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영화동아리 부장과 이쁘장한 여자애가 극장에서 보았던 컬트영화로 알고 있었다. 존재만 알고 있었지 직접 이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단순히 동아리에서 <비디오드롬>을 다루다 사이버펑크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엄청 잔인하고 보기 괴로운 영화일 줄 알았으나 그렇진 않고 그냥 좀 괴상하면서도 한편으로 대단한 영화다.
1989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흑백의 영상이고 무지 옛날 영화처럼 보인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이었을까? 흑백의 조악한 영상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 금속의 색감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서사 구조가 독특하나 재미는 없다.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다리에 철심을 박는 사람이 철남 '테츠오'일 거라 추측하면 그가 차에 치이고 바로 다른 남자가 나와서 극을 이끌어간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해괴한 상황들이 벌어지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가 테츠오를 뺑소니로 살해 후 유기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분명히 죽은 줄 알았으나 남자를 찾아와서 그를 추격하는 테츠오를 비롯해 남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테츠오의 저주 또는 남자의 죄책감의 현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너무 늦어 정보가 거의 주어져있지 않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그야말로 당혹감의 연속이다.
사실 영화는 이렇게 정리 안 되는 산만한 내용보다 철의 이미지에 더 탐닉하는 듯하다. 테츠오가 차에 치이는 순간 흘러나오던 낭만적인 노래와 신세계를 뜻하는 NEW WORLD라는 단어. 이 장면만 봐서는 마냥 이 영화가 기계 이미지를 좋은 것으로만 볼 것 같지만 바로 나오는 다음 장면이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공장 이미지와 발작을 일으키면서 춤을 추는 양복 입은 남자의 몽타주다. 철이라는 소재를 영화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으로 표현했다. 남자의 입장에서 테츠오는 악역이고 금속들은 추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되다가 결국엔? 맙소사, 테츠오와 남자의 몸이 하나의 금속 장치로 녹아들고 테츠오는 말한다.
전세계를 금속으로 바꿔버릴까?
너와 내가 말이야 전세계를 녹슬게 해서 세상을 우주의 먼지 속으로 날려 버리는 거야
우리들의 사랑만이 이 망할 세상을 끝낼 수 있다
자! 어서 가자!
정말 괴상하다. 정말 힘찬 느낌인데다가 남자가 테츠오에게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해피엔딩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군체에는 테츠오와 싸우던 남자의 자아가 없다. "아.. 멋진 기분이야..." 어렴풋이 보았던 해피엔딩의 정체는 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라며 내보인 썩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미친 영화. 고철을 덕지덕지 붙였다. 지저분하고 산만하고 잔인하며 더럽기까지 하다.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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