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을 2주 전에 한 줄은 모르고 계셨다.
<해피 투게더>가 그 분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신다.
재밌게도 <아비정전>을 발제한 친구가 <해피 투게더>를 먼저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을 처음 보았다.
<해피 투게더>에도 장국영이 나오는구나 했는데 내가 장국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양조위였다.
양조위?
내가 아는 그 얼굴. 양조위가 이 영화에 나왔다니.
그러면 장국영은 이 영화에 안 나왔나?
아니다. 손 다친 그 사람이 장국영이었다.
이 사람이 장국영일 거라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아비정전>에서 본 잘생긴 모습이랑 전혀 달랐다.
아직도 난 이 사람 얼굴이 장국영이라는 걸 못 믿겠다.
양조위가 너무 좋았다. 양조위가 소리지를 때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집중을 안 하고 봤단 걸 깨달았다.
이 영화에 흑백 효과가 있긴 했나?
<아비정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있어서 왕가위의 영화는 휘발성이 크다.
바깥쪽에선 풍물패가 꽝꽝거려서 너무 시끄렸다.
둥둥 울렸다.
아직까지도 나는 어제 모임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들뜬 느낌으로 2시간이 가버렸다.
새로운 멤버 세 분이 오셨다.
한 남자분은 영화 마니아의 냄새가 느껴진다. 어제 뒤풀이에 온 유일한 젊은이다. 나는 뒤풀이에 가지 않았다. 그 분은 오늘 밤까지 다음주 발제 영화를 정해서 알려주기로 하셨다.
친구인 두 여자분은 내가 관심있는 과에서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끝나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다음주에도 왔으면 좋겠다.
난 이 영화를 재미없게 봤는데 얘기하다 보니 꽤 괜찮은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작년 초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영화가 재미가 없다.
다음주 소모임 때문에 <걸어도 걸어도>를 봤는데, 내가 안 좋아하는 가족 이야기긴 해도 마음이 여유로울 때 봤다면 그나마 더 괜찮게 봤을 거다.
더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지만 적지 않는다.
영화 얘기.
오프닝의 인상이 무척 강렬했다.
게이 섹스를 지켜본다는 게 나랑 안 맞는 일이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그 장면은 더러웠다.
이 섹스에는 사랑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고, 인상 쓰고 전투하는 것 같다.
장소가 그리 깨끗한 곳도 아니다. 거울엔 시꺼먼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방을 넓게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습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부분들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모임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이 바로 이 영화만의 화법이 아닌가 싶다.
이 이미지가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은 왕가위 본인도 했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를 초반부에 싣는 것은, 앞으로 할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나라면 이런 오프닝은 안 쓸 것이다.. 이 영화와 너무 크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오프닝 말고는, 영화 내부 얘기는이거 이거 좋다라는 말밖에 못 하겠다.
영화를 둘러싼 담론 애기.
발제자의 첫 화두는 퀴어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나는 이것을 동성애 영화라고 생각을 안 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고 말했는데 작년 내가 소모임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에 관해 얘기를 하다 호되게 혼났던 생각이 났다.
그 영화도 게이 영화다. 근데 나는 두 등장인물의 성관계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걸 보고, 제이크 질렌할이 히스 레져를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그 말이 이성애적인 관점으로 동성애를 후려치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갔고 다음에 영화 리뷰를 쓰면서도 이해가 잘 안 갔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기분나빠할 수도 있겠다..고는 느낀다. 내가 멋대로 들은 걸로 해석하면, 이성애자가 사람으로서 동성을 좋아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는 그 자체로 동성애인 것이다. 나는 내가 말한 방식대로 동성애에 눈 뜨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하고 말했으나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잘은 모르지만 이동진도 <캐롤> GV에서 이런 발언을 해서 욕을 먹은 걸로 안다. 내 말을 지적한 그 친구가 동성애자인가? 아닌가? 나는 괜히 궁금하다.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로 잘못한 경험 때문에, 나는 퀴어 영화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 얘기를 어제 모임때 할걸 그랬다. 어제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 돼서 못 말했다. 이성애자로서 동성애 영화를 보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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