보여준 것을 실수라고 생각한다. 집 가는 길에 반전 영화가 하나 생각났다. 실은 두 주인공이 근친상간을 저지른 부녀관계라는 반전을 담은 <올드보이>이다. <올드보이>를 본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반전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우며 후반부에 가서야 난데없이 밝혀진다. 하지만 나는 이 반전을 그리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극의 짜임을 이유로 들기에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 반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별 당혹감이 없던 것이다. 나는 반전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반전을 모르고 본 영화들이 있었나? <싱글라이더> 말고는 잘 생각이 안 난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영화도 생각이 난다. 그 영화는 시간이동 능력자의 인생에 개입했던 여러 인물들이 실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반전을 담고 있다. 내가 느낀 그 영화의 반전은, 반전을 위한 반전일 뿐이었다.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물론 잘 짜인 반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만족스러운 반전영화는 아마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맞는지 확인하려면 내가 알지 못 하는 반전을 담은, 더 나가서는 반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반전영화를 더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만족하는 반전은 무엇인가.
만약 후반부에 반전이 있다면, 그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암시해줘야 한다. 그 반전이 어떤 반전인지도 관객 쪽에서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동시에 패를 너무 대놓고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관객이 추론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논리적인 절차를 밟아야만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리력은 관객마다 다르다. <싱글라이더>나 <타임 패러독스>, <올드보이>의 반전을 미리 예상했던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의 뒷부분을 내 쪽에서 예측하는 걸 즐기지 않기에 추리력이 둔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리력의 정도가 다른 관객들의 머리를 뻔하지 않으면서도 짜릿하게 때리는 반전은 어떻게 만들까.
모두에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일까? 어떻게 반전을 만들어야 관객들이 따라서 호응해줄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어느 반전영화를 보고나서 했던 생각들이다.
<싱글라이더>에서 내가 보고 있던 건 이병헌의 감정이다. 영화의 만듦새가 그것을 무시해달라는 듯 보이지만 짧게 덧붙인다. 캐나다에 보낸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병헌과 나는 허탈함을 느꼈다. 아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말한다. 내가 그동안 위하던 아내는 그걸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일하고 있었나? 내 노력의 결과가 내 아내와 아들에게 좋은 쪽으로 향하면 나도 좋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남들을 기쁘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던 나로서 공감이 가는 감정이었다. 배우자의 불륜에 충격을 받는다는 건 여느 작품에선 가벼운 설정 정도로 쓰이지만 이 영화는 거기서 오는 감정을 보다 천천히 그리고 세세히 전달하려 했다.
생각지도 못 했던 아내의 외도와 생각지도 못 했던 나의 죽음은 그 형태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것들을 앞부분에서부터 적절히 조합해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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