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팬들에게만 있는 '추억'
일본영화가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오타쿠 친구에게 추천받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극장판>.
오타쿠 애니에 대해서 거부감은 있지만 163분의 엄청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애니메이션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팬들을 주 타겟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하루히를 모르는 내겐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무위키를 미리 참고했다.
오타쿠 애니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 상황 연출들이 생각만큼 거슬리진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다.
애니 속에 나오는 말투를 하는 사람들.
실제 사람들끼리는 쓰지 않는 애니메이션 속 말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애니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행동양식들이 쌓여가는 게 무척 신기하다.
'긴급 탈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발동되어 타임리프가 발동하면서 영화는 제법 복잡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은 그 때쯤 되어서야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떠오른다.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설명하기 위한 주인공 쿈의 독백이 과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영상은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장치 쯤에서 그친다.
영화라는 매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영상의 불성실한 활용이다.
그야말로 '보는 라이트노벨'. 극장판이니까 '극장에서 길게 보는 라이트노벨'이다.
내 경우에는 차라리 글로 읽는 것이 더 보기 편했을지도 모른다.
후반부 쿈의 독백들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나오지 않던 음악들을 동원하여 억지로 교훈을 주려 한다.
내레이션으로 다 알려줘서 163분간 일어나는 일들을 대충 이해하는 건 가능하다.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내용은 간단했다.
나가토 유키는 하루히의 과한 장난으로 오류를 일으켜 시공간을 변형시켰다.
시공간이 뒤틀리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던 쿈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심 내용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원작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결코 진심으로 느낄 수 없다.
나가토 유키의 오작동을 유발한 하루히의 과한 장난이란 건 원작 팬들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고, 행복하면서도 자신을 행복하다 여기지 않았던 쿈의 과거 또한 그렇다.
원작 팬들이라면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억을 자극하는 이 영화에 깊이 감동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절대 본편이라고는 불릴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도 이렇게 2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쌓여온 과거가 있어야만 하는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추억'이란 걸 느끼게 해 주는 영화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나, <보이후드>가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다는 사실은 팬과 일반인들에게 변함없는 사실로 전달되지만
그들이 느끼는 추억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한 영화 안에 배우의 얼굴을 통해 진짜 시간을 담아낸 <보이후드>가 무척 실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어버렸다.
반복관람이 많은 극장판 애니 특성상 이 점을 해결하지 않은 건 의문으로 남는다.
쿈 중심으로 보면 이 영화는 '츤데레'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어느 츤데레가 자기 자신의 일상이 소중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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