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더 퍼지> '소재는 괜찮았다'는 말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작가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는 웬만하면 안 보는 편이다.
<더 퍼지>는 만드는 사람의 자아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이다.
간만에 다른 타입의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가 너무 별로라서 앞으로도 쭉 기존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영화는 전개가 너무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지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집이라는 공간을 전혀 집이 아닌 것처럼 찍어놨다는 것이다.
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데 이름을 불러서 찾으면 될 일을 숨 죽이고 찾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조차 인물들은 절대 듣지 못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어차피 영화가 이러저러해서 별로라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소재 자체는 그럴듯해서 생각을 정리해볼까도 싶었지만 이따위 영화를 가지고 고차원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수치심이 들어서 하지 않겠다.
이 영화에는 영화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개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숙청의 날.. 겉멋 든 악역.. 어줍잖은 정의 세우는 주인공..
기본적인 짜임새는 없이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려고만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니 플롯이 숭숭 비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내주는 A와 Z만 있다고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그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B부터 Y가 있어야 비로소 A와 Z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하나만 한 것도 아니라서 이 영화의 잘못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
나는 더 이상 이 영화에 시간도, 감정도 쏟고 싶지 않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실수를 안 하려고 영화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건 이 영화를 보니 무의미한 짓 같아 보인다.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 하나 따라가는 게 훨씬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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