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남자의 힘

수능 끝나고 학교에서 가장 처음으로 선택한 영화.
3년 전에 비해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지 영화가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남자 영화!
'남자 영화'라는 수식어에 딱 맞는 또 한 편의 영화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남자의 로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범죄와의 전쟁>은 남자의 힘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들고다니던 총알 없는 권총이 실세 없는 그의 권력을 단번에 대변한다.
총알 없는 권총으로 싸우고들 그랬던 수컷의 역사..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빌붙어서 주제넘게 뭔가 해 보겠다는 아저씨.
두꺼비같이 배 불룩 튀어나온 몸집으로 최형배의 부하들에게 오줌발을 맞는 모습.
깡패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완전한 기회주의.

<질투는 나의 힘> 그런 이상한 관계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본 영화.
<느린 여름>이라는 인상적인 단편을 연출했던 박찬옥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자기 여자친구를 앗아간 남자의 직장에 들어간 주인공.
또 다른 여자를 두고 이들은 경쟁 관계에 놓이는가 싶더니
주인공이 먼저 거기서 발을 빼 버린다.
그런 주인공을 꽤 귀엽게 생각하는 그 남자.
주인공은 그의 가족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이런 관계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한 관계이다.
물론 박해일이 문성근의 딸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느껴지긴 하지만
자기 여자친구를 뺏어간 유부남을 증오하긴 커녕 동경하게 된다니.

하지만 생각보다 관계의 밀당에서 오는 긴장감이 덜했던 게 아쉽고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종옥은 별 매력이 없었다.
서영희는 너무 오버하는 과한 연기.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우리 선희> 남자 셋이 모여서 한 여자 얘기를 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선희를 쟁취하는 데 실패한 세 남자가 헛헛한 기운으로 창경궁을 배회하며 선희 얘기를 한다.
아무런 관심 없는 척.

엔딩에서부터 시작한 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세 남자가 창경궁을 거닐며 하는 얘기를 오프닝과 엔딩에 배치해 역순행적으로 구성해 보면 더 재밌지 않을까.. (그런 구성을 홍상수 영화에선 절대 볼 수 없겠지만)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인문 [스무 살의 인문학]





강신주
여러분이 커지면 세계가 가벼워져요. 회사, 학교, 돈이 다 가벼워져요. 반대일 경우 내가 쪼그라들어요. 돈도 커지고, 회사도 커지고, 학교 와서 내가 커졌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내가 작아졌다고 생각하나요? 작아졌으면 학교가 교육을 잘못 시킨 거예요. 내가 약해지면 세계가 커 보여요. 중국 그림들 봤죠? 귀족들은 크게 그리고 노예들은 작게 그러요. 그러면 여러분은 큰가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커야 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커져야 해요. p 48
우리 어머님께서 항상 저한테 그래요. "그게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제가 소설책을 읽을 때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고 해요. 무식한 이야기죠. 그러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어야 하는 거잖아요. 여러분은 자본과 무관한 일들을 구축해내야 해요. 그게 여러분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거예요. p 53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여러분을 잘못 가르치잖아요. 사회가 원하고 자본가들이 원하는 대로 강의를 개설하고 여러분은 또 그걸 들으려고 하죠. 그래서 우울해지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강의가 아니니까. 정말 웃기지 않아요? 여러분이 돈을 내고 수업을 들으면서 내용은 자본가들이 원하는 내용을 듣는 거예요. 내가 대학에 다니면 내가 원하는 강의가 개설되고 재밌는 강의가 나와야 돼요. 대학은 학원처럼 다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강의를 들어야죠. 여러분 대학에 와서 원하는 강의를 들으러 가요? 취업에 도움 되고 스펙에 도움 되는 강의만 들어가죠? 왜 돈 4,000만 원 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강의를 못 들어요?

안도현
지금은 정말 좋은 문학은 골방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광장으로만 치달아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광장이라는 것은 여럿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혼자 사유할 시간이 부족해요. 골방과 광장 사이에서 긴장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은 광장에 관심이 너무 없죠. 오로지 내 내면만으로도 벅차 해요. 나 아닌 바깥에 대한 시각을 키운 사람이 좀 더 오래 좋은 문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남대 교양강좌를 엮은 것으로, 총 10인의 멘토들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나도 이제 스무살이고, 나도 이제 책을 좀 읽어야 한다. 스무 살의 인문학! 왠지 무슨 소리가 쓰여 있을지 뻔하지만 부분부분 괜찮은 말들도 쓰여 있는 것 같아서 읽어 보았다.

열 명의 이야기 중에는 정말 뻔한 말도 적혀 있었고,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고, 정말 듣기 싫은 소리도 적혀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마음에 드는 말들을 추려 보니 대부분이 강신주가 한 말이었다.
강신주. 듣기 좋은 말만 해 줬다. 하지만 경계해야 한다. 듣기 달콤한 말이니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강신주가 한 말들이 내 새로운 무언가를 일깨워 준 듯한 느낌이다. 이게 엄한 데로 튀지 않도록 잘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그저 남들 듣기 좋은 말만 잘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꼭 나한테 좋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 내가 괜한 데 신경쓰는 건 아닌가...


뭐 이런 데 쓰여있는 얘기는 고만고만한 얘기들이니 좀 깊은 책을 파자. 이런 얘기는 한 권이든 두 권이든 세 권이든 비슷비슷하다.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타임 패러독스> 네 시나리오 열심히 쓰셨구요..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본 두 번째 영화. 두 번에 걸쳐.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아.. 망했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애들이 재밌어했다.





그렇게들 이 영화가 쩐다고 하던데, 줄거리 절대 읽지 말고 보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학교로 가져갔다.
내 보는 눈은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이 영화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이다.
러닝타임이 절반이 지나가도 좀처럼 이야기가 시작할 것 같지 않자 '아.. 내가 영화를 잘못 골랐구나' 했지만 생각보다 애들이 되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나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이 영화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패를 너무 대놓고 보여줬다. 단지 그게 조합하기 까다로운 패였을 뿐이다.
나는 그걸 절대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야?' 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때리니 그냥 아픈 느낌만.
그냥 '아.. 그래?' 하고 시큰둥.
아예 전혀 다른,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반전을 주는 식이었더라면 정말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테다.
성전환과 안면이식 수술 등의 얕은 트릭으로 수를 쓴 '반전을 위한 반전'.
오밀조밀하게 큰 그림을 짠 하고 만들어냈는데 문제는 그게 별로 재밌지 않은 그림이야.
전반부의 과거 이야기가 대체 뭘 하고자 하는건지 답답한 느낌밖에 안 들었기에 나는 이 영화를 그리 좋은 영화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놀라웠던 건, 그동안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필연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던 모순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백 투 더 퓨처>에서 나오는, 과거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가 멀어지자 자기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식의 클리셰 말이다.
<타임 패러독스>의 시간여행은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그림처럼, 온전한 우로보로스 한 개체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 어떤 것도 해할 수 없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묘한 그림.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는, 애초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그림.
우리나라에서 붙은 '타임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의미는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일 테다.
이런 식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 없었으므로..
반전만을 보고 달려온 영화의 반전으로 앞부분의 지루함을 퉁쳐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앞부분의 지루함을 더 잊지 않으려 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두 번째 감상

11월 14일 한낮. 집에서.
수능이 끝나고 나서 두 번째로 본 영화이자, 처음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본 영화.
전혀 볼 생각 없었는데 즉흥적으로 보게 되었다.
난 아직도 수능 보기 전에 짜 놓았던 영화 리스트를 비우지 못 했어..



첫 번째 볼 때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 했다. <그녀>도 그랬다. 앞으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이 영화.. 나는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들이 보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전에 쓴 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내게 잘 맞지 않았던 이유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보이면서도 그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듯한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의도치 않은 실수'가 여러번 등장하지만 딱히 그게 이야기의 중심 소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주제라면 뭘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사실 영화 속에서처럼 우리가 덮어놓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마주할 기회도 없고.. 흠..

(글은 이래 적어도 지난번 처음 봤을 때보단 더 재미있었다. )

<하늘의 황금마차> 오멸 감독 2014년작

12월 15일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하늘의 황금마차>를 보기로 한 건, 지난 달 제주도 여행 때문이다.
처음 떠나는 제주도 여행이라 잔뜩 기대를 했지만, 절반은 날씨가 안 좋고 절반은 손을 다쳐 그리 만족스런 여행이 되질 못 했다.
마트에서 장 보며 제주도민들의 사투리를 살짝 들은 것이 기억에 남았던 나는, 제주도 사투리 가득한 오멸 감독의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내가 원했던 걸 충족시키는 더 쉬운 방법이 아닌가 하고 작년에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쳐버린 <하늘의 황금마차>를 보기로 했다.


여러 곡 가운데 가장 좋았던 건 오프닝곡.
킹스턴 루디스카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등장인물들을 따로따로 비추며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쉬운 건 영화가 좀만 더 재밌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코미디가 됐더라면 결말에서 느끼는 여운이 좀 더 강하지 않았을까.









+
사형제가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놀이터에서 스프링 달린 개구리를 타고 "개골 개골~"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때의 햇빛이 정말 좋았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바다의 꿈'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괴물의 아이> (2) 든든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멋진 어른들




또 짚고 싶은 하나의 지점.

이 영화의 반전은 쿠마테츠의 라이벌인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가 실은 인간이었다는 데 있다. 괴물들은 인간이 각자 저마다의 '어둠'을 가지고 있어 위험한 존재라고 보았다. 그동안 괴물의 세계에서 현실을 잊고 살던 큐타에게선 어둠을 볼 수 없었지만, 남모를 열패감으로 가득차 있던 이치로히코의 어둠이 커지고 커져 결국 괴물세계와 인간세계 모두를 위협하게 된다. 그로 인해 쿠마테츠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은 큐타는 행방불명의 이치로히코를 찾으러 나선다. 그것을 큐타가 쿠마테츠에 대한 복수를 하러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햐쿠슈보는 그를 말리며 처음으로 화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은 복수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큐타는 깊은 어둠에 빠진 이치로히코를 구하려고 하던 것. 그 때 큐타가 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자신도 한때 어둠에 빠졌던 때가 있다고. 그 때 쿠마테츠가 없었다면 자기 또한 이치로히코와 같은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단지 어둠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없었을 이치로히코에게 자기는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이 세상엔 나쁜 어른들이 참 많다. 아이들은 그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자기를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어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내 옆의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나도록 도와줘야 할 책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내면의 슬픔을 돌봐 줄 사람 없이 자란 아이들이 가끔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슬픔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 한 그 아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옆에 누군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충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영화는, 든든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멋진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록 우리 곁에는 큐타 곁에 있는 괴물들처럼 멋진 어른들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내가 그 멋진 어른이 되면 되지 않나. 생각보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풍부한 영화였다.

<괴물의 아이> (1) <라이프 오브 파이>의 환상세계를 떠올리며


12월 1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던 날.
두 영화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흡족~

이번 글에서는 <괴물의 아이>를 보며 '나만이 느꼈을 법한' 지점을 파고들어 본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 그러니까 소년 큐타가 청년 큐타가 되었을 때 즈음 배경은 괴물의 세계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넘어간다. 큐타가 어렸을 때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우연히 괴물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괴물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다시 우연히 인간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영화 상에서는 9살 이후로 처음 들어서는 인간세계다. 나는 여기서 큐타가 다시는 괴물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다. 지난 8년간의 괴물세계 경험을 "어떤 분이 나를 받아주셔서 운동만 하고 자랐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 그동안의 이야기는 하나의 은유였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년 큐타는 사실 그동안 인간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을 하고 있던 거구나. 괴물의 세계같은 건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물론 영화를 좀 더 보면 알겠지만 <괴물의 아이>에 나오는 괴물과 그들의 세계는 은유가 아니다. 뭐 굳이 억지로 은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만화를 그려냈던 호소다 마모루가 그런 의도를 가졌을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마코토의 이모가 "그 나이쯤 되는 여자애들은 누구나 한 번쯤 타임리프를 겪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것과 같이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지극히 환상적인 배경이 공존한다. 그것들을 마치 진짜 있는 세계인 것처럼 슬쩍 내놓는 호소다 마모루 세계의 유연함.
그 양상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잠시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의 은유를 떠올렸다. 지금 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는 참 나빴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무참히 무너지려 하는 순간이 나는 싫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애초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그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파이가 만들어내야만 했던 '거짓 이야기'임이 명백했다. 거짓 이야기여야만 완성되는 이야기이고. 반면 <괴물의 아이>는 그것의 환상 이야기가 가짜다 진짜다 판단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영화를 너무 예민하게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될 지점까지 파서 이렇게 환상의 진위여부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지, 실은 별 의문의 여지 없이 그냥 아름다운 하나의 환상 동화라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인스턴트 늪> 미키 사토시 2009년작

12월 15일 다섯편의 영화를 본 날.
영자원 시네마테크에서 본 마무리 영화.
인스턴트 늪은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미키 사토시의 영화들은 주로 평범한 일상에 찾아오는 작은 소동극을 다루는데
그의 영화는 취향을 타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오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즐거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빵 터지는 건 아닌데 영화 보는 내내 내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단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걸 이제서야 다시 깨달았다.
이제 누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물으면 '미키 사토시'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야지..
(누구라고 말해야 할지는 아직 미정. 그런데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오랜만에 본 <인스턴트 늪>.
사람들이 하는 짓이 되게 오바스러운데, 후반부 되면 그게 매력이다.
정신나간 여자 하나가 소리지르면서 뛰어댕긴다. 근데 쫌 귀엽다.
헤 하고 앉아있다가 주인공이 문득 상념에 빠지면 나 또한 생각에 젖는다.
미키 사토시의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때가 그런 문득 서릿한 생각이 찾아올 때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대사들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농담들도 다 좋아!

좋은 화질에 좋은 자막을 기대하고 갔으나, 그냥 DVD를 극장에다가 트는 느낌이라 그저 그랬다.
화질이 별로였다.
하지만 영화는 정말 좋았다.
끝나고 나올 때 무슨 설문조사를 하더라.
아마도 이번 프로그램에서 상영한 영화들 중 몇 편을 선정해 정식으로 개봉할 건가 보다.
<인스턴트 늪>은.. 안 되겠지. '일본 색'이 너무 강해.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좋아하게 된 음악.
YUKI의 Miss Yesterday가 크레딧 올라갈 때 나왔다.
정식으로 음원을 구하기가 힘들어 계속 머릿속으로만 부르는데..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 너무 좋다.

영화를 본 김에 미키 사토시가 연출하고 <인스턴트 늪>의 아소 쿠미코가 출연한 드라마 [시효경찰]을 오랜만에 보았다.
내가 길어서 드라마를 못 보는 성격인데, 그래도 이건 재밌어서 끝까지 볼 것 같다.

소설 [텐텐]


책을 읽으며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구절들을 정리해 본다. 다른 날 다른 기분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구절이 또 내 마음을 흔들지도.





수조 안을 고요히 헤엄쳐 다니는 엔젤피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을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다. p 25

"뭐라고요? 같이 산책만 해 주면 백만 엔을 주겠다고요?"
"그래."
"그런 말을 누가 믿는답니까? 사람 놀리지 마십쇼."
"딴마음은 없어. 산책하면서 자네가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들러도 좋아. 나도 내가 가고 싶은 데를 가 볼 거야. 그런 식으로 도쿄를 천천히 거닐자, 그거야. 아무렴 날치잡이보다는 훨씬 편할걸?" p 33

말하다 보니 다카하시가 생각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 정신이 병든 원인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속으로 분이 쌓이고 쌓여 그런 폭력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p 69

"자네 그거 아나? 산책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도쿄야. 산길을 걷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모자라지. 거기 사는 식물이나 동물은 어제 보나 오늘 보나 그게 그거잖아. 그러니 쉬이 싫증 나지. 헌데 도쿄는 달라.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서도 소음과는 단절될 수 있거든. 반대로 복잡한 소음 속에 묻히고 싶거든 번화가로 나가면 되고." p 74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살기를 거부하는 건, 인간으로서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소. p 97

"저는 꽁하게 속에 쌓아 두는 유형이 아니기 때문에 망상 같은 걸 품은 적은 없습니다. 스토커 짓 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풀어 버리질 못하니까 속으로 독이 들어차서 마침내 폭발하는 거 아닌가요?" p 159

그 말과 동시에 미야와키의 왼손이 내 무릎을 타고 사타구니 쪽으로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잔뜩 눌렸다 튀어오른 스프링처럼 바짝 펴졌다. 미야와키는 오른손으로 매실을 으깨면서 왼손으로 내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렸다. 소주 속에서 부서져가는 매실이, 그렇게 추잡해 보일 수가 없었다.
"미야와키 씨, 저는 그런 타입이......."
나는 허리를 굽히고 그의 왼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미야와키가 얼른 손을 치웠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없이 피웠다.
"미안해, 몇 잔 하다 보니 그만 자네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 버릇 때문이었습니까?"
"신입 사원 중에 맘에 드는 남자가 있었지. 술김에 그 애를 앉혀 두고 고백했던 게 들통 나서 집사람에게까지 알려지게 됐어."
뭐라 대꾸를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막 피워 문 담배를 꺼 버렸다.
"이제 그만 가죠."
미야와키가 끄덕였다.
"잘못했어. 지금 있었던 일은 잊어 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p 238

"젊은 사람이 참 정열적이네요. 요즘은 남을 좋아하기도 어려운 시댄데." p 311

"옛날에, 빨간 스커트 자주 입었습니까?"
"응, 그래. 자주 입었지."
마키코의 얼굴에 살짝 빛이 돌았다.
"나, 지금도 빨간 스커트, 좋아해."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똘똘 뭉쳐 있떤 슬픔이 후욱, 하고 빠져나갔다. p 392

나는 앞으로도 미스즈 생각을 놓지 못할까. 어느 날 문득 마키코의 가게에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밀게 될까. 철창 너머의 후쿠하라에게 기운 내라는 편지 따위를 쓰게 될까. p 393

옮긴이의 말
[이렇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지독히 외롭게 살다가 본능처럼 또 다른 빈 가슴을 찾아 공명하며 동화되길 원하고 결국엔 또 다시 혼자가 된다.] p 397
[친어머니가 떠난 뒤 말라 버린 후미야의 눈물샘. 그 독하게 굳어 있던 눈물샘이 유일한 사랑과 헤어지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후쿠하라를 철창으로 보내면서 터져 버린다.] p 397



p 238, 내용상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닌데 여기서 하나의 영감을 받았다. 두 친구가 만나서 얘기하던 도중 한 쪽이 커밍아웃을 하는 상황을 단편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작년에 찍었던 <문자의-낭만>이라는 단편과 비슷한 느낌의 대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에서 인물이 하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상황을 제시할 뿐이다. 
남자 둘이서 붕가붕가 비슷한 것을 하는 내용이 지난 단편에 있었는데, 어쩌다 이번에 아예 동성애를 소재로 하게 되었다. 본의 아닌 '오해'를 살지도. 내가 아는 한국 게이 감독은 동성애 영화만 찍는다. 아니 그런데 꼭 동성애자만 동성애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지 않나. 
- 영화 속 살인자의 대사가 그거 만든 사람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닐 거 아니냐.
- 살인자가 나오는 영화를 만든다고 그거 만든 사람이 살인자인 건 아니지 않냐.
(하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한다. 내가 상정한 '살인자'는 흔히 장르적인 소재로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동성애는 좀 다른 것 같다. 좀 덜 흔한, 특이한 소재이다 보니까 그 소재에 대해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고민해보게 만든다는 점인가? 그러니까.. 아 무의미한 머릿속 논쟁이다.)

소설 [텐텐]은 미키 사토시 감독의 영화 <텐텐>의 원작이다. 영화 내용이랑은 많이 다르다. 큰 설정만 가져다 완전히 자기 식대로 만들어버리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화화(ex:설국열차). 분위기도 많이 다르고, 이야기의 중심도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 본 그 분위기를 책에서 기대했으나 많이 달랐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다.

21살의 주인공 후미야. 스물한살? 책 속의 그렇게 아쉬운 사랑의 주인공이 스물 한살이었다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책을 읽다가, 누군가의 대출 확인증이 하나 툭 하고 나왔다.
대출일 10월 18일.
두 권을 빌린 사람인데, [텐텐] 그리고 [레스토랑 체리의 계절]이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밑줄 긋는 남자]처럼, 어떤 메시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텐텐]을 읽은 사람은 이 책과 함께 어떤 책을 읽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여유 있으면 [레스토랑 체리의 계절]을 읽어보려고 한다.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그들 각자의 영화관> 다르덴 형제, 장예모, 올리비에 아사야스

'영화관'을 소재로 각국 거장들이 모여 만든 단편들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10월 9일 집에서 감상.
거장들이 모였지만 되게 재미 없었다.
거장들이 모여서 재미가 없었던 걸까? 흠흠..
인상적이었던 세 편의 단편을 꼽아본다.



다르덴 형제

어둠. 약 2분 30초. 클로즈업으로 원신 원컷.
남자가 극장을 기어가다가 어떤 여자의 좌석에 도착해 몰래 가방을 뒤진다.
여자는 흐느낀다.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놀란 남자의 손을 자기의 뺨에 갖다댄다.
앞만을 바라보는 여자.

기대. 이 남자는 왜 극장을 기어다니며 도둑질을 하고 있을까?
반전. 여자는 남자와 아는 사이인 듯 하다.
의문. 여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여자는 남자와 무슨 사이이길래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단서들을 조합해 봐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느낌이 참 좋았다.
숨죽여 보게 되는 긴장감.


내가 추론해낸 스토리는 이렇다.

극장에서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던 남자.
그와 사랑을 하던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
그녀는 그가 너무 그리워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아간다.
여느 때처럼 도둑질을 하던 남자는 우연히 여자와 조우한다.

내가 보기엔 이 이야기가 좀 그럴듯해 보여도, 진짜 이야기는 생판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다르덴 형제가 영화관의 '느낌'만을 가지고 한 장면을 만들었을수도 있다.
그래도 이 단편은 짧은 시간을 가지고 풍부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그 점이 나는 좋았다.





장예모

영화 보는 날. 약 3분.
마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라 들떠 있는 사람들.
아이는 기다리는 시간이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기다림이 지루하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
그런데 글쎄, 아침부터 기다려서 겨우 영화가 시작하니까 아이는 잠들어 있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겨우 영화가 시작했을 때 즈음 잠이 드는 아이.
매우 특별한 감성.
이런 순간을 영화 속에 담아낼 생각을 했다니!
'영화관' 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 사람이라면 분명
영화와 관련해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만 같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쇄도. 약 3분 30초. 핸드헬드 가까이서.
극장에서 어느 커플에게 몰래 접근해 여자의 가방을 훔쳐가는 소매치기 남자.
극장에서 나온 여자가 애인의 휴대폰으로 자기 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 전화를 받는 소매치기, "나야."

'오인'의 모티프가 정말 좋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기대. 여자의 전화를 받는 소매치기범. 그는 과연 어떻게 될까?
반전. 소매치기범은 사실 여자의 옛 애인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결국에 내가 단편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몰입이 아닌가 싶다.





또다른 세계 감독들이 모여 만들어낸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가 있다.
그 때도 마음에 드는 단편 세 개를 꼽았는데 세 단편의 특징은 각각 이렇다.
1. 센스있는 연출과 흡인력, 풍부한 이야기
2. 놀라운 반전
3. 절제

이번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꼽은 세 단편의 특징은 이렇다.
1. 흡인력, 풍부한 이야기, 반전
2. 특별한 감성
3. 흡인력, 반전

나중에 단편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흡인력 있고 반전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브로드웨이를 쏴라> 우디 앨런 1994년작

8월 30일 영상자료원 우디앨런 특별전.
자막이 세로로 나 있어서 보기 불편했지만
그 날 본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다.




원래 '치치'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글을 써 보자고 계획했는데
<맨하탄>을 본 이후로 우디 앨런에 대한 애정도가 급감해서
집중도 안 되는 애정 없는 글이 나와버릴 것 같아 그만둔다.
비록 깡패일지 모르나 극 창작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치치.
그는 극의 완성을 위해 결국 연극을 망치는 삼류 배우를 살해하고 이를 눈치챈 갱단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맨하탄>에 대해 적은 글은 여기


<프랭크> (1) 예술가들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영화 볼 땐 별로였다.
음악영화이지만 음악이 별로였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서.

그런데 자꾸 기억에 남는다.
나한텐 기억에 남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내가 <프랭크>에게 받았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이런 예술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이다.
<프랭크>를 보고 '살리에리 컴플렉스'를 다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과 전혀 무관하다.
존은 프랭크를 부러워했지만 시기하진 않았고
프랭크를 망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방식이 너무나 달랐던 거지.

프랭크는 자기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에게 인정받진 못 한다.
그만의 음악세계를 부러워했던 존이 프랭크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지만
멤버들이 평범한 그에 비해 너무 예술가들이라
밴드에 큰 출혈을 일으키는 사건을 겪고 나서야 존은 그 곳을 떠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이 영화는 "그냥 가만히 있어라" 하고 말하는 것 같다.
프랭크는 내심 자기 음악이 유명해지길 바랐지만, 멤버들은 그걸 원치 않는다.
이 상황을 그들이 알아서 직접 헤쳐나가게끔 아무 손도 대지 말라는 건가?
예술가들은 예술가들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으니 그걸 해치려 하지 말아라?
거참.. 까다로운 예술가들이네..

어렵게 내린 대답 : 결국엔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들 ^^
존도 불완전하고 프랭크도 불완전하고 클라라도 불완전하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하는 '소통의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는다.
답을 내릴 수 없기에 슬픈 이 상황에 대해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살펴봐야겠다.)

좋은 곡들
Frank's Dawn Chorus - 새벽에 나오는 노래
The Holidaymakers - 프랭크가 아주머니와 빙글빙글 돌 때
Be Still (Don's Song) - 나도 알아, 아무리 해 봐도 구린 곡들만 나오는 기분. 근데 이 노래가 제일 좋다. 좀 더 멋진 롤모델을 잡을 수 있었을 불쌍한 돈.
I Love You All (Radio Mix) - 세 가지 버전이 있지만 이 버전이 제일 낫다.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와 외국여자

9월 20일. 집에서 감상.
이 글은 이후에 본 <누구의 딸도 아닌 선희>도 보고, <우리 선희>도 본 뒤에 적는 글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처음으로 외국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파격적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외국인이라는 점이 영화보는 재미를 반감시킨 건 아닌가 싶다.
홍상수 영화 보는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 간의 화학작용을 보는 맛이 여기선 좀 떨어진다.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던 <북촌방향>을 보고 난 뒤 그의 다음 영화에서도 비슷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인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어떤 무언가가 이 영화엔 부족해서인가?

이야기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아리송한 느낌만 가득하다.
기억에 남는 건 2부에 나온 우산을 3부에 등장시킨다는 것.
등장인물의 옷이 바뀌고 성격이 바뀐다는 점은.. 사실 영화 보면서 크게 못 느꼈고


나는 서양여자를 어떻게든 꼬셔보려는 한국남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재미가 없었다'고 말한 건 이것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홍상수 영화의 찌질함', '남자들의~ 뭐시기'가 여기서 많이 느껴지는데 내가 이걸 안 좋아한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너무 사실적이라 부끄러워 보기 힘들다"
이런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단순히 남자 여자 얘기만 하려고 몇십년동안 영화 하고 있진 않을테니까.
대신 난 그의 영화에서 다른 중요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어리석은 남자 캐릭터들 말고는 이렇다 할 특별한 걸 찾지 못 했다.
신기하고 궁금하니까 한 번 건드려보고 싶은 심리.
이게 뭐 그리 재밌는 얘기라고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놨을까.
외국인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 <자유의 언덕>은 <다른 나라에서>와 어디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거북이 해방 애니웨이

영화에 대해 글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