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도 직전에 읽은 책과 똑같이 책이 붉은 색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51p
마당에 서 있던 여학생 하나가 토를 달았다.
"시골 사람 조심해야 돼. 보기보다 집요하거든."
젊은이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좋다. 82p
그래, 그걸 도둑망상이라고들 하지. 나도 그건 알아. 그런데 이건 망상이 아니야. 분명히 뭔가가 없어졌다고. 일지와 녹음기는 몸에 지니고 있으니 무사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사라졌다.
"그래, 개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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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읽히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피와 폭력을 위해 바쳐진 소설처럼 보이지만, 그런 부분들은 오로지 마지막 부분의 대혼란을 위해 쌓아올린 반전장치일 뿐이다. 이 소설이 섬뜩해지는 순간은 김병수가 결국 싸움에서 패배하고 딸 은희가 잔혹하게 살해됐음을 밝히는 장면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떤 딸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리라는 불안이 밀려드는 장면이다. 154p
그러니까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무' 잘 읽히는 장면들은 오로지 이 급정거와 정적의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만 굉음을 내며 질주하도록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154~155p
불확실한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은 모든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것이 그의 세계를 지탱해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록 속에서조차 세계는 자기 자신과 불일치하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157p
최근에 읽었던 국내소설이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더 읽기가 벅차 그만두었다.
김영하의 문체가 그리웠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술술 읽혔다.
하루만에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본 게 너무 오랜만이다.
은퇴한 연쇄살인범의 태연하고도 지독한 유머.
재밌게 읽다가 85페이지에서 순간 섬뜩해진다.
처음 보는 개를 은희는 우리 집 개라고 말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개를 키운 적은 있었냐고 묻는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는 마당에 묻힌 시체를 물고 와 병수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까지 만든다.
결국엔 우리가 보았던 이야기의 대부분이 김병수 노인의 망상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김영하의 관심은 연쇄살인범이 또 다른 연쇄살인범을 만나 벌어지는 스릴러가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서서히 내가 치매 환자가 된 것과 같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공에 가까워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김병수의 순간순간의 생각들에 의존해 우리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그간 진실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은 모조리 부정당하고, 이제는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김병수의 정신은 죽어서 더 이상 소설 속 세계의 전달자가 없다.
이제는 더 읽을 텍스트가 없다는 상황은 신선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뻥은 좀 무책임하다.
이 소설의 반전이 단순하진 않아서 좋지만 이 당혹감을 나는 사랑하기가 어렵다.
좀 더 치밀하게 구성했더라면 그것에 가려져 김병수와 우리의 헛발질이 덜 강조되었을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치매 환자의 순간순간의 생각들을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이겨낼지
그리고 이 결말로 어떻게 관객들을 이겨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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