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1일 월요일

<노트북> 계급에 대한 판타지, 사랑에 대한 판타지




이 영화를 보고 두 가지 단어를 잊지 않으려 했다.
계급, 시간.

계급.
이 영화에는 가난에 대한 엷은 판타지가 깔려 있다.
부유한 앨리의 가족들은 편가르기를 좋아하고 진짜 사랑을 무시하려 든다.
앨리의 약혼자 론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매력남이지만 최종적으로 앨리의 선택을 받진 못 한다.
반대로 가난한 노아는 앨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는 로맨티스트다.
놀랍게도 가난과 부유의 이러한 대비에 어긋나는 인물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이 영화가 신분상승의 판타지보다는 신분하강의 판타지 쪽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분하강의 판타지? 얼핏 들어선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신분이 낮아지는 걸 어떻게 판타지로 생각하겠어?
하지만 영화상에서 부유한 노아와 가난한 앨리가 결혼한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내가 돈을 잃는 식으로 손해를 입는 건 하나도 없다.
신분하강까지 감수한 선택을 우리는 오히려 아릅답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진짜 사랑이라면 그 누구도 품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 빠져들어 이 영화 속 사랑을 그 무엇보다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신분상승 스토리보다 덜 속물적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가 신분상승 스토리로 부르지 않고 신분하강 스토리라 부르는 이유는, 노아와 론 중에서 누굴 자기 남편으로 삼을지 앨리와 우리가 함께 고민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어떤가, 부유한 상대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이 있나?
가난한 자들보다 부유한 쪽이 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은 너무 현실적이라 아름다운 로맨스로는 부적격이다.


시간.
이 영화의 시간은 독특하다.
제목으로도 쓰인 '노트북'을 통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화법을 구사하고, 거기에 더해진 치매라는 장치는 마치 치매에 걸린 환자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내듯 이 영화에 숨겨진 가벼운 반전을 관객들 스스로 유추하게끔 한다.
눈여겨볼 점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택한 이 영화가 골라낸 사랑의 모습이 어느 사랑의 시작하는 순간과 끝나는 순간뿐이라는 점이다.
젊은 배우가 연기하는 시간과 노년 배우가 연기하는 시간 사이의 공백은 굳이 보여 줄 필요가 없다고 이 영화는 판단했다.
론이나 가족들과의 관계 해결도 없이, 어렵기만 한 육아도 없이 말끔하게 늙어버린 이 두 연인은 결국 한 쪽이 치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와 함께 있음을 인지한 채로 동시에 세상을 떠버렸다.
앨리가 내린 결정에는 한 치의 문제도 없었고 이들의 결혼생활은 끝날 때까지도 너무 아름답다.

이 로맨스 영화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고 이 로맨스 영화로는 세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볼 때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는지 몰라도 이 영화를 나중에 돌아본다면 그저 행복하기만 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인생을 아름답게만 포장하는 영화는 진통제 같아서, 그 아픔을 덮을 수는 있어도 결코 치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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