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스크림> 반전을 위한 반전이 뭐가 그리 좋은 건데?
고어영화 소모임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려다가 파일을 못 구해서 본 영화.
호러영화 매니아인 또라이 둘이서 연쇄살인을 벌여 그 중 한 명의 여자친구를 괴롭혔다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흘리는 복선들이 많아 결말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밝은 곳에서 찍혔으며, 주로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식의 호러이다.
주인공들이 10대라 경쾌하다가도 무서운 장면에서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잘 뒤집는다.
하지만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사람도 많아 북적거리고, 조명이 밝고, 배경음악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들었을 법한 음악이었다. 분위기가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다.
결말은 정말 별로였다.
순정남으로 보였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범인이었다!라는 반전인데, 영화 내부에서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영화 속의 논리대로라면 남자친구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데 오로지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굳이 그를 범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반응이었다. '얘가 범인이었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재미있긴 했지만, 뉴타입 호러영화로서의 자의식이 너무 강했다. 계속 대사로 호러영화 얘기를 해서 맥이 빠졌다.
또 로즈 맥고완이라는 배우는 예뻐서 좋았다.
<밤과 안개>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를 마주하다
동아리에서 친한 형이 <밤과 안개>와 <셜록 주니어>를 묶어서 발제했다.
<밤과 안개>는 유대인 학살을 회고하는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학살이 일어났던 공간에 아무도 없고 텅 빈 모습과, 흑백으로 된 처참한 기록물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거기에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깔리는 것이 정말 좋았다.
해외의 고통스러운 역사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를 끝맺는 내레이션이 정말 좋았다.
"휴전이 되었지만 한쪽 눈은 언제나 뜨고 있어야 한다. 막사들 근처 사열하던 운동장 위엔 잡초가 무성하다. 황폐한 이곳엔 아직 묵직한 위기감이 감돈다. 소각로는 더이상 가동되지 않고 나치의 교활함은 오늘날 애들 장난으로 치부되고 있다. 9백만이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들 중 누가 이 흉측한 감시탑 위에서 새로운 사형집행자들의 출현을 경고할 것인가? 우리들과 딴판으로 생겼을까? 우리들 가운데 운좋은 카포들이나 복직된 장교들과 익명의 밀고자들이 어딘가 숨어 살겠지. 아마 믿지 않거나 보는 동안만 믿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여태 우리가 진실된 응시를 통해 살펴본 잔해, 마치 오랜 괴물이 편린 바로 아래를 밟아 뭉개놓은 형상들을... 마치 우리가 본 영상이 과거속으로 잊혀진듯 수용소에서의 재앙이 단번에 영구히 치유된 듯 다시 희망을 잡은 척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일들이 단 한 번, 어떤 장소와 기간에만 있었던 척 할 수 있겠지. 우리 주변에 일어났던 일을 못 본 척, 인류의 끊임없는 울부짖음을 못 들은 척 할 수도 있겠지."
이 말은 우리나라의 과거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리라.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체 이미지들이다.
영화 자체는 이것들을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주려 한 것 같으나, 이런 이미지들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충격이었다.
<두뇌혁명 A.I.> 과학자도 돈에 쪼들리는 한 명의 사람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공돌이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의 고민은 주로 돈이었다.
원제는 Machine of Human Dreams.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제목을 <두뇌혁명 A.I.>로 지은 것 같은데 내용은 제목과 다소 갭이 있다.
이쪽 분야로 갈 사람이라면 한번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전혀 새롭지 않았다
진화의 시작, 반격의 서막에 이은 세번째 혹성탈출 프리퀄이다.
냉정히 말해서 앞선 두 편의 작품에 비해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성탈출 제1편의 연결고리인 바이러스를 설명하기 위한 관습적인 작품에 불과했다.
<반격의 서막>은 파격적이었던 전편에 뒤지지 않게 코바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주인공의 고민을 심화시켰던 것이 기억이 난다.
<종의 전쟁>은? 있으나 마나 한 군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전편과 똑같은 패턴이고, 코바도 주인공의 환상으로 또다시 등장하는데 전혀 새로운 고민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과 유인원 간의 형세가 바뀐 것 밖에는 차이가 없었다. 전편과의 차이점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것 뿐이다. 러닝타임도 긴 영화는 주인공이 장애물 로 가로막힌 미션을 수행하는 것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주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인간 소녀가 나오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캐릭터도 나오고, 착취당하는 유인원들은 씨가 말라가는 인간에게 대항한다.. 시저는 영웅으로 퇴장한다.
뻔하고 당연하다. 지루하고 재미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혹성탈출 시리즈를 좋아하기에 옛날의 혹성탈출들도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일본에 불시착한 미국남녀
좋아하는 형이 발제한 영화이다.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잘 안 간다.
나름의 이유를 말해주긴 했는데 그 당시에도 이해 못 하고 그냥 넘어간 것 같다.
나는 잡지에다 짤막하게 이런 평을 남겼다.
(일본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서양 남녀 둘의 감정이 싹트는 이야기. 내가 일본인은 아니지만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일본 사람들을 이상한 존재로 그린 것이 보기 안 좋았다. “일본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선의를 베푸는 역할로 나왔어야 한다!” 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는 거~)
.멜로 부분에서는 느낀 것이 별로 없었다.
빌 머레이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여자가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쫙 벌리는 스트립바 씬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 어딘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컷과 일본의 오타쿠들을 이어붙인 씬도 기억에 남는다.
라벨:
동아리,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피아 코폴라
2017BIFAN <빌로우 허 마우스> 푹 젖어드는 레즈비언 영화
2017년 BIFAN을 멋지게 마무리해준 훌륭한 작품.
이번에 본 유일한 금지구역 섹션 영화로, 여자가 예쁘니 보라는 덧글 때문에 보게 되었다.
두 여자가 주인공인데 영화 내내 주구장창 섹스를 한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다. 영화가 정말 섹시하고 좋다.
분위기에 한껏 젖을 수 있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기분이 정말 좋았다.
질문을 하나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남편을 버리고 불륜을 한 셈이 되는데, 이게 마음에 걸렸다.
불륜 자체에 대해 별 생각은 없었지만 홍상수가 겁나게 욕을 먹는 상황을 보다 보니 사람들이 이렇게 불륜에 있어서 민감했나 싶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불륜이라도 그것을 불륜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려낸 영화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다소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감독님은 불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기준을 택하고, 기준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가 유리할 때 주로 나서니 그냥 신경 덜 써야겠다.
두 장면이 좋았다.
하나는 이성애자로 살았던 주인공이 동성과의 섹스 후에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
욕조 물에 머리까지 담그고 있다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엄마 뱃속에서 양수에 젖은 채로 나오는 아기 같았다.
또 하나는 냉장고에 몸을 기대고 섹스를 하는데 못 박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는 장면.
주인공 한 명의 직업을 상징하는 소리가 정말 매력적인 순간에 삽입되어 좋았다.
이런 식으로, 관객 입장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기교가 좋았다.
나도 나중에 영화를 만든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장치를 심도록 해야겠다.
2017BIFAN <벗어날 수 없는> 기이하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 미스테리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예고편에 들어간 장면의 편집 센스가 너무 좋아서 보게 되었다.
그 장면은 낚싯배에서 물 속으로 뛰어든 형제가 나오는 장면. 편집 리듬이 너무 좋았다. 숨 죽이고 봤을 땐 없더니 돌아서면 깜짝 놀라게 하는 수법.
영화 자체는 정말 별로였다.
사이비 집단을 배경으로 하는데 계속해서 특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해명은 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형제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나는 궁금증들이 해결이 안 돼서 많이 답답했다.
미스테리 장르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일까?
미스테리를 미스테리로 남겨놔야 하는 걸까? 해결해줘야 하는 걸까?
미스테리 영화를 볼 때 그 미스테리가 풀리길 바라는 건 잘못된 태도일까?
다음 영화를 위해 GV는 잠시 듣다가 건너뛰었다.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고양이를 부탁해> 보기 드문 우울한 국산 청춘영화
배두나가 보고싶어서 찾은 영화이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발랄한 멜로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이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다섯 명의 그룹 내에서 외톨이처럼 지내는 우울한 지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똑같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스물>이라는 영화와는 다르게 정말로 20살 시기에 놓인 아이들이 할 법한 어려운 고민들이 담겨있다.
분위기가 좋아서 다음번에 꼭 다시 보고싶다.
2017BIFAN <어둔 밤> 가장 웃긴 한국영화
스틸컷을 보고 어린 애들이 만든 학생영화인가 해서 안 볼 뻔 했으나 시간이 맞아서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우연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 보기 전에 취소표가 하나 무료로 풀렸는데 그 표를 취소했을 한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이 영화는 매우 재밌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혔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Dark Knight>를 우리 말 식으로 Dark Night로 바꾼 뒤 해석한 '어둔 밤'이라는 패러디 단편영화를 찍는 대학교 영화 동아리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줄거리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
영화 내내 깔깔깔 웃었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 사실적인 마스크가 일품이다.
영화는 거의 3부로 구성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둔 밤'의 감독이 군대 가기 전의 이야기, 1부의 초짜들이 선배가 되고 후배들이 영화를 다시 찍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탄생하는 <어둔 밤>.
영화 초반부도 엄청 웃긴에 뒤로 갈수록 더 파격적이고 더 재밌다.
GV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저작권법에 걸릴 것 같은데 개봉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감독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빵 터졌다. 자기는 개봉을 계획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개봉할 수 있겠지만, 특별상영 형식으로 여기저기서 상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영화랑은 다르게 조용하게 웃기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해 놓았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친구들을 데려다가 이 영화를 같이 보러가고 싶다.
2017BIFAN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커피도 못 잡고, 느와르도 못 잡았다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사돈의 팔촌>의 감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였다.
커피에 관한 영화라니 커피를 한 잔 까지 사갔는데 영화가 너무 별로였다.
'커피가 불법이라면?'이라는 특이한 상상에서 나온 영화이다.
커피를 팔아서는 안 되는 카페 직원들이 마약 조직들이 마약을 다루는 것처럼 커피를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특이한 설정이 왜 필요한건지 스스로 알지 못 한 것 같다.
코미디를 위해서? 아니면 커피가 좋아서?
커피 트레이로 무술을 연마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코미디이고, 커피를 가지고 이렇게까지나 아둥바둥하는 것은 영화 초반에만 귀엽게 봐줄 만하다.
영화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기본 뼈대는 느와르인데 액션도 유치하고 어줍잖은 사랑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는 인물 또한 너무 유치하다.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느와르도 못 잡고, 커피도 못 잡은 영화였다. 편집을 아무리 다시 해도 볼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장현상 감독이 더 잘 하는 영화를 보여주였으면 좋겠다.
라벨:
장현상,
커피 느와르: 블랙 브라운,
BIFAN
<페스티발> 성도착자 캐릭터들을 다룬 메이저 영화
이 영화는 어느 동네 사람들의 성적인 고민들을 분절적으로 다루는 가벼운 영화이다.
메이저 영화에서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영화는 발랄한 음악과 편집 리듬으로 통통 튀게 만들어졌다.
뒷부분에 가서는 일반적인 멜로영화의 패턴을 답습하기는 하지만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무비올데이롱 제1회 1/3 <마더> 고속버스 씬의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한국 최고의 영화로는 <올드보이> 한 편만을 꼽았다.
이제는 <마더>도 같이 말해야겠다.
이 영화는 원래 볼 계획이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영화 4편을 몰아서 보기로 했는데, 첫 번째 영화를 제안했던 사람이 안 와서 다른 친구가 보고싶다던 <마더>를 설득해서 흑백으로 틀어버렸다.
역시는 역시.
첫번째 볼 때 울었고, 다음에 우연히 예고편 볼 때도 울었고, 이번에도 울어버렸다.
이 영화의 완성은 엔딩이다.
신이 내려준 장면이라 불리는 이 영화의 고속버스 엔딩은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아야 한다.
정말 아름답게 찍혔다.
영화 잡지를 만들 때 <마더>에 관한 얘기를 적어보려다 아직은 내가 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또 볼 것이다.
다음에 또 볼 것이 기대가 된다.
<더 퍼지> '소재는 괜찮았다'는 말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작가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는 웬만하면 안 보는 편이다.
<더 퍼지>는 만드는 사람의 자아를 읽어낼 수 없는 영화이다.
간만에 다른 타입의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가 너무 별로라서 앞으로도 쭉 기존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영화는 전개가 너무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지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집이라는 공간을 전혀 집이 아닌 것처럼 찍어놨다는 것이다.
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데 이름을 불러서 찾으면 될 일을 숨 죽이고 찾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조차 인물들은 절대 듣지 못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어차피 영화가 이러저러해서 별로라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소재 자체는 그럴듯해서 생각을 정리해볼까도 싶었지만 이따위 영화를 가지고 고차원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수치심이 들어서 하지 않겠다.
이 영화에는 영화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개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숙청의 날.. 겉멋 든 악역.. 어줍잖은 정의 세우는 주인공..
기본적인 짜임새는 없이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려고만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니 플롯이 숭숭 비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내주는 A와 Z만 있다고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그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B부터 Y가 있어야 비로소 A와 Z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하나만 한 것도 아니라서 이 영화의 잘못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
나는 더 이상 이 영화에 시간도, 감정도 쏟고 싶지 않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실수를 안 하려고 영화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건 이 영화를 보니 무의미한 짓 같아 보인다.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 하나 따라가는 게 훨씬 낫겠다.
<벌거숭이> 압도적인 아우라
영화제에서 <노다지>라는 단편을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못 봤다.
<벌거숭이>는 그 단편을 찍은 감독의 데뷔작이다.
러닝타임은 76분 정도로,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 정보가 많이 없다.
끝나고 나서 보니 주연배우가 얼마 전에 [전체관람가]에서 본 오멸 감독 영화의 PD였다.
<벌거숭이>는 어느 숨막히는 가정의 이야기, 그리고 농약을 먹고 다같이 죽으려다 홀로 살아남은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무런 정보 없이 봐서 충격이 더 컸다.
영화가 딱 절반 지점 가서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버린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고통받는 아내의 시점에서도 영화가 진행되었기에 이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농약을 먹고 죽자는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가 밥을 한 그릇 떠서 거실로 가자 이미 남편이 자고 있던 아들에게 농약 탄 콩나물국을 먹이는 그 장면...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충격을 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아는 형과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그 형은 여배우의 노출이 배우에게 정신적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노출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도 배우를 정신적으로 착취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벌거숭이>는 아마 최악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친구같은 동료들끼리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올 것 같다. (그냥 내 추측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석탑에 목을 매다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데, 이걸 찍는 배우들은 괜찮았을까?
영화의 절반 정도는 남자주인공의 혼이 나가버린 모습이다.
영화 자체는 내 마음에 들었지만, 위험하게 찍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메시지? 그런 것보다 이 영화에는 유니크한 아우라가 있었다.
간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하고 본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힘을 느꼈다. 좋았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러빙 빈센트> 예쁜 헛수고
하도 주위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봤는데 정말 별로였다.
영화는 한 치의 유머도 허락하지 않는 꽤 진지한 스타일이었다.
단점을 꼽자면 영화가 하고 있는 얘기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억지로 95분의 러닝타임을 채워놓은 느낌이다.
감독이 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차라리 단편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고흐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 메인 플롯인데, 주인공은 추리 비슷한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인물들이 한마디 한마디 들려주는 것이 이야기의 진행이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도 그냥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셰 박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술술 읊어주는 것이 전부이다.
추리물을 쓸 능력도 없는 사람이 고흐에 대한 장편영화는 만들고 싶고. 억지로 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유일한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다.
그래,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그 신기한 게 채 5분을 못 간다.
카메라가 공간을 날아다니는 시점 샷이 어떻게 그림을 다 그렸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없는 걸 알아차리고 마음이 떠나면서부터 내 눈에 그림들은 다 불필요한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냥 특이한 기록을 세운 데에 만족하고 끝날 수 밖에 없는 영화인 것 같다.
나중에 로토스코핑 기법이 발전해 더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될 때쯤 "예전에는 이런 걸 다 손으로 그린 영화가 있었대!" 하고 회자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제 배우를 써서 영상을 촬영한 뒤 그걸 유화로 따라그리는 방식이었는지, 사람의 형태가 너무 정형적이라서 사람이 손으로 그린 느낌도 잘 나지 않았다.
정말 딱 5분짜리 단편으로 만들었더라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하다고 좋아요는 많이 받을 수 있었을텐데.
보기 예쁜 것만으로 영화의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영화가 끝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도 못 하고 생전에 자기 그림을 단 한 장밖에 팔지 못 했던 고흐가 사후에 어떻게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건 따로 알아보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고흐의 특이한 성격같은 건 사실 그리 관심이 없다.
영화에 묘사된 대로라면 불쌍하긴 하지만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불우한 예술가의 행적에서 "불우"만 너무 강조된 느낌이라 싫었다.
예술에 대한 고흐의 생각같은 건 제시되지 않고, 그냥 어느 우울한 한 사람의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이 얘기를 왜 들어주고 있는 걸까?
그냥 다른 우울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냥 그림을 잘 그린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얘기는 별 것 아니지만 그 사람이 고흐라서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고흐의 이웃이었다면 성격 때문에 그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용의 국물> 유투브에서 발견한 한국 성애영화
1
유투브에 '강원도의 힘'을 쳤다가 <용의 국물>이라는 영화를 발견해 버렸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음란물의 예술성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지라
<용의 국물>이라는 해괴한 제목을 한 옛날 에로영화(심지어는 '성애영화'라고 적혀있다)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봐보기로 도전했다.
2
영화는 처음부터 대놓고 정사신을 보여주더니 틈만 나면 상황만 살짝 다른 정사신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나올만 하면 나오는 그 타이밍이 처음에는 되게 웃겼는데 계속되다 보니 많이 지루했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보아오던 영화들의 정사신들에 비해 <용의 국물>의 정사신들은 그 길이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배우들은 몸만 열심히 들썩인다.(+ 남자들이 으쌰으쌰 영차영차 하는 소리도 낸다)
배우들의 흥분이 점차 달아오르다가 빵! 하고 터져야 관객인 나도 약간의 흥분은 할 수 있을텐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영화가 88분의 길이로 꽤 긴 감이 있는데, 그냥 정해진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서 주먹구구로 정사신을 채워넣은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다 한 번씩 짝을 돌려가며 섹스를 한다.
하도 지루해서 뒷부분 가서는 처음으로 배속 재생 기능을 쓰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정사신은 식당 주방에서 짜장면에 들어갈 면을 몸에 두르고 섹스를 하는 장면이다.
3
다른 에로 영화들을 유심히 살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용의 국물> 이 영화는 다른 영상물들과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용의 국물'이라는 중국집에서 주방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암투극이다.
물론 재미는 없다. 하지만 너도나도 섹스하는 영화 내부의 가치관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4
남자 배우들은 꽤 몸이 좋은 편이었다.
여자들는 시대에 따라 화장법이 많이 바뀌어서 화장이 많이 촌스러워 보였다.
총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나마 정사신에 열심히 임하는 배우와, 몸이 예뻐서 지금 시대에 태어났어도 예쁨받았을 법한 한 배우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
5
시험기간이라서 이런 영화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영화들 많은데 제쳐두고 굳이 이런 영화를 봐 버렸다.
옛날감성이라도 느껴보고자 했으나 딱히 그럴 수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매력있는 쌈마이를 보고 싶었으나 그냥 시간 낭비해버린 느낌.
다음에는 인지도 있는 한국 에로감독 봉만대의 영화를 봐볼 생각이다.
이번에 <용의 국물>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는데, 에로 영화들을 더 보다 보면 그 생각이 글로 쓸 만한 정도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다 똑같이 보인다
본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기억이 많이 날아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내기를 하며 놀았던 남녀가 나중에 커서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
좀 또라이같은 게 매력포인트인 영화이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동아리에서 간만에 했던 가벼운 영화인데
너무 가벼워서인지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본적인 구색만 갖춘 영화인 것 같다.
<돌아온다> 2017.12.09 KU 시네마트랩. 허철 감독 GV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막걸리가 주 소재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앞으로 막걸리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가 별로였다. 게다가 막걸리가 그리 중요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1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대사를 너무 많이 한다. GV에서는 감독님이 설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다 덜어냈다고 했는데 영화는 엄청 설명적이다. 으잉?
2
신파적이다. 역시 감독님은 신파적인 영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셨지만 영화를 볼 때는 신파적이라고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엉엉 울면서 그간의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보면서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됐다.
그런데 관객들 중에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어찌됐든 누군가의 감정을 저렇게나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그래도 인정할 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족에 관한 감정들을 아직 내가 느껴보지 않아서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지 못하는 영화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야 하나? 그건 또 아니다. "이 영화가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진 못 했다"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 영화는 내 정서와 맞지 않았다." 얼마나 깔끔한가. 아무튼 신파였다.
3
감독님은 편집과 사운드에 신경을 쓰셨다고 한다. 편집 방식이 특이함은 느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여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영화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니 편집 방식 또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약간 확신에 찬 채로 말할 수 있는 건, 결국에 영화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드니 영화의 나머지 좋은 부분들도 마음에 안 든다.
4
영화만 보고 나갔으면 뭐야 이거 하고 바로 잊어버릴 영화였겠지만, 감독 GV가 있어서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었다. 감독님은 돈 놓고 돈 먹기 식이 되어버린 대기업 영화 사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GV를 시작했다. 그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느낌은 옛날의 기억도 나지 않는 멜로 영화 같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새로운 것이 없는 작품이다. 감독님의 고민은 어디를 향했길래 이 영화가 나왔을까?
그리고 이 영화에서 관객이 발견하지 못 했을 요소들을 몇가지 언급하셨다. 신기하긴 했지만 전달 방식이 미흡했던 것 같다. 나는 의미부여보다는 직관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고보니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할 때 "영화는 어때야 하는가" 식으로 말하기보다는 "나는 이건 안 맞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론가보다는 아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5
감독님께 하고 싶지만 무례한 것 같아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이 영화가 결국엔 홍보도 잘 안 되고 관객 수도 얼마 안 들 것 같은데, 제작비와 손익분기점이 궁금했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많은 관객을 만나면서 내 고집을 좀 굽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길과, 적은 관객을 만나더라도 내 뚝심을 지켜낸 예술영화를 만드는 길 둘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전자인 사람이다. 하지만 나 역시 아직 이 결정에 대해 고민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적은 관객을 만날 걸 알더라도 뚝심 있게 이 영화를 만들어낸 허철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6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막걸리가 잘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는 막걸리의 모습이 아예 안 나온다.
그냥 막걸리가 든 주전자와 막걸리 잔만 나오고, 하얀 자태는 안 나왔다.
그 맛에 대한 대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막걸스>라는 이상한 영화도 있는데 막걸리 소재로 그런 영화라도 봐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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