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돌아온다> 2017.12.09 KU 시네마트랩. 허철 감독 GV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막걸리가 주 소재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앞으로 막걸리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가 별로였다. 게다가 막걸리가 그리 중요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1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대사를 너무 많이 한다. GV에서는 감독님이 설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다 덜어냈다고 했는데 영화는 엄청 설명적이다. 으잉?
2
신파적이다. 역시 감독님은 신파적인 영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셨지만 영화를 볼 때는 신파적이라고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엉엉 울면서 그간의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보면서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됐다.
그런데 관객들 중에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어찌됐든 누군가의 감정을 저렇게나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그래도 인정할 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족에 관한 감정들을 아직 내가 느껴보지 않아서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지 못하는 영화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야 하나? 그건 또 아니다. "이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진 못 했다"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 영화는 내 정서와 맞지 않았다." 얼마나 깔끔한가. 아무튼 신파였다.
3
감독님은 편집과 사운드에 신경을 쓰셨다고 한다. 편집 방식이 특이함은 느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여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영화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니 편집 방식 또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약간 확신에 찬 채로 말할 수 있는 건, 결국에 영화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드니 영화의 나머지 좋은 부분들도 마음에 안 든다.
4
영화만 보고 나갔으면 뭐야 이거 하고 바로 잊어버릴 영화였겠지만, 감독 GV가 있어서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었다. 감독님은 돈 놓고 돈 먹기 식이 되어버린 대기업 영화 사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GV를 시작했다. 그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느낌은 옛날의 기억도 나지 않는 멜로 영화 같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는 작품이다. 감독님의 고민은 어디를 향했길래 이 영화가 나왔을까?
그리고 이 영화에서 관객이 발견하지 못 했을 요소들을 몇가지 언급하셨다. 신기하긴 했지만 전달 방식이 미흡했던 것 같다. 나는 의미부여보다는 직관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고보니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할 때 "영화는 어때야 하는가" 식으로 말하기보다는 "나는 이건 안 맞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론가보다는 아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5
감독님께 하고 싶지만 무례한 것 같아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이 영화가 결국엔 홍보도 잘 안 되고 관객 수도 얼마 안 들 것 같은데, 제작비와 손익분기점이 궁금했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많은 관객을 만나면서 내 고집을 좀 굽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길과, 적은 관객을 만나더라도 내 뚝심을 지켜낸 예술영화를 만드는 길 둘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전자인 사람이다. 하지만 나 역시 아직 이 결정에 대해 고민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적은 관객을 만날 걸 알더라도 뚝심 있게 이 영화를 만들어낸 허철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6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막걸리가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는 막걸리의 모습이 아예 안 나온다.
그냥 막걸리가 든 주전자와 막걸리 잔만 나오고, 하얀 자태는 안 나왔다.
그 맛에 대한 대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막걸스>라는 이상한 영화도 있는데 막걸리 소재로 그런 영화라도 봐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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