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9일 월요일

소설 [미래의 이솝우화]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001




호시 신이치의 절판된 책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보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라서 빌려 보았다. 몇몇 단편은 단편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인상적인 단편들을 기록한다.



하마님

사회 운영을 크고 정교한 컴퓨터에 맡기는 시대. 하마를 하마님이라 부르고 앞으로 소중하게 여기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하마에게 상처라도 입히는 자는 엄벌에 처해진다. 하마의 개체 수가 급증하고 세상으로 나와 활개를 치기 시작해 하마를 위험하게 할 소지가 있는 교통시스템은 무너지고 곳곳에 하마 전용 수영장이 생기기까지 한다. 컴퓨터의 지시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문명시대의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연행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심각한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고 가축은 대부분 전멸한다. 혼란에 빠진 인류에게 컴퓨터는 하마에 관한 보호조령을 즉시 폐지하고 요리법대로 전염병에 면역이 있는 하마를 먹을 것을 지시한다. 

어쨌든 컴퓨터는 올바른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보란 듯이 입증되지 않았는가. 그 지시대로 하마를 소중하게 다룬 덕분에 지금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동물 중에서 하마만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의 지시를 무시하고 하마를 번식시키지 않았다면 영양실조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생존하게 되고, 모두들 컴퓨터를 믿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런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활약을 해 주었다. 그런데 무리하게 가동한 탓인지 배선회로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 결과 이런 지시를 내리게 됐다.
'앞으로 인간은 서서 걸어 다니지 말고 기어 다녀야 한다.'
고장으로 인한 터무니없는 지시였지만 아무도 고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전형적인 호시 신이치식 결말!



가치검사기

죽기 직전의 노박사로부터 유품으로 그가 개발한 어느 작은 장치를 받은 조수 N씨. 물건에 갖다대면 그 물건의 가치를 판단해 주는 만능 가치검사기이다. 바늘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면 가치가 있고, 왼쪽으로 흔들리면 가치가 없다. 얼마 후 가치검사기의 사용 요령을 터득한 그는 물건구입에 실패하는 일이 없어 가게를 여는 데 성공하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자 점포를 확장하고 직원들을 가치검사기로 채용하기까지 한다. N씨가 벌어들이는 이익은 높아만 가고 미술상, 부동한회사까지 섭렵한다. N씨는 가치검사기를 사용하여 선량하고 정숙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결혼까지 한다. 모든 것을 가치검사기로 시험해 본 N씨는 유일하게 자기 자신만은 시험해보지 못 했다. 어느 날 밤 검사기로 자기 자신을 측정해 본 그는 바늘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그 장면을 본 부인에게 N씨는 가치검사기의 존재를 털어놓게 되고, 부인은 가치검사기를 이런저런 물건들에 갖다대어 보다가N씨에게 검사기를 대 본다. 이번엔 바늘이 왼쪽으로 크게 흔들린다.

검사기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N씨는 분명 대단히 가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단지 별 볼일 없는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올해도 외롭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청년에게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 이내 산타클로스를 믿게 된 청년은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고민하던 중 소원을 빌 기회를 평소 불쌍히 여기던 불치병으로 누워 지내는 소녀에게 준다.

산타클로스는 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의 마음에는 좀 전까지 없었던 무언가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앞으로 산타클로스가 찾아올 것을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만족감을 느꼈으며, 후회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것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잠에 든 청년은 멋진 꿈을 꾼다. 산타클로스는 소녀에게 찾아간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녀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며 소원을 빌 기회를 평소 가엾게 여기던 평판이 좋지 않고 친구도 없는 돈놀이꾼 아저씨에게 넘긴다. 

산타클로스는 사라졌지만, 소녀의 기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행운을 양보하면서까지 산타클로스와 같은 소중한 사람을 보내 주다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온몸에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병이 낫는 듯 했다.

"뭐라고요? 이런 귀중한 권리를 내게 양보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에요? 믿을 수 없는 일이군. 그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요?"

산타클로스는 돈놀이꾼 아저씨를 찾아간다. 소원이야 있지만 그는 원하는 것을 자기 힘으로 이루기로 결심하고 위험한 계략을 꾸미는 일당의 두목의 황폐한 마음을 달래주길 부탁한다.

남자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유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꿈속에서 다시 한 번 산타클로스를 만나려고 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영업방침을 조금 바꿔볼까? 산타클로스를 이곳으로 보내 준 사람이 가게에 돈을 빌리러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면서...

두목의 소원은 세계의 파멸이지만, 파멸시키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에게 산타클로스를 보내준 사람도 포함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린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가 곧 떠나야 하는 산타클로스에게 그는 결국 내년에는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달라 부탁한다.

산타클로스는 사라졌다. 그는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눈은 그쳤고, 밝은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산타클로스는 어깨에서 자루를 내려놓은 후 그것을 치웠다. 창문 밖의 별빛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산타클로스는 오늘 하루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훈훈함의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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