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6일 화요일

<자유의 언덕> 별거 없다.

1월 9일. 영상자료원에서 시간에 쫓기며.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소리와 하룻밤 자는 데 실패한 카세료가 꾼 꿈이다.
별 의미를 넣지 않았겠지만 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영화가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편지라는 소재를 매개로 시간을 뒤섞은 건 홍상수 세계에서 일어난 아주 큰 변화이지만
그것에 대한 감흥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서스펜스를 자극하는 치밀한 장치로 쓰였을 만한 것이
치밀함이 개입되지 않는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은 둘 다 주연이 외국인 배우이다.
그들은 모두 한국에 잠시 들른 이방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이라는 점은 활용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홍감독이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예술성에 대한 논란이 자자하다.
해외에서는 다른 문화권에서 날아왔기에 더 신비롭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알지 못 하는 다른 나라 영화다 보니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는 게 좀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동양에서 보는 좋은 서구영화, 서구에서 보는 좋은 동양영화에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배경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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