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러빙 빈센트> 예쁜 헛수고
하도 주위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봤는데 정말 별로였다.
영화는 한 치의 유머도 허락하지 않는 꽤 진지한 스타일이었다.
단점을 꼽자면 영화가 하고 있는 얘기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억지로 95분의 러닝타임을 채워놓은 느낌이다.
감독이 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차라리 단편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고흐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 메인 플롯인데, 주인공은 추리 비슷한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인물들이 한마디 한마디 들려주는 것이 이야기의 진행이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도 그냥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셰 박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술술 읊어주는 것이 전부이다.
추리물을 쓸 능력도 없는 사람이 고흐에 대한 장편영화는 만들고 싶고. 억지로 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유일한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다.
그래,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그 신기한 게 채 5분을 못 간다.
카메라가 공간을 날아다니는 시점 샷이 어떻게 그림을 다 그렸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없는 걸 알아차리고 마음이 떠나면서부터 내 눈에 그림들은 다 불필요한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냥 특이한 기록을 세운 데에 만족하고 끝날 수 밖에 없는 영화인 것 같다.
나중에 로토스코핑 기법이 발전해 더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될 때쯤 "예전에는 이런 걸 다 손으로 그린 영화가 있었대!" 하고 회자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제 배우를 써서 영상을 촬영한 뒤 그걸 유화로 따라그리는 방식이었는지, 사람의 형태가 너무 정형적이라서 사람이 손으로 그린 느낌도 잘 나지 않았다.
정말 딱 5분짜리 단편으로 만들었더라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하다고 좋아요는 많이 받을 수 있었을텐데.
보기 예쁜 것만으로 영화의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영화가 끝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도 못 하고 생전에 자기 그림을 단 한 장밖에 팔지 못 했던 고흐가 사후에 어떻게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건 따로 알아보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고흐의 특이한 성격같은 건 사실 그리 관심이 없다.
영화에 묘사된 대로라면 불쌍하긴 하지만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불우한 예술가의 행적에서 "불우"만 너무 강조된 느낌이라 싫었다.
예술에 대한 고흐의 생각같은 건 제시되지 않고, 그냥 어느 우울한 한 사람의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이 얘기를 왜 들어주고 있는 걸까?
그냥 다른 우울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냥 그림을 잘 그린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얘기는 별 것 아니지만 그 사람이 고흐라서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고흐의 이웃이었다면 성격 때문에 그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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