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0일 목요일

<김씨 표류기> 동아리에서.


동아리 신입 멤버가 추천해서 본, 간만에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만 모임에 오지 못한 친구가 무슨 얘기가 있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특별한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다.

1
손익분기점은 200만이지만 관객은 72만이 들어서 저주받은 영화라는 표현을 했다.
이 영화는, 정말 괜찮은 영화이다. 그렇게 외면받을 만한 영화가 아니다.
시대를 좀 앞서간 감이 있다.

2
각본을 잘 썼다는 생각을 했다. 괜찮은 대사들도 많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들이다.
간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대화 솜씨, 검은 옷 남자

1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찍을 때의 홍상수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영화는 괜찮았다.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후배와 같이 교내 영화관에서 보았다. 이 영화관에선 좋은 영화를 보든 안 좋은 영화를 보든 그 시간이 좋다.

2
이번 영화를 보면서, 대화로 시작해 대화로 끝나는 부드러운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홍상수의 솜씨에 다시금 감탄했다.

3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신경쓰였던 것은 1부와 2부에 기묘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검은 옷 남자'이다. 나는 그 캐릭터를 어떻게든 이해하려 했지만 그 노력은 실패로 그쳤다. 홍상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넣은 캐릭터라고 한다. 이해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막무가내식 인터뷰를 본 나는 더이상 물음을 던질 수가 없었다. 더 물어봐도 안 알려줄 것 같다. 궁금증을 품기를 그만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이 맥거핀은 관객을 홀리는 정도가 심하고, 상당히 무책임하다. 고약한 장난이다. 나는 이 캐릭터는 없는 편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4
김민희가 부르던 노래가 입에 맴돈다.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5
거의 모든 순간이 좋았다.

6
두 번 볼 의향이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7
그동안 살면서, 혹은 일들을 겪은 최근에 느낀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인용되는 구절들을 통해 표현하는 영화이다.

8
그는 자기 영화와 사생활 사이에 선을 그었지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2017년 3월 26일 일요일

<싱글라이더>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반전은 뭘까



<싱글라이더>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하는 아는 형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이다.
신인 감독이 시나리오만으로 이창동 제작에,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워너 브라더스 사에서 배급을 받았기에 그 형은 이 영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전문가 평점, 주위 사람들의 후기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문라이트>를 제쳐두고 난 <싱글라이더>를 보러 갔다.

이 영화를 본지 좀 됐지만 아직까지도 반전에 대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이병헌이 무언가를 보여준다며 소희를 끌고간 곳은, 소희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였다. 그리고 차례로 이 두 인물이 실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반전이었다.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감독은 그 이전부터 단서를 보여주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둔했나 보다. 나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이 사람들이 왜 항상 똑같은 옷만 입지~ 하는 생각만 조금 했다. 나는 이 영화의 반전이 매우 당혹스러웠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기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병헌이 유령이었다, 소희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극 초반에 보여줬더라면 '죽은 자의 여행'이라는 테마로 좀 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후반부에 가서야 진실을 알게 된 나같은 관객들은 이 반전이 마치 이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인물들의 감정이지, 이 사람들이 죽고 살았고가 아니다. 내가 전달받던 감정들과 이 영화의 반전을 엮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내가 문제로 삼은 건 후반부에 위치한, 쓸데없는 반전이다. 지금 나는 이것을 '반전'이라는 형태로 보여준 것을 실수라고 생각한다. 집 가는 길에 반전 영화가 하나 생각났다. 실은 두 주인공이 근친상간을 저지른 부녀관계라는 반전을 담은 <올드보이>이다. <올드보이>를 본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반전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우며 후반부에 가서야 난데없이 밝혀진다. 하지만 나는 이 반전을 그리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극의 짜임을 이유로 들기에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 반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별 당혹감이 없던 것이다. 나는 반전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반전을 모르고 본 영화들이 있었나? <싱글라이더> 말고는 잘 생각이 안 난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영화도 생각이 난다. 그 영화는 시간이동 능력자의 인생에 개입했던 여러 인물들이 실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반전을 담고 있다. 내가 느낀 그 영화의 반전은, 반전을 위한 반전일 뿐이었다.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물론 잘 짜인 반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만족스러운 반전영화는 아마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맞는지 확인하려면 내가 알지 못 하는 반전을 담은, 더 나가서는 반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반전영화를 더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만족하는 반전은 무엇인가.
만약 후반부에 반전이 있다면, 그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암시해줘야 한다. 그 반전이 어떤 반전인지도 관객 쪽에서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동시에 패를 너무 대놓고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관객이 추론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논리적인 절차를 밟아야만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리력은 관객마다 다르다. <싱글라이더>나 <타임 패러독스>, <올드보이>의 반전을 미리 예상했던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의 뒷부분을 내 쪽에서 예측하는 걸 즐기지 않기에 추리력이 둔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리력의 정도가 다른 관객들의 머리를 뻔하지 않으면서도 짜릿하게 때리는 반전은 어떻게 만들까.
모두에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일까? 어떻게 반전을 만들어야 관객들이 따라서 호응해줄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어느 반전영화를 보고나서 했던 생각들이다.

<싱글라이더>에서 내가 보고 있던 건 이병헌의 감정이다. 영화의 만듦새가 그것을 무시해달라는 듯 보이지만 짧게 덧붙인다. 캐나다에 보낸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병헌과 나는 허탈함을 느꼈다.  아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말한다. 내가 그동안 위하던 아내는 그걸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일하고 있었나? 내 노력의 결과가 내 아내와 아들에게 좋은 쪽으로 향하면 나도 좋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남들을 기쁘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던 나로서 공감이 가는 감정이었다. 배우자의 불륜에 충격을 받는다는 건 여느 작품에선 가벼운 설정 정도로 쓰이지만 이 영화는 거기서 오는 감정을 보다 천천히 그리고 세세히 전달하려 했다.
생각지도 못 했던 아내의 외도와 생각지도 못 했던 나의 죽음은 그 형태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것들을 앞부분에서부터 적절히 조합해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에브리바디 원츠 썸> 너무 점잖아


포스터엔 '약 빤 코미디'라고 적혀 있으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진짜로 약 빤 영화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고편도 참 재미없어보이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이번에 부활하는 소모임 첫 모임때 이야기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등 관련해서 태클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안 야해서 태클이 걸렸다.


영화는 별로였다.
파티를 몇 번 하는데, 재미가 없다. 파티하는 영화로는 <프로젝트 X>가 좋다.
너무 점잖다.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것이 엔딩이다.
드디어 등장인물들이 수업을 듣는다! 개강 3일 전부터 놀기만 하다가 수업 들어가서 자는 것이 엔딩이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문장을 보고 딱 잠이 든다. 아니 아예 보지도 않고 잠 드는 것 같다.
'한계치를 낮게 자체설정'했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기꺼이 바보천치가 되기로 한 이들!
여기서 무슨 얘기를 더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야구를 명목으로 학교에 왔는데도 야구 하는 게 10분 정도 나온다. 10분도 안 나왔던 것 같다.
그 사실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이거 볼 시간에 <보이후드>를 봤더라면.

<멀홀랜드 드라이브> 실렌시오 & 3일간 우울함 & 10가지 단서



이번에 세 번째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았다.
소모임 때문이다.
소모임이 아니었더라면 나중에야 다시 보았을 것이다.
내가 소모임에 린치를 전도해서 린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이번에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발제했다.
초반부 2시간을 보다가 집에서 나와서, 학교에서 나머지 30분을 마저 보는 식으로 감상했다.

이 영화를 어느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실렌시오 극장에서의 일이 열쇠가 되었다.
영상과 소리는 분리된다. 그 분리되는 방식이 특이하다.
영상과 소리는 처음엔 하나인 것처럼 놀더니, 영상이 소리를 벗어난다.
트럼펫 연주는 계속되고 있지만 연주자는 트럼펫을 떨구고, 노래를 부르던 여인의 노래는 계속되지만 그녀는 쓰러지고 만다.
소리가 지속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금발 여인과 흑발 여인의 관계를 유추해 보았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끝난 지 오래이지만, 한 쪽에서는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전반부의 기나긴 꿈 장면으로 표출되었다.



영화 얘기는 많이 하지 못 했다. 방금 그 얘기도 하지 못 했다.
소모임에서는 영화와 스토리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나는 스토리가 우선이고 나머지 촬영이나 음악 등의 요소가 스토리를 도운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동등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스토리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말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이루지 못 했다. 소모임에 작년보다 사람이 많아진 것은 좋지만,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어째서인지 여전하다.
나는 그것을 공간의 문제라고 지금 생각해 본다.
우리 동아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좀 더 좁았고, 어느 한 명의 권위가 부각되지 않는다.

쉬는시간이 끝나고, 나는 팬심으로 린치의 드라마 [트윈 픽스]와 <이레이져 헤드>의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한 10분만 보여주려고 했으나 30분은 잡아먹어버린 것 같다. 트윈 픽스 시즌 3 소식을 얘기 안 한 것이 무척 아쉽다. 그렇다고 톡방에서 말하기엔 너무 오타쿠스러울 것 같다.

영상을 보여주고 나서 나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괜히 튼 건가 싶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그 친구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날 다른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갑자기 쪽팔림이 밀려왔다. 왜? 내가 이런 특이취향을 밝힌 것 때문에! 이 친구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는데 내가 좋다고 이런 영상들 보여준 것이 실수였다. 이 날 엄청 우울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울함이 3일동안 지속됐다. 린치 빠돌이짓은 아는 사람들끼리만 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볼 것 같으니, 린치가 제시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단서를 첨부한다.
1) Pay particular attention to the beginning of the film: at least two clues are revealed before the credits.
 
2) Notice appearances of the red lampshade.
 
3) Can you hear the title of the film that Adam Kesher is auditioning actresses for? Is it mentioned again?
 
4) An accident is a terrible event... Notice the location of the accident.
 
5) Who gives a key, and why?
 
6) Notice the robe, the ashtray, the coffee cup.
 
7) What is felt, realised and gathered at the club Silencio?
 
8) Did talent alone help Camilla?
 
9) Note the occurrences surrounding the man behind 'Winkies’
 
10) Where is Aunt Ruth?

<해피 투게더> 시끄러운 생도에서 3월 23일.





<아비정전>을 하고 나서 2주 뒤에 OB 멤버분께서 <해피 투게더>를 발제하겠다고 나오셨다.
<아비정전>을 2주 전에 한 줄은 모르고 계셨다.
<해피 투게더>가 그 분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신다.
재밌게도 <아비정전>을 발제한 친구가 <해피 투게더>를 먼저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을 처음 보았다.
<해피 투게더>에도 장국영이 나오는구나 했는데 내가 장국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양조위였다.
양조위?
내가 아는 그 얼굴. 양조위가 이 영화에 나왔다니.
그러면 장국영은 이 영화에 안 나왔나?
아니다. 손 다친 그 사람이 장국영이었다.
이 사람이 장국영일 거라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아비정전>에서 본 잘생긴 모습이랑 전혀 달랐다.
아직도 난 이 사람 얼굴이 장국영이라는 걸 못 믿겠다.
양조위가 너무 좋았다. 양조위가 소리지를 때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집중을 안 하고 봤단 걸 깨달았다.
이 영화에 흑백 효과가 있긴 했나?
<아비정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있어서 왕가위의 영화는 휘발성이 크다.

바깥쪽에선 풍물패가 꽝꽝거려서 너무 시끄렸다.
둥둥 울렸다.
아직까지도 나는 어제 모임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들뜬 느낌으로 2시간이 가버렸다.

새로운 멤버 세 분이 오셨다.
한 남자분은 영화 마니아의 냄새가 느껴진다. 어제 뒤풀이에 온 유일한 젊은이다. 나는 뒤풀이에 가지 않았다. 그 분은 오늘 밤까지 다음주 발제 영화를 정해서 알려주기로 하셨다.
친구인 두 여자분은 내가 관심있는 과에서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끝나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다음주에도 왔으면 좋겠다.

난 이 영화를 재미없게 봤는데 얘기하다 보니 꽤 괜찮은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작년 초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영화가 재미가 없다.
다음주 소모임 때문에 <걸어도 걸어도>를 봤는데, 내가 안 좋아하는 가족 이야기긴 해도 마음이 여유로울 때 봤다면 그나마 더 괜찮게 봤을 거다.

더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지만 적지 않는다.



영화 얘기.
오프닝의 인상이 무척 강렬했다.
게이 섹스를 지켜본다는 게 나랑 안 맞는 일이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그 장면은 더러웠다.
이 섹스에는 사랑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고, 인상 쓰고 전투하는 것 같다.
장소가 그리 깨끗한 곳도 아니다. 거울엔 시꺼먼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방을 넓게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습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부분들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모임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이 바로 이 영화만의 화법이 아닌가 싶다.
이 이미지가 당혹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은 왕가위 본인도 했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를 초반부에 싣는 것은, 앞으로 할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나라면 이런 오프닝은 안 쓸 것이다.. 이 영화와 너무 크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오프닝 말고는, 영화 내부 얘기는이거 이거 좋다라는 말밖에 못 하겠다.

영화를 둘러싼 담론 애기.
발제자의 첫 화두는 퀴어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나는 이것을 동성애 영화라고 생각을 안 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고 말했는데 작년 내가 소모임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에 관해 얘기를 하다 호되게 혼났던 생각이 났다.
그 영화도 게이 영화다. 근데 나는 두 등장인물의 성관계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걸 보고, 제이크 질렌할이 히스 레져를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그 말이 이성애적인 관점으로 동성애를 후려치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갔고 다음에 영화 리뷰를 쓰면서도 이해가 잘 안 갔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기분나빠할 수도 있겠다..고는 느낀다. 내가 멋대로 들은 걸로 해석하면, 이성애자가 사람으로서 동성을 좋아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는 그 자체로 동성애인 것이다. 나는 내가 말한 방식대로 동성애에 눈 뜨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하고 말했으나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잘은 모르지만 이동진도 <캐롤> GV에서 이런 발언을 해서 욕을 먹은 걸로 안다. 내 말을 지적한 그 친구가 동성애자인가? 아닌가? 나는 괜히 궁금하다.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로 잘못한 경험 때문에, 나는 퀴어 영화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 얘기를 어제 모임때 할걸 그랬다. 어제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 돼서 못 말했다. 이성애자로서 동성애 영화를 보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게는..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와이키키 브라더스> 미처 감상모임에 오지 못 한 당신을 위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미처 감상모임에 오지 못한 당신을 위해.

2001 / 한국 /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 상영시간:109분 / 감독:임순례
출연:이얼(성우) 박해일(어린 성우) 오지혜(인희) 박원상(정석) 황정민(강수) 류승범(기태) 오광록(현구)
막다른 길-그러나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수안보로 가던 중 섹스폰 주자 현구는 밤무대 밴드 생활에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고교시절 밴드를 하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민수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고, 시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인기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마찰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성우에게 음악의 지표였던 음악학원 원장은 알콜 중독에 빠져 출장밴드를 하는 폐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성우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이들의 변화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올갠주자 정석은 여전히 여자들을 꼬시며 문제를 일으킨다. 강직한 드러머 강수는 목욕탕의 때밀이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석만큼의 재주가 없어 데이트 한번 변변히 못하는데 정석이 때밀이 아가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정석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큰 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강수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성우는 급하게 음악학원 원장을 팀에 합류시킨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계속 골치를 앓는 정석과 알콜 중독이 심각한 원장과 팀을 이끌어가는 것을 성우에게 버겁기만 하다. 고단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의 꿈과 맞닥뜨린 성우에게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계속 밤무대 밴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현구나 강수처럼, 또는 민수, 수철, 인기처럼 음악을 접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 출처:씨네21



2017년 1월 26일,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으로 감상모임 회원 수가 두명에 그쳤다.
하지만 영포자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으나 사정때문에 미처 오지 못한 shy-guy들을 위해 대담 형식으로 그 날의 모임을 정리하기로 한다.  .
참여자는 영포자, PeepingTom 이렇게 단 두 명!
※가급적 영화를 보고 나서 읽어주시길 애타게 호소합니다.
※※앞글자를 따서 영포자는 ‘영’, PeepingTom은 ‘피’으로 적습니다.
1: 특이한 감정
피:영화를 보니 괴작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던데.
영:괴작. 지금 시대에는 나올 수 없는 영화야. 이 때는 흥행영화 공식이 정립이 안 되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게, 내용만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써니>라든지 <즐거운 인생>. 되게 상업적인 영화들인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확실히 그런 영화들과는 다르단 말이야. 가벼운 청춘물로 소비되려 하지 않고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더라구. 많이 특이했어. 정말 파격적인 게 이 당시에는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네임밸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과거 회상 장면이 17분밖에 안 나오더라구. 2시간짜리 영화치고 회상 장면이 좀 짧지. 그 이후 박해일 얼굴은 한 번도 안 나와.

박해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스크린에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다.

영 : 일단 각자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간단히 얘기하며 시작합시다.
피 :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확실히 이상한 영화라는 생각은 했어요. 진짜 특이한 영화다. 괴작. 정서도 좀 이상해. 그냥 슬프다고 말하긴 그렇고. 슬픔이긴 한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슬픔의 감정은 되게 애상적이고 비극적인 거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 이것저것 다 붙어있어. 구질구질하고..
영 : 구질구질함이 좀 크더라.
피 : 찌질하고, 그런 게 희한하게 인물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희화화도 하고. 그런 게 특이하다 생각했어. 그러니까 이 인물에 대한 감정이 일방적인 연민같은 게 아닌, 일말의 조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소 안에 자조가 있고, 또 자조 안에서 그래도 지금은 살아야 된다는 묘한 희망같은 이상한 감정들이 다.. 엔딩을 봤을 때 그랬어. 완전한 비극이라기 보다는..




2: a+b=c!

영 : 제 짤막한 평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영화를 고른 이유. 작년 말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의 상황에 많은 영향을 줘가지고. 딱 이 영화로 정한..
피 : 개인적인 사유인가요?
영 : 개인적인 사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골랐는데. 예전에 처음 번째 봤을 때 재미는 없어도 나름 의미는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재미가 없다는 게 너무 걸렸어..
피 : 그래? 재미가 없었어?
영 : 사건 중에서 절정이라고 할 만한 게 마지막에 친구가 죽는 정도인 것 같은데. 이 영화가 특별한 일 없이 그저 흘러흘러가는 느낌이라서. 가장 클라이막스라고 할 만한 부분이 친구가 죽기 전에 행복하냐고 묻는 그 장면. 사람들이 그 대사 언급을 많이 하던데 그마저도 좀 약해.
피 : 그지. 이거 말고 있나? 클라이막스로 꼽을 만한 게?
영 :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영화같은데.
피 : 장례식 이후에 나오는, 다 벗고 기타치는 장면이 있지.
영 : 아, 그 장면이 하이라이트지! 가장 인상적인 게. 벌거벗고 있는 성우가 노래방 화면 속 바다랑 겹쳐지다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놀던 장면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데 되게 암담하더라. 장례식이 그 장면 전이었나?
피 : 응, 그 장면 전이었지.
영 : 비극성이 더 심화되네. 그 때 같이 놀던 친구들 중 하나는 이제 세상을 떠났으니까.
룸사롱 테이블 위에서 춤추며 노는 옷 벗은 아저씨들, 옷 벗은 여자들.
그리고 강요에 못 이겨 벌거벗고 노래하는 성우.
노래방 화면에 나오는, 어린 시절 해변에서 옷 벗고 뛰놀던 밴드 멤버들.


영 : 또 이거랑 비슷한 장면이 영화 앞부분에도 나오지. 현재에서 과거 얘기로 넘어가는 장면과, 과거 얘기에서 현재 얘기로 다시 오는 장면. 거기에도 이렇게 대놓고 몽타주 기법이 쓰이잖아. 애매하게 안 하고 이렇게 대놓고 보여주니 알아보기 쉬워서 좋더라고.

몽타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장면을 이어붙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편집 기법이다.

a-1
a-2a-3a-4a-5

영 : 일단 이 사람들이 성우랑 예전에 밴드 같이하던 친구들이라는 정보는 안 알려주고, 성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까 다른 친구들이 과거의 추억에 젖어서 흥에 겨운 얼굴로 연주하는 시늉을 하지. 그리고 성우 밴드가 부르는 세상만사라는 노래가, 과거의 박해일 밴드가 부르는 세상만사로 넘어가는 괜찮은 연결.


3: 점프컷과 단절

피 : 여기서 점프컷 좀 쓰지 않나?
영 : 어느 걸 말하는 거야?
피 : 여기서 옛날 밴드 공연으로 넘어갈 때 구도가 좀 차이가 났던 것 같은데.
영 : 구도는 좀 안 맞긴 하던데, 근데 그거는 뭐라고 해야 될까. 구도를 맞추려는 생각 없이 찍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해.
피 : 하긴 엄격한 형식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점프컷을 쓴 게 맞지만 장면 연결에서 일으키는 특별한 효과는 없으니까.
영 : 이 영화는 시작할 때부터 촬영이. 거기서부터 느꼈는데. 오광록이 떠난다고 하는 장면에서 살짝 컷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게 있어가지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는 촬영 가지고는 태클을 걸어도 별로 얻을 게 없겠구나 싶었어.
이 두 컷의 연결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끼셨나요?
피 : 근데 점프컷이란 게 아주 쉽게 말하자면 거창한 이유 안 붙여도 그 자체로 단절의 효과를 노리는 거니까. 점프컷의 인상이 쌓이고 쌓이면 부유하는 현재의 삶하고 연결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영 : 점프컷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
피 : 응. 일부러 그런 투박함으로.
영 :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확히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줄은 몰랐어.
피 : 영화 이론에서 쓰는 용어들이 다 그래. 나름대로 엄밀한 기준이 있긴 있는데 일반 영화에서 그 기준대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여기서 점프컷도 우리가 배운 점프컷 개념대로 이해하면, ‘그 자체로 소격효과를 불러일으켜서 사람들이 좀 더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라는 게 가장 기본적인 점프컷의 정의인데 사실 이 영화는 그런 정치적인 의도와는 관련이 없잖아 효과 자체가. 그러니까 이게 정말 촬영 미숙일 수도 있고..
영 : 아 점프컷이 원래 그런 의미가..

인물은 같지만 배경이 다른, 따로 찍은 두 장면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뚝 끊긴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피 : 원래 점프컷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게 <네 멋대로 해라>의 고다르지. 고다르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지. 그 사람이 생각했던 게 이런 거야. 브레히트가 말한 소격효과를 영화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건 영화 역사의 계보를 따라가야지 좀 더 맥락이 잡히는데, 누벨바그 감독들은 할리우드 메인스트림 장르영화의 엄청난 광팬이었거든. 서부극, 범죄, 스릴러, 멜로드라마 이런 거 엄청 많이 봤는데 그것만으론 성이 안 찼던 거지. 자기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런 메인스트림 영화들로 대중들에게 환상을 집어넣고 이데올로기로 지배하는 게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해서 누벨바그 운동이 시작됐어.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가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게 누벨바그 운동이거든. 아버지를 뛰어넘겠다! 점프컷이 그 과정에서 나왔어. 왜냐하면 점프컷하고 반대되는 편집 개념은 할리우드의 컨티뉴이티 에디팅이라고, 연속편집 기법인데 요새 거대 자본으로 만드는 영화들이나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영화들이 다 그렇지. 대중들이 영화를 딱 봤을 때 어디가 편집의 이음새인지 모를 정도로 유려하게 스토리라인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딱딱 맞게 말그대로 컨티뉴잉하는 느낌을 주는 편집하는 게 할리우드 영화의 목표인데. 그래야지. 대중들이 쉽게 즐길거리로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그냥 편안하게 영화를 보고 나오게 해야 하는 거지. 근데 누벨바그 사람들은 그게 싫었던 거지.
영 : (웃음)
피 : “영화는 그런 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치적이라고 하는 거야. 브레히트가 말하는 소격효과도 마찬가지야. 연극이든 영화든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이 아무 생각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갑자기 이렇게 확 점프컷처럼 튀는 장면이 나와서 관객들의 인식을 환기시키는. ‘당신이 보시는 것은 사실을 모사한 허구에 불과합니다. 절대로 이것은 당신들이 몰입해야 될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점프컷을 쓰는거야. 되게 장황하게 말했는데 원래 점프컷이 쓰인 건 그런 거지. 굉장히 정치적인 거지. <네 멋대로 해라> 봤으면 알잖아. 계속 장면이 조각나 있잖아.
영 : 나는 영화에서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실수로 점프컷이 나오는 경우를 많이 봐가지고..
피 :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 아니면 정서적인 효과를 노리는 걸수도 있어. 이 영화의 점프컷은 정서적인 효과를 가졌다 생각해. 현재가 과거하고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점프컷을 쓴다면 효과가 있지. 왜냐면 점프컷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단절이잖아. 확 잘려 있는.
영 : 근데 만약 내가 편집을 했다면 그런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아예 점프컷을 엄청 심하게 만들었을텐데.
피 : 왜 그런 단절과 부유효과가 커진다고 생각하냐면, 아까 말한 그 장면부터지. 왜냐면 처음엔 주인공 성우의 원샷에서부터 시작을 하잖아. 그리고 바로 다음 컷이, 나머지 밴드 친구들만 보여주잖아. 근데 보이스로만 따지면 이 장면에선 성우가 주인공이어야 된단 말이야.
영 : 성우가 주인공이어야 된다는 게..
피 : 그러니까, 이.. 과거 이야기는 사실 성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이해 했는데.
영 :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다 일단은 성우 중심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피 : 일단 그렇게 깔고 가자. 그래서. 여기 넘어가는 장면을 보면 그냥 평범한 편집이면 성우도 여기 앵글에 잡혔어야 되는데, 과거로 넘어갈 때 보면 친구들만 있다가 갑자기 성우가 화면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그 편집 자체가 일종의 벽처럼 작용하는 거지. 그러니까 뜯어보면 이 점프컷이 그런 의미에서 조금 특이하단 거지. 그러면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영 : 같은 장면을 보면서 저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벽을 잘 느끼지 못 했는데.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했던 생각을 그대로 말을 해 본다면. 여기(a-1)는 별다른 생각 안 했고. 여기(a-2)는 카메라 무빙이 좀 좋다. 아까는 정적인 카메라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한 사람 손만 보여주다가 다른 친구들까지 한 장면 안에 보여주는데 여기(a-4) 연기가 좀 좋았던 게, 표정이 다들 음악에 심취한. 과거에 젖은. 진짜 옛날 느낌 나는. 다들 과거의 낭만에 행복에 겨워 보였어. 여기서 바로 이제 확 과거(a-5)로 가는데 그냥 뭐라 해야 될까. 그냥 살짝 대형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정돈 했는데, 뭔가 단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지. 근데 그 대형이 달라진 걸 느꼈다는 걸 단절을 느낀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피 : 음 그죠. 나도 존댓말 해야 되나? (웃음) 저도 존댓말 해야 됩니까? 그냥 섞어가면서 말할게요.
영 : 그니까, 음.. 좀 흥미로운 건, 내가 직접 인지는 못 했는데 이런 게 쌓이고 쌓여서 그 단절감이란 걸 느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은연중에.
피 : 카메라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도 구분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나지. 성우(a-1)는 그냥 카메라가 고정돼 있고. 그 다음 방금 말했던 카메라 무빙..
영 :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웃음)
피 : 그러니까, 용어는 편하게 쓸게요 그냥. 좀 리듬이 다르다. 장면의 흐름이 다르다. 왜냐면.. 여기(a-1)는 고정이고 여기(a-2,3,4)는 동적이고 여기(a-5)는 고정이라는 건. 확실히 이 장면(a-5)하고 바로 지금 현재의 성우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a-1)은  리듬의 측면에서는 일치하는 거고. 그 사이에 있는 게(a-234) 확실히 튀는 거잖아. 블록처럼 존재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단절이 강조된다고 이렇게 말 하는게..
영 : (웃음)
피 : 그러니까. 여러 가지 방법로 설명이 되잖아. 그러니까, 여러 층위에서 말이지. 하나씩 다 설명..
영 : (웃음) 정말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피 : 하죠. 할 수가 있죠. 엉. 물론 이건 내 추측이 맞다는 전제 하에서 말하는 거지. 왜냐면 이 영화가..
영 : 점프컷을 의도했다는..
피 : 의도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자면 이 영화가 결국엔 과거와의 단절 때문에 부유하는 현재의 삶..
영 : 과거와의 단절 때문에 부유하는 현재의 삶?
피 : 이것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석이 되지. 왜냐면, 과거에 품었던 성우의 꿈이 지금은 안 이루어졌다. 그리고 또 이 때의 감정과 현재의 감정이 다르다..
영:그 얘기를 하니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4: 인물들에 대해

영 :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두 번째 보면서 느낀 게. 성우라는 사람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꿈은 무엇일까.
피 : 그러게요.
영 : 사실 그.. 뭐라 해야 될까. 과거에서도. 성우가 뭔가 ‘나는 음악을 해서 멋진 아티스트가 되겠어!’라는 생각도 안 하는 것 같고.
피 : 응. 맞어. 그건 확실히 아니야.
영 : 그냥 여자 좀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피 : 응 맞어.
영 : 지금의 성우와 비슷하게 성격은 좀 조용조용한 그런 느낌. 근데 지금 성우가 자기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이트에서 반주 해 주는 사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정말로 이 성우라는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이 음악 일에 뛰어든 거라면 이렇게 안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피 : 맞아 맞아. 확실히 맞아.
영 : 이 영화에서 꿈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은 많이 보이는데. 음.. 지금 이 우울한 현재에 집중을 하지, 이 우울해진 이유를 영화에선 찾을 수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영화가 좀 막연한 비관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피 : 아. 그런식으로. 음. 일리가 있네. 그건 확실히 동의가 돼. 과거에도 사실 성우가 음악에 대한 엄청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꿈을 품은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이건 맞아요. 박해일도 연기를 잘 한 거 같긴 해요. 약간. 애매모호한 거 있잖아요.
영 : 박해일이 그런 이미지가 좀 어울리긴 하지.
피 : 어울리긴 하죠. <살인의 추억>에서 그런 거 많이 느꼈었는데.
영 : 알 수 없는..
피 : 아무 것도 안 담겨 있는 것 같으면서도 괜히 뭔가 있는 느낌?
영 : 근데 진짜 박해일이 센 연기를 하는 건 본 적이 없네.
피 : 은근히 안 나왔지.
영 : 박해일이 센 연기 한 게 뭐가 있지?
피 : 거의 없지 않나? <최종병기 활>?
영 : 안봐가지고..
피 : 거기서 그냥 활 쏘는.. 근데. 방금 얘기 생각해 봤는데. 시간적 단절이 엄청 큰 것 같애. 생각보다.
영 : 시간적 단절.. 여기서는 한 20년 가까이 된.. "군대 갔다와서 10년 만이다." 라는 대사 보면 이제. 과거 얘기를 고등학생 때라고 잡는다면 열일곱에서..
피 : 미니멈 15. 맥시멈 20? 대충 그 정도?
영 : 18년 그 정도.
피 : 근데 그 원인이 안 잡힌다는 것도 말이 되는 게. 여기 있는 에피소드들이 그냥 엄청나게 소소한 에피소드들밖에 없어. 그냥..
영 : 근데 다 여자얘기밖에 없네.
피 : 좋아하는 애가 생겨가지고 고백하려 하는 거하고, 음향장비 태워먹거나 그냥 진짜 소소한 얘기들밖에 없어서. 20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뭘 했을까. 그걸 찾는다면 지금 성우의 처지에 대한 해석이 될텐데.
영 : 정말 뜬금없는 게. 누군가는 약대에 들어가고 누군가는 환경운동가.. 남은 한 명은 골프장 짓는 사업가..
피 : 그니까. 그 간극이 너무 크잖아. 그 20년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것에 대한 설명이..
영 : 과거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 해수욕장에서 노는 씬인데. 어떻게 정리가 안 된다. 과거가 현재에 대한 실마리가 되어줘야 되는데. 진짜 좀 단적으로 말하자면 여자캐릭터 한 명(인희)을 위해 들어가있는 것밖에 안 되지.
피 : 그래서 그냥 단절이라는 것에 계속 꽂히는 게. 이 과거 자체가 정말. 큰 흐름에서 봤을 때는 이것 자체가 그냥 하나의 균열이다. 이 17분이나 되는 시간 자체가. 러닝타임이 얼마지. 110분 정도 되는데. 좀 과격하게 말하면 내가 생각했을 때 이 17분이 없었어도 이 영화가 얘기는 됐을 거 같아 내 생각에는.
영 : 진짜 가능한.. 없어도 이 여자 인물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가능하고.
피 : 충분히 되지. 어 맞어. 왜냐면 과거에 어떤 모종의 썸을 타고 있었다 정도의 정보를 주는데. 이건 사실 아예 없어도 돼.
영 : 근데 뭔가 정서상으로는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피 : 그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계속 정서에 주목하는 이유가 사실 그것 때문이지.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게 결국 그것 때문이었어. 그니까. 진짜 뜬금없거든. 왜냐면은 이거 없어도 돼. 다시 노래방 씬으로 돌아온 거잖아.


영 : 보니까 이 영화에 없어도 되는 장면이라고 할 만한 게 조금씩 있네.
피 : 어떤 게?
영 : 예를 들자면 얘가 고등학교 앞을 걸어가는데 자전거 타는 애한테 부딪히는 장면. 그게 친구 만나기 전인데. 사실상 없어도 되는 장면이란 말이야. 그냥 뭐 부딪히고 나서 상대방에게 괜찮냐고 먼저 물어보는 데서 성우 성격을 알려주긴 하는데. 대머리 선생님 아직도 있냐고 하니까 학생은 모른다고 하고. 그것도 단절이라고 할 수 있나? (웃음)
피 : 과거와의 대면 아닌가?
영 : 아하.. 과거 생각을 하게 되는..
피 : 그런 의미없는 장면들은 거의 대부분 결을 쌓기 위한 거야.
영 : 진짜 결을 쌓긴 한 거 같애.
피 :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정서나 영화의 주제의식하고 연결이 되는 거. 예를 들면 음악선생님?
영 : 이외수 닮은.. (웃음)

닮았다….!

피 : 되게 오래 나오지 않나? 꽤 자주 나오는 것 같은데.
영 : 이 사람도 정서에 많은 기여를 한다고 느꼈어.
피 :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게. 불안의 정조를 자극하는 거지 이 사람은. 말하자면 죽음처럼.
영 : 내가 느낀 건. 과거에는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하늘같은 그런 존재였는데 지금은 지배인한테 “저 사람은 누구냐”는 소리 못 듣고 “저건 뭐냐”는 소리 듣잖아.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거기다가 알콜중독까지. 술마시는 장면도 엄청 많이 나오잖아. 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피 : 근데 그 선생님의 존재에 대한 당위는.. 내가 봤을 땐 류승범이 있음으로써 형성이 되는 것 같은데.
영 : 근데 류승범이 좀. 류승범이 완전 주연일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고. 소소한 조연이지. 얘가 이 밴드랑 같이 뭔가 할 것처럼 나이트도 때려치고 나왔는데 나중에 가서는 지배인 연락받고 다시 나이트로 돌아가서 그냥 알아서 잘 사는. 이 장면 보고 살짝 배신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 그 때 불렀던 노래가 '아가씨'.

영 : 결국 와이키키 나이트의 메인은 류승범이 됐구나. 머리색도 바꾸고.
피 : 야 이거 잘 부르긴 잘 부른다. (웃음)
영 : 밴드한테 빼먹을 거 다 빼먹고.
피 : 근데. 배신같은 느낌은 아닌데.
영 : 영악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근데 그냥. 뚜렷하게 뭐라고 말하긴 어렵다.
피 : 그냥 각자 갈 길을 간 거지. 성우 연기도 참 묘한 게. 배신감보다는 그냥 허탈한 느낌이지.
영 : 아 그렇지. 성우도 여기서 쫓겨난 입장이니까.
피 : 근데. 아까 그 선생님과 죽음에 대한 게 뭐냐면. 이 관계가 이렇게 보이는 거지. 류승범:성우=성우:선생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이 둘의 관계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지. 과거의 성우와 선생님의 관계도 현재 류승범과 성우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만약 지금처럼 어떤 변화의 계기도 안 보이는 삶이 지속돼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결국 성우가 지금의 이외수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냐.
영 : (웃음) 아니 근데 이외수 선생님이… (웃음)
피 : 닮긴 닮았으니까. 어. (웃음) 그래서 성우가 봤을 때는 좀 착잡할 수가 있는 거지. 자기가 미래에도 이 일을 하면서 벌어먹고 산다면 저 상태가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영 : 근데 류승범 대 성우는 성우 대 이외수라는 비교에 공감은 못 하겠는 게. 일단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캐릭터가 너무 달라서. 여기서 ‘아가씨’ 부르고 있는 류승범을 볼 때의 그 느낌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가 부르던 노래는 다 슬프고 우울한 노래밖에 없는데 류승범이 “아가씨 아가씨. 섹시한 아가씨” 이러는 노래 부르고 있는 거 보니까 좀. 아 얘는 젊은 애구나. 세대가 달라졌구나. 얘는 나중에 뭘 해도 제 살 길은 챙기겠구나. 얘 성격만 봐도 어디에 데려다 놔도 잘 할 것 같잖아. 그래서 얘가 성우처럼 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영 : 아 그리고 또 되게 특별했던 정서가. 옛날에는 진짜 자기한테 눈길 한 번도 안 주던 첫사랑이 이제는 먼저 성우를 알아봐주고 먼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관계의 역전이란 게 좀 묘하더라구. 진짜 되게 엄청 이쁘고 노래 잘 부르고 인기 많던 여학생은 지금은 억척스럽게 트럭 몰고다니면서 야채 팔고.. 내가 예전에 이 영화 가지고 썼던 글에서 강조했던 표현이 ‘스러져가는 풍경들’. 쓰러지는 게 아니야. ‘스러지는’.
피 : 쓰러져가는 게 더 마음에 드는데? (웃음) 스러져가는 풍경들..
영 : 장면을 몇 개를 얘기하자면 정말 극 진행에는 도움은 안 될지 몰라도. 황정민이 밭에서 술 먹다가 실수로 불 내는 장면. 근데 이 장면에 별 의미는 없어보여도 진짜 감정적으로 많이 와닿았던 게.


피 : 나도 이 장면 좋아.
영 : 되게 구질구질하고 이제는 슬퍼할 힘도 안 나는? 뭐라 그래야 되지. 진짜 알 수 없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느낌이다. 예전에 썼던 글 읽어볼게. '스러져가는 풍경들. 영화 시작부터 밴드 멤버 한 명이 떠난다. 나이트클럽이나 동네 행사장에는 짝퉁 가수들이 언제나 있다. 허구한 날 멤버들은 여자 문제로 싸우느라 바쁘다. 어릴 적 자기한테 눈길 한 번 안 주던 예쁜 여자애는 트럭 몰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기타 선생님은 알콜중독자가 되어있다. 일하는 나이트클럽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던 애는 음악 배워서 다시 일하러 들어간다. 동네를 떠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첫사랑을 멋진 카페에 데려가니 프러포즈하는 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근데 짝퉁가수들도 좀 재밌었는데. 너훈아가 두 명 나오는데 전혀 다른 사람. "그 너훈아가 아닌데요?” “너훈아 땜에 먹고 사는 사람 여럿이네~” 이런 대사도 나오지.


피 : 짝퉁이 두 명. (웃음) 그렇네?
영 : 이영자도 나오고. 처음엔 진짜 이영자인 줄 알았는데.
피 : 유명인들 많이 나와~


5: 낙관이냐 비관이냐

영 : 진짜. 그냥. 시골 느낌.
피 : 시골 느낌.
영 : 영화가 보여주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다 망해버린 시골같은..
피 : 진짜. 모든 게 멈춰버린. 그런 느낌이 좀 있어.
영 : 그것 때문에 이 영화만의 고유한 정서가 있긴 한데. 하 이번에 볼 때는 재미가 너무 없어가지고.
피 : 난 재밌게 봤는데. 소소한 느낌이 너무 좋았어.
영 : 소소한 느낌은 좋은데 그것만 가지고 따라가기엔 재미가 너무 없어서.
피 : 나는 이 영화 좋은 게, 아까 말한 부유하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거든. 근데 부유한다는 건 결국에는 어딘가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나뭇잎이 고인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 에피소드들을 돌아본다면 성우와 성우 친구들이 있는 이 공간이 말하자면 죽어있는 셈인거지. 근데 그런 데서 어떤 꿈을 가진다고 부유하는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꿈을 가지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영 : 이상하게 아비에서 발제를 하면, 예전에는 좋아했던 영화인데 다시 보면 좀 별로인 경우가 많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 영화에서 벗어나게 된 게. 처음에 봤을 때는 나도 나중에 저렇게 성우처럼 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래도 내가 저 사람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게 나는 그래도 뭔가를 하고싶다는 목표의식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저렇게는 안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근데 얘네가 목표와는 별개로 환경이 안 좋잖아. 서울에 있는 밴드 절반이 밴드 접었다고. 그런 얘기 하는 거 보면 얘네가 의지가 있었어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거잖아. 하는 생각도 하고. 근데 뭔가 여기서 좀 다시 보면서 느낀. 아까 좋았던 표현이 있는데 '막연한 비관론'.
피 : 막연한 비관론.. 막연한 비관론.. 모르겠어. 근데 아까 말한 것처럼 단순하게 비관 적이고 애상적이기만 한 정서가 아니라 거기에 막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것이 다 들러붙어있다는 게.. 하 거 참 뭐라 그래야 될지 모르겠어.
영 : 그니까. 얘네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잘 모르겠어.
피 : 응. 그래서 사실 비관론이라고 말하기 좀 그런 것 같아. 모르겠어. 비관론이라면 어떻게 하든간에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식의 인과관계가 생각이 나는데. 그런 식으로 영화가 진행됐나? 라고 생각하면 또 아닌 것 같구. 그게 좀 애매한 것 같아. 뭐라고 말해야 되지? 되게 어려워. 이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갈릴 것 같은데?

b-1b-2b-3b-4b-5b-6b-7b-8

영 : 여기 여수(b-1)도 새로운 터전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힘든 곳.
피 : 그치그치그치.
영 : 여전히 나이트에서 전전하고 있고. 옷은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조명이 완전히 꺼지다시피 하는 데서(b-2,3,4) 암울한 분위기를 느꼈고. 여자가 나오는 걸 보면서 ‘아 얘네가 결혼을 했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얘네가 결혼을 해가지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그냥.. 음악은 어떻게 계속 할 거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난 음악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거창한 걸 기대하는데 지금 이걸 희망이라고 본다면 너무 슬프다. 여기 뒤에 걸린 그림도 일몰인 것 같고. 일몰인지 해가 뜨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가 나름 이쁘게 하고 왔는데 여긴 여전히 나이트라는 걸 보여주는 게. 조금씩 뒤로 가는 카메라 무빙(b-5,6,7,8). 오프닝이랑 비슷하네. 오프닝도 인상적이었는데..
피 : 너무 개인적인 취향이 들어가 있는 거 아닌가 지금? 나이트가 어때서! 지방 나이트가 어때서! (웃음)

c-1c-2c-3c-4

영 : "그동안 저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사정으로 지금 이 곡이 마지막 곡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사람들은 전혀 관심도 없고 그냥 춤만 추잖아. 대사에서도 나오듯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춤추러 온 거다 보니까. 그래서 나이트를 아무래도 음악적 면에서는 안 좋게 볼 수밖에 없지. 여기 카메라워크가 여기랑 되게 비슷하잖아.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여전히 너희가 있을 곳은 나이트다. 이런 의미로도 볼 수 있겠네.
피 : 음악 얘기하는 거 보니까 그런 것도 좀 느껴지긴 하는데. 위계를 설정하는 것. 음악 중에서도 지향해야 될 음악이 있고 아닌 음악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이런 게 깔려있어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영 : 근데. 내 기준에서는 누가 “나는 나중에 나이트에서 음악 하고싶어”라고 한다면 좀 의문을 가질 것 같아. 아무래도 뭐랄까. 그냥 보통의 상식이지 않나?
피 : 근데. 약간 다르게 포인트를 잡아서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에 방점을 두면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영 : 근데 얘넨 계속 전전하는 인생을 살아왔잖아. 영화 앞부분에서도 어딘가로 게속 이동하고...
피 : 왠지 모르게 여수 전까지는 계속 예전에 살았던 고향에 들러붙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영 : 고향에 들러붙어있는.. 근데 고향은 왜 왔던 거지?
피 : 미련이라 해야 될까.
영 : ‘와이키키’ 밤무대에서 연주하고 싶어서?
피 : ‘와이키키’일 수도 있고 이 동네에 남겨둔 감정일 수도 있지.
영 : 옛 친구들을 보고 싶었다든가..
피 : 계속 자기를 써 주는 나이트 클럽 찾아서 돌아다니긴 하는데 그 돌아다니는 느낌이. 어딘가에 미련을 두고 돌아다니는. 그런데 마지막엔 확실하게 여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지. 어딘가로 떠나는 것 자체가 더 이상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야. 이전에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려고 떠돌아 다녔는데.
영 : 근데 여수도. 일자리 생겨서 가는 거잖아.
피 : 동기가 좀 다른 것 같아. 어쨌든 내가 말했던 포인트는 방금 얘기한 그거거든. 아 어려운데.. 아~ 돌아버리겠네. 아닌가? 안 와닿나 이게? 잘 모르겠어.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근데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이나 낙관을 느낀 건 그 포인트 때문이거든.
영 : 낙관을 나도 볼 수는 있는데 그 낙관조차도 되게 우울해.
피 : 그게 우울하게 보인다면 아까 말했듯이 음악의 위계를 딱 정해놓고 그 틀 안에서 이 사람의 삶이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영 :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아. 영화로 살짝 예를 들어보자면 천대받는 영화. 에로 산업으로 빠지는 게 그리 좋게 보이진 않을 것 같은데.
피 : (웃음) 맞아.

영 : 근데 성우가 무슨 꿈을 가졌었는지 표현이 됐더라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텐데.
피 : 그리고 이런 느낌을 절대 못 줬겠지. 잡히지 않는 무언가.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어디에다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영 : 참 우울하다..
피 : 사실 엄청 행복하고 즐거운 삶은 못 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겠다. 이런 데서 희망과 낙관을.. 전반적인 톤은 우울한 게 맞지.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
영 : 톤은 우울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나름의 희망이 있는 거다. 그렇게 합시다.
피 : 어쨌든. 서로 말하는 포인트는 잡은 것 같아. 나도 네가 어떤 의미에서 말하는지 알 것 같고.

피 : 영화 앞부분 좀 들여다 보면 할 얘기 더 있을텐데. 첫사랑 만나고 여수 떠나기 전까지 소소한 이야기들..
영 : 그 부분에서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여자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들.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망하는 것도 여자 문제라서..
피 : 그렇지.
영 : 거기서 황정민이랑 박원상이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피 : 맞아 은근히 많이 잡아먹어.
영 : 과거 얘기도 결국엔 여자 얘기고.

영 : 마지막에 나온 노래가 좀 더 희망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노래가 되게 구슬픈 노래잖아.
피 : 근데 거기서 밝은 노래 불렀으면 진짜 영화 이상했을 것 같아.
영 : (웃음)
피 : 말도 안 되는 거지~ 거기서 밝은 노래를 부른다는 게~
영 : 예전에 보고 나서 적어놓은 문장이 있어. '꿈을 가진 나로서는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근데 내가 이번에 벗어날 만한 여지를 찾은 건, 아까도 말했듯이 막연한 비관론. 막연한 실패. 나는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나름의 희망을..
피 : 키야~ 젊은이의 결기답습니다. 20대의 패기.. (웃음) 맞어. 이렇게 되리란 법은 없지.

피 : 왓챠 코멘트 중에서 인상적인 거 많거든.
영 : 내가 이거 평점 4.5까지 올려놨는데 이번에 다시 보고 4점으로 내렸어.. 이 코멘트 기억에 남더라. '제발 예술하는 사람들 꼭 보세요. 그리고 버티세요.‘
피 : 그 코멘트는 너무 이 영화를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본 것 같아.

6: 이 영화를 고른 이유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영 : 아.. 근데 이 친구 정말.. 연기가 확실하진 않은데 많은 게 느껴지는 게, 연기를 못 했다는 건 아니구.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어투가 정확히 뭘 물어보려는 건진 잘 모르겠어.
피 : 응. 그렇지. 들어보면 좀 이상하지.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영 : 이 장면을 예전에 예고편에서 먼저 봤는데 되게 섬뜩하더라구. 조명도 좀 어둡고. 표정도 살짝 정신나간 표정.. 좀 무섭던데 여기는. 따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로 행복한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피 : 성우 입장에서 봤을 때도 되게 특이하지. 쪼개보면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 이러는데 사실 좋아하던 음악 하는 게 아니잖아.
영 : 좋아하던..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음악'. 음악을 하고는 있는데 참..
피 : ‘그저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냐 아니면 '하고싶었던 음악'을 하는 게 행복하냐. 이게 미묘한 차이거든.
영 :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성우의 꿈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지.. 너무 아쉽다.
피 : 근데 꿈에 대해 굳이 상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사실 나는 본인도 몰랐을 거라 생각을 해. 20년 전의 성우가 자기 꿈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았어도 ‘어 그냥 음악하려고.”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
영 : 그렇다면 인생에 오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서 음악이 아닌 다른 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피 : 어쨌든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건 그렇게 막연한 음악을 좇다가 그냥 막연하게 살고 있는 성우의 현재 모습이니까..
영 :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꿈이 있는데 실패해서 이렇게 된 거라면, 영화 전반적으로 얘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좌절되는 느낌을 보여줬을텐데. 그렇진 않고  그냥 무채색 인간처럼 보이잖아. 영화 전반적으로 성우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거의 없고.
피 : 닳을 만큼 닳아버린 게 아닐까? 그 안에 20년이라는 큰 단절이 있는데 그 사이에 뭐가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거든. 엄청난 진짜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가는 큰 실패를 겪고 겨우겨우 이정도 삶을 유지하는 걸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막연한 음악만 계속 하다가 결국엔 할 줄 아는 게 기타치는 것 밖에 없으니까 이러는 걸수도 있고. 사실 이 사람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인과관계 보다는 정서를 강조하는 것 같고. 과거와 현재의 단절로 인한 정서가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냐. 난 거기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했는데.
영 : 내가 조금 다르게 본 건, 아무래도 나는 성우와 나를 계속 비교해 보려고 하다 보니까..
피 : 감상의 방법 중 하나지.
영 : 대사가 좀 섬뜩했던 게, “○○야. 하고싶었던 거 하는 사람 너밖에 없다. 그렇게 하고싶었던 영화 하니까 행복하니? 이런 질문을 나한테 해 보니까
피 : (웃음) 그런 두려움이.. 벌써부터..
영 : 평소에도 느끼는 부담 중 하나가, 내가 영화 하겠다는 거 웬만한 주위 사람들이 다 아니까 나한테 이런 농담도 하지. “나중에 영화 찍으면 엑스트라로 출연 시켜줘~” “나중에 성공하면 나 시사회 티켓좀 보내줘~” 이렇게 말을 하는데, 내가 나중에 영화 안 하고 살면 저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울 것 같아.
피 : (웃음) 은근히 자의식이 강하신데?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는 건 아니고.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면 사실 다른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살든 별로 신경 안 쓸걸.
영 : 진짜 사람들이 전혀 신경 안 쓸 수 있는데, 또 하나의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피 : 그렇지. 그만큼 영화를 향한 열망이 엄청나게 컸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웃음)
영 : 아 요즘 본 영화 너무 재미가 없어..
피 : 그럼 만들어야지. 파스빈더와 하모니코린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 :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제인 캠피온? 그 사람은 남의 영화를 보는 게 더 이상 재미가 없어서 자기가 만들었다.
피 : 그 정도 결기는 필요하지.
영 : 근데 내가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아~ 나중에 뭐하고 살지.. 최근에는 또 이과쪽 이중을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피 : (웃음) 컴퓨터 해 컴퓨터.
영 : 컴퓨터? 컴퓨터는 워낙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피 : 아니야 내 생각에는.
영 : 내 주위엔 코딩 덕후들 많던데..
피 : 그런 재능충들은 네가 만나는 컴공과 전공생 중에 1%도 안 될걸. 진짜로 그렇게 머리가 풀로 돌아가는 코딩 최적화된 인재 말이야.
영 : 컴퓨터공학이라고 한다면은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
피 : 잘 배워야지. 근데 우리 학교 수준의 커리큘럼이면 속된 말로 땔감은 안 되지. 고급 노예지. 무시하지 마~ 우리 학교 좋아 생각보다.
영 : 땔감은 안 된다 (웃음)
피 : 우리학교 공대 대학원 상당히 커리큘럼 좋은 편이야. 컴공은 그게 좋은 것 같아. 확장성. 그것 때문에 사실 컴공 추천하는 거지.
영 : 확장성 좋은 컴공 말고 다른 좋은 게..
피 : 다른 공대쪽은 모르겠어. 그리고 추천을 안 해 일반적으로. 전자나 기계과 쪽은 그런 게 좀 필요해. 물리적 수학적 베이스. 그리고 되게 드물어. 인문계나 경영대 사람들이 기계 쪽으로 들어왔다. 되게 이상하게 보거든. 왜 오셨어요? 왜? 순수하게 궁금해서 왜 왔어요? 나같아도 그렇게 생각할 걸.
영 : 영화를 접고 나서 뭐 해야 될까..
피 : 갑자기 인생상담 되는데? 영화얘기 안 하고. (웃음)
영 :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요즘 내 생활이랑 같이 엮을 수 있는 영화니까.
피 : 잘 모르겠으면 학생진로센터 이런 데 가 봐.
영 : 아 그런 곳도 있었구나. 한 번 가봐야겠다.
피 : 내가 대학원에 간다고 하면, 내가 관심있는 건 시각 인지. 우리 뇌가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때 우리가 시각적 쾌감을 느낀다고 막연하게 말하는데 그 쾌감을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에서 관장하는가.
영 : 재밌다.
피 : 색채의 움직임. 우리 영화 볼 때도 분석하잖아.
영 : 직접적으로 인지는 못 해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피 : 그걸 컴퓨터 언어로 분석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거? 나는 그런 쪽에 관심 있거든. 근데 대학원을 가면 금전적인 문제가 있으니까 마음이 확실하게 안 서서.. 시각적인 자극들. 대니 보일 영화라든지. 우리가 말하는 영화적 쾌감이란 게 무엇인가. 분석할 의미가 있지 않나.
영 : 엄청 신기하다. 어떻게 만들어야 영화가 더 재미있나.
피 : 그거지. 나는 좀 더 나가서, 완전하게 그걸 구축한 다음에 그걸 어떻게 엎어버릴까까지 생각을 하고 있어 내가 능력이 된다면. 난 사실 그런 거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가지고. 예술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틀 짜놓고 좆같으면 엎어버려야지~ 그게 예술의 맛이지~ 그런 생각 많이 하지. 그래서 숏 분석 하는 거고. 일단 막연한 생각을 이렇게 하지. 근데 그 쪽에 관련된 논문 찾아서 보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어. 돌아버리겠습니다.
영 : <와이키키 브라더스> 보면서는 무슨 생각을 했어?.
피 : 나도 너하고 비슷한 생각 했었어 처음에 봤을 때. 내가 만약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서 이 쪽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내 삶이 이렇게 우울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딱 거기서 막히는 거지. 아 임순례~ 욕을 존나 했는데. 아 이거 녹음 되나? 큰일났다 (웃음) 욕을 존나 하려고 했는데 대단한 영화야. 내가 아까부터 엄청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 이 사람에게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보이거든. 그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고. 내가 세속적인 성공을 못 거두었을 때 좌절하고 현실을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 현실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약대가서 약사하는 친구랑 사업하는 친구들 보면서도 안 흔들릴 것인가. 생각을 해 보니까, 할만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 그게 좀 필요한 것 같아. 세속적인 성공은 일단 제쳐놓고 나중에 생각하는 거지.
영 : 세속적인 성공이라면?
피 :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 이를테면 히치콕이 되는 거.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 역사에 한 글자 남기는 거. 어떤 작업을 하는 예술가든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과 애정은 분명히 있겠지만 일단은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그게 모순적인 말이긴 해. 야심을 품으면서도 야심과 거리를 둬야 된다는 게
영 : (웃음)
피 : 근데 나는 그게 현실적인 삶이라 생각을 하거든. 체게바라가 한 말처럼 '항상 현실적이 되어야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그런 말 있잖아. 아 근데 이거 체게바라가 한 말이 아니다. 체게바라가 한 말로 와전됐는데, 사실 68혁명 벌어졌을 때 프랑스 파리 벽에다 누가 그냥 써 놓은 말이야. 근데 그게 체게바라가 한 말처럼 알려졌어.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가능한 삶을 살아라. 하지만 불가능을 요구하라. 이런 식으로 말했어.
영 : 그러다가 삶에서 마주치는 기회를 잡는..
피 : 그렇지. 언제 올지는 모르지.
영 : 근데 나는 아직 특별한 삶에 대한 로망이 좀 있는 것 같아.
피 :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영 : 얼마 전에 들었던 말 중에 인상적인 게, 박진영이 자기가 젊었을 때는 자기가 잘나서 잘 된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
피 : 김기영도 그런 말 했었어. <하녀> 만든 사람. 그 사람이 정성일하고 인터뷰 한 게 있었거든 내가 알기론. 생전에.
영 : 신기하다.
피 : 김기영 감독이 1998년에 죽었네. 정성일이 김기영 감독에게 어떻게 그렇게 영화를 많이 만드셨습니까 물어봤는데.

(도서관 이용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하시던 작업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 : “운이 좋았지!” 이렇게 말을 했대. “진짜 운이 좋았어! 근데 그 운을 잡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이렇게 말을 붙였대. 어. 그거 같아. 그런 세속적 성공의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몰라. 어찌됐건 준비를 해야 돼.
영 :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웃음)

피 : 봉준호 관련해서도 얘기가 있어. ‘어떻게 영화를 읽을 것인가’ 강의하시는 분 있잖아. 그 분이 봉준호 관련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가평인가 야유회를 갔는데 젊은 감독 한 명이 앉아있었대. 데뷔작 말아먹어서 존나 우울하게 앉아있었대. 그래서 힘나게 해 주고 싶어서 왜 이렇게 우울하냐고, 좋은 날 올거라고 덕담처럼 말했는데 그게 봉준호였대. <플란다스의 개> 말아먹고 (웃음)
영 : (웃음)
피 : 약간 맷집이 있어야 돼.
영 : 그런 생각도 들어. 어떻게든 끝까지 남아있기만 하면 언젠가 잘 되는 때는 온다.
피 : 맞는 말인 거 같아.
영 : 근데 그렇게까지 오래 있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근데 대관 시간 때문에 갑작스럽게 끝나게 됐네.
피 :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
영 : 생각이 안 나..
피 : 일단은 이 정도?

영 : 다음주 영화.. 다음주 영화 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