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일 토요일

<로리타>(1962) 험버트와 퀼티



1.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이지만 큐브릭의 터치는 보이지 않았다. 큐브릭의 사랑 영화는 이게 처음이다. <로리타> 이후로 큐브릭 영화들이 무겁고 진중해진 것 같다.

2. 험버트는 권총으로 샬롯을 살해하려 하지만 욕조에는 아내가 없다. 그녀는 서재에서 험버트의 모든 것이 담긴 일기장을 보고 충격을 받아 도로에 뛰어들어 사망한다.
일기장으로 인해 샬롯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기를 쓰고 있고, 과거에도 일기를 썼던 나는 누군가 나의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적힌 일기장을 보게 될까봐 무섭다.

3. 영화는 다시 오프닝으로 와서 끝이 나게 된다. 이렇게 영화가 힘주어 말하는 시작과 결말의 정서는 쓸쓸하고 허망하다. 롤리타, 그녀의 아무 것도 모르는 새로운 남편.. 그 누구에게도 화풀이하지 못한 험버트는 자신의 사랑을 앗아간, 혹은 원래부터 소유했던 롤리타의 유일한 사랑 퀼티를 '처형'한다. 하지만 퀼티는 롤리타와 이미 헤어진 지 오래이고 술에 찌들어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이다. 그를 죽인다고 험버트가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퀼티를 죽이는 것은 통쾌하지도 않았다. 살인죄로 재판을 기다리던 그가 혈전증으로 사망했음이 자막처리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관객들도 퀼티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다. 그만 몰랐다.

4. 소아성애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는 무심한 듯하다. 그 쪽에 대해 이야기할 법도 했을텐데. 이 영화는 재밌고, 허망하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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