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7일 수요일

잠결에 본 영화들 in 타르코프스키 30주기 전작전 <안드레이 루블료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반의 어린 시절> <솔라리스> <희생>



6월 4일과 5일 타르코프스키 전작전에 다녀왔다. 벌써 세 달이나 지났구나..
극장 안에 앉은 건 <안드레이 루블료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반의 어린 시절>, <솔라리스>, <희생>인데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솔라리스> 이렇게 두 편이다. 사실상 이 두 편도 놓친 부분이 있지만 내가 여기 가서 아무 것도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하면 아쉬우니 두 편은 본 것으로 치자. 잠을 충분히 자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 드르렁스키라는 명성에 걸맞게 잤다. 다시 없을 특별한 기회이지만 내가 능력 부족으로 자꾸만 잠에 빠지는 게 괴로워서 마지막날에는 중간에 티켓을 반납하고 나와버렸다.

모모 분위기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도 많이 계셨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좋아하는 감독 특별전 보기 위해 극장 오고가고 할까.
행사 특성상 본 분들이 또 보이고 그랬다. 5일에는 중년의 남자분께서 부족한 티켓을 대신 예매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티켓을 드렸더니 고맙다며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셨다. 미술 쪽에서 종사하는 분이셨고 영화 배우러 유학 갔을 때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본 적 있다고 하셨다. 요즘 인도가 괜찮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연락처도 받았다. 재밌는 인연이다.

티켓 끊다가 동아리 선배도 만났다. 그 형이 여기 와서 자다 갔다는 얘기를 오기 전에 들었었다. 여자친구분과 함께 영화 보러 왔다. 연인끼리 이런 영화를 보다니 신기했다. 좋은 자리를 구해주셔서 셋이 앉아서 영화 두 편인가 봤는데 아마 <솔라리스>, <희생>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에는 동아리 다른 선배도 보았다. 그 형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그 형은 특별전 영화가 아닌 <세가지 색: 블루>를 봤다고 했다. 학내 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는데 창렬이었다. 얘기를 나누며 내가 이런 영화 보다가 졸린 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는 걸 억지로 보는 건 힘들다.

티켓 줄 서다가 다른학교 동아리 선배도 보았다. 타르코프스키를 좋아한다던 형이다. 그 형은 영화 보다가 안 잤을까? <거울> 보다가 온몸에 전율이 일고 막 이랬을까? 아피찻퐁도 좋아한다고 그랬다. 참 신기하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190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영시간. 앞부분 조금 보다가 뒷부분은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자 버렸다. 그림을 비춰주던 엔딩이 기억난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어차피 깨고 봤어도 힘들었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어렵지 않았다. 계층과 계층 간의 소통을 다루는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이 귀엽고 그랬다. 아이가 밖에 나가지 못 하는 이유가 적힌 종이비행기가 결국엔 노동자에게 닿지 못 하는 쓸쓸한 엔딩. 그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롱샷으로 담았던가? 결정적인 엔딩 쪽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다.

<이반의 어린 시절>
아침에 그렇게 잤는데도 이번에도 얼마 보지 않고 잤다. 중간에 깼는데 이걸 볼까 말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이내 잠들어버렸다. 엔딩 부분에서 또 깨버려 결말을 봐버렸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을지도.

<솔라리스>
결정적인 엔딩 부분에서 정신을 잃었다. 영화 내내 좀 몽롱한 상태였다. 그래도 166분의 상영시간을 거의 버텨낸 것이 자랑스럽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던가? 나는 그냥 좀 이상했다.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듣고 싶다. 다시 본다면 그 때도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영화보다 책을 통해서 보는 쪽이 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생>
잠들었다가 후반부에 일어났다. 잘 잠은 전날부터 다 잔 건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이 또렷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기억이 잘 나는 건 아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 한 채로 영상만 눈에 담기 급급했다. 기회 망치지 말고 이것만 보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이 때쯤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필름 룩인가? 빛을 어떻게 이렇게 담았지? 분위기.. 어두운 녹색 빛이 감도는 그림자 진 실내. 옛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바깥. 이글이글.. 내용도 궁금하고 언젠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 영화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영상이 되게 괜찮았다. 이렇게 타르코프스키를 다시 보게 되는 건가? ㅎㅎ..



이후로 한 감독의 영화를 몰아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지 않기로 했다. 그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영자원에서 트뤼포 상영전에 가며 깨져버렸다. 타르코프스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국내 영화감독들의 글이 담겨 있는 책을 읽으며였다. 다들 젊었을 적 타르코프스키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다들 좋아하니 내가 모르고 갈 수야 있겠나! 했지만 워낙 장벽이 높다 하여 나중에 내가 나이들었을 때 보려고 아껴 놓았다. 하지만 고작 스무살일 때 30주년이라고 전작전을 하길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겠다 싶어 이렇게 보게 되었다. 때에 맞지 않는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와장창 봐버렸다. 35주기는 좀 이르고 40주기 정도 된다면 가볼만 하겠다. 나의 첫 타르코프스키 도전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극장에 사람도 많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는 재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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