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 <노다지>라는 단편을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못 봤다.
<벌거숭이>는 그 단편을 찍은 감독의 데뷔작이다.
러닝타임은 76분 정도로,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 정보가 많이 없다.
끝나고 나서 보니 주연배우가 얼마 전에 [전체관람가]에서 본 오멸 감독 영화의 PD였다.
<벌거숭이>는 어느 숨막히는 가정의 이야기, 그리고 농약을 먹고 다같이 죽으려다 홀로 살아남은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무런 정보 없이 봐서 충격이 더 컸다.
영화가 딱 절반 지점 가서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버린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고통받는 아내의 시점에서도 영화가 진행되었기에 이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농약을 먹고 죽자는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가 밥을 한 그릇 떠서 거실로 가자 이미 남편이 자고 있던 아들에게 농약 탄 콩나물국을 먹이는 그 장면...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충격을 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아는 형과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그 형은 여배우의 노출이 배우에게 정신적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노출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도 배우를 정신적으로 착취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벌거숭이>는 아마 최악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친구같은 동료들끼리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올 것 같다. (그냥 내 추측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석탑에 목을 매다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데, 이걸 찍는 배우들은 괜찮았을까?
영화의 절반 정도는 남자주인공의 혼이 나가버린 모습이다.
영화 자체는 내 마음에 들었지만, 위험하게 찍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메시지? 그런 것보다 이 영화에는 유니크한 아우라가 있었다.
간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하고 본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힘을 느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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