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고민의 실체



거장 감독 알랭 레네의 유작.
포스터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이제 보게 되었다.
죽은 극작가의 유언에 따라 그와 함께했던 배우들이 모여 에우리디케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 '에우리디스' 영상을 관람하는 이야기.
간단해 보이지만 이 영화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영상 속, 그리고 영상 바깥 혹은 어디든 우리가 아는 이 신화에선 내용 자체만으로 더 이상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이 연극을 바닥으로 깔고 그 위에서 영상 속, 영상 바깥, 또 제 3세계 등 이곳저곳을 넘나드는 기교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이 지루하고 졸린 시간은 계속된다. 언제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까 하는 기대는 막이 바뀔 때마다 절망이 되었다. 이 영화는 너무 재미가 없었고...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해가 안 갔다.

어쩌다 이 영화에 관한 듀나의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의 글에 나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에 관한 그 고민이라는 것의 실체가 없다. 이 곳 저곳 넘나들며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어떻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되는 걸까?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영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대체 무슨 고찰을 했단 말인가? 그것을 영화로 이렇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

어렵고 말고를 떠나 완벽하게 재미가 없었다. 줄거리에 실린 내용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기교가 따로 또 동시에 진행되는 영화. 이 영화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더 나한테 맞는 영화를 보겠어..

<스위밍 풀> 미스테리란 이름으로


<영 앤 뷰티풀>이 정말 좋아서 프랑수아 오종의 에로틱한 영화를 더 찾아본 것이 <스위밍 풀>.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가 호러영화일 거라 생각했지만 구멍 숭숭 뚫린 플롯을 미스테리로 부르는 허술한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는 상당히 지루했다. 나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좀 더 가벼운 영화를 원했다.

서로를 은근히 견제하는 중년 여성과 어린 여자.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살인사건. 무의미한 반전.

<킬 빌 - 1부> 친구들과 치킨과 함께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지 않지만 킬 빌만은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모인 어느 날 밤, 킬빌이 다시보고싶다는 친구가 있어서 다같이 치킨을 먹으며 킬 빌을 보았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영화 보는 눈이 달라진 건가?
영화에 집중을 못 해서 그런 건가?
놀랍게도 별 생각 없이 보았다.
이쯤 되면 속편을 볼 마음이 없어진다.


"재밌지? 왜, 너도 웃기잖아! ㅋㅋㅋㅋㅋ 자고로 영화란 이렇게 찍어줘야지! 폭력의 미학... 이런 게 바로 진짜 B-무비야. 알겠어?"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소셜포비아> SNS 스릴러, 아직은.



1. 그런 사람이 있었다.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남의 글 깔 줄은 알면서 자기 글 쓸 줄은 모르는. 자기 글에 자신이 없던. 자기한테 상처를 준 교수의 표절을 건드리는 대자보를 써서 붙이고는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던.

-용민아, 니 말이 맞는 거 같애.
-뭐가.
-나보고 민하영같은 애들 이해 못 할 거라고 했잖아. 난 그게 인터넷이라서 그런 줄 알았거든. 근데 똑같잖아, 밖에서도..
-다 그런 건 아냐.
-모르겠다.. 뭐 불쌍한 거 같기도 하고..

2. 그런 친구가 있었다. SNS 속 세상이 전부였던. 그만큼 절박했던. 또 한 번 자기의 살 곳을 잃어버린.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3. 인터넷 세상을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소셜포비아> 속 현피와 양게TV 방송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트위터에서 저렇게 사람들끼리 누군가를 족치러 몰려다니고, 왜 저렇게 BJ 말투는 인터넷방송 말투같지가 않은가? 일상적이고 친근한 우리네 삶의 공간을 주 배경으로 하였지만 이상하게 사실적인 느낌은 없다.

4. 반전이라면 사실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 이러한 진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SNS와 황폐한 우리의 삶 묘사? 재미는 일단 없고... 묘사?
SNS만의 스릴러? 새로운 스릴러? 아직 새로운 스릴러까진 아니다.

5. 점점 멀어져가는 지웅과 용민의 관계묘사는 인상적이었다.

<맨 인 더 다크> 그 할배의 사연


이 날 본 네 편의 영화 중 가장 별로였다.
이게 마지막 영화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눈 먼 노인의 지하실에 한 여인이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다.
할배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도 무죄처리된 가해자를 집 안에 가둬놓고 임신시켜 자기 자식을 낳으려 했던 것.
그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으으..."
영화는 그렇게 이 노인을 악역으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을 더, 더 나쁜놈으로 만들어야만 했나.
마냥 나쁜놈도 아니고 사연이 있는 나쁜놈이다.
생각 없어야 할 영화의 안타고니스트가 애처로운 사연을 부여받으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순수한 스릴감만으로는 이 빈약한 영화를 지속할 수 없었던 듯.

돈도 빼앗아가고 산모도 아이도 죽게 만들고 주인공은 집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돈이 도난당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밝히는 할배가 새로운 산모를 찾고 있다는 암시도 얄팍하다.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을 공포로 받아들여달라는 이 영화가 징그러웠다.

할배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자기 딸을 사고로 잃은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난 채로 어느날 새벽 강도들에게 당해야 했나?
무고한 피해자가 알고보니 나쁜놈이었다는 얻어걸린 반전은 징벌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절대 이뤄낼 수 없다.
할배가 얻어터지는 걸 보여주며 일말의 정의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면 나는 그 의도가 역겹다.

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그물> 김기덕의 '광장'


10월 10일, 극장에서 <칠드런 오브 맨>, <그물>, <비포 미드나잇>, <맨 인 더 다크> 네 편을 연달아 관람했다.
<그물>이 가장 볼만했다.
김기덕 특유의 단점인 투박함을 서사 속 고민거리들이 커버한다.

그물로 고기를 잡다가 배가 고장이 나 북에서 남으로 오게 된 남철우씨는 갖은 수모를 당하며 자신을 간첩이라고 믿는 자, 자신을 귀순시키려는 자들과 싸운다.
그가 밤거리에서 마주친 술집 여자는 화려하게만 보였던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보여준다.
마침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북으로 돌아온 남철우씨는 남한에서 받은 것에 맞먹는 비인간적인 취조를 받는다.
그는 북한의 체제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반기는 가족들의 품에서 웃음짓지 못 하고 자신은 고기를 잡아야 한다며 배를 타고 나가다 사살된다.
남철우씨의 딸은 그가 선물로 남한에서 가져온 곰인형이 아닌 예전부터 가지고 놀던 곰인형을 택한다.

김기덕의 <그물>은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과 유사하다.
어느 쪽의 체제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저 고기를 잡는 평범한 어부로 살고 싶었던 남철우씨의 죽음이 중립국행 선박에서 바다로 뛰어든 이명준의 행보를 떠올리게끔 한다.
중요한 것은 차이점인데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남철우를 보조하는 오진우와 그를 취조하는 조사관 캐릭터 각각의 목적이 너무 맹목적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실망스럽다.
류승범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깊은 표정과 연기가 무식한 인물들 사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중국에서의 그의 차기작은 어떨까. 기대를 걸어 본다.


<비스티 보이즈> 거리감 그리고 윤계상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동아리에서 발제하기로 했다.
유일하게 보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비스티 보이즈>.
발제하는 김에 그의 남은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발버둥쳐 보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인물들.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기회가 없어 후반부에 가서 이들이 더욱 구질구질해질 때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가지지 않고 혐오하게 되었다.
영화의 전체를 좌우하는 방향키가 되는 인트로부터 주인공들은 주로 롱샷으로 등장하고, 겨우 가까이서 잡힌 장면도 얼굴의 측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말하는 것도 죄다 거짓말인 사람들.
영화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거울들은 관객의 집중을 더욱 산만하게 흩트린다.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들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이 연출자의 의도였다면, 그는 성공하기 어려운 위험한 결정을 한 것이다.
영화 전체가 목적지 없는 방황이다.
거리두기를 통해서도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윤계상과 하정우가 분한 두 명의 중심인물들.
서사 면에서 보았을 때 같이 한 화면에 잘 나오지도 않는 두 명의 인물이 동일한 영화에 등장해야 했을 필연성이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
윤계상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의 미스캐스팅이다.
호스트바 멤버들 중에서 인상이 그렇게 특출난 것도 아니고 이중적인 면모를 감당해낼 연기력도 안 된다.
그의 선하디 선한 마스크로로 험한 연기는 수염 기르고 눈 크게 뜨는 것밖에 못 한다.


생각해 보니 윤종빈 감독의 네 편의 장편이 절반으로 나뉘어 극과 극이다.
<비스티 보이즈>, <군도> 짝수번째 영화는 별로였는데 다음 영화는 기대를 걸어 본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기괴한데 유치하다



기괴하면서도 유치한 영화다.
영화는 12세 관람가로, 어린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징그럽거나 무서운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포스터만 봐서는 이 영화의 기괴함을 알 수가 없다.
기괴한 이미지들이 유치한 플롯 위에서 떠다니는 모습은 상당히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내가 팀버튼 특유의 매력에 공감하지 않는 터라 시각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별로였다.

본편에는 홍보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은 아이들이 몇 명 더 나오는데 왜 일부만 선택되었는지 궁금하다.
해외 쪽에서도 일부만 선택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이들 개개인의 특징은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악당을 상대할 때 억지로 활용되기만 한다.
팀 버튼은 아마도 다른 영화들에서도 이미지가 '최우선'인 사람이지 않을까.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의 흥행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아수라>가 개봉해서 극장은 가려고 했지만 막상 <아수라>가 별로라는 평이 많아서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찾은 중박 정도 치는 영화였기 때문..



제11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UNIFF2016 후기.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22일 상영작들을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안 맞아 23일날 가게 되었다.
보았던 작품은 1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 경쟁 4-1
2회 [영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경쟁 5
2회 출품작들에 크게 실망해 남은 3회 작품들은 보지 않고 나왔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 경쟁 4-1

<사랑의 무게> 27분.
편하게 보았는데 보고 나니 생각보다 러닝타임이 길어 놀랐다.
뻔한 얘기. 잘 찍은 것 같긴 한데 감흥은 없다.

<앨리스: 계절의 틈>
촬영이 정말 예뻤다. 배우들도 예뻤다.
그런데 중간중간 삽입되는 '앨리스'에 관한 내레이션은 이해할 수 없었다.
큰 사건 없이도 잘 진행해냈다.

<여자, 엄마>
상영이 끝나고 나와서 투표한 작품.
갑작스럽게 끝내버린 것이 아쉬웠지만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파격적이었다.

<싱크> 11분.
잠시 편집 기법이 참신하다 생각했으나 그 좋은 생각으로 11분을 못 버틴다.
네 편 중 가장 별로였다.


[영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경쟁 5

<위장>
이 날 보았던 최악의 작품. 음악감독이 좋다고 미쳐 날뛴다.
보는 것이 심히 불쾌했다.

<버스 정류장>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속마음.
수준 이하의 배우 기용.

<무하유지향>
이 날 보았던 유일한 다큐멘터리 작품.
스님이 되어버린 옛 음악선생님을 찍었다.
아쉽게도 영화 속에서 마음에 드는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콩자반>
이번에는 이 작품에 투표했다.
어쩌다 보니 투표한 두 작품 모두 어머니라는 존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앞선 <여자, 엄마>는 젊은 선생을 마음에 품고 딸과 경쟁하는 욕망의 주체로,
이번 <콩자반>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제비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여자로.
이번 영화도 일찍 끝나버려서 아쉬웠다.
간결하게 두 시퀀스로 잘 만들었지만 더 길게 만드는 것이 콩자반이라는 상징적인 소재를 어필하는 데 더 좋지 않았을까.



영화를 꿈으로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기 위해 찾게 된 대학영화제였다.
얼마 전에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때문에 이야기 속의 플롯에 집중해서 보았다.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올드 데이즈> 올드보이 블루레이 수록 다큐멘터리



2016년 9월 4일 시네마테크 KOFA.
<올드 데이즈>는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수록된 다큐멘터리이다.
길이는 110분으로, <올드보이> 본편과 함께 출연한 배우와 스탭들이 과거를 증언한다.
주옥같은 영화들이 쏟아졌던 2003년도, 무모했던 도전들.
영화를 보고 나는 이 영광의 시간들이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필요한 건 좋은 사람들.
<올드보이>는 내가 아는 완벽한 영화.
<올드 데이즈>를 보고 내 올타임 베스트를 두 편으로 줄였다. <은하해방전선> 그리고 <올드보이>.
<올드보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좋아할 영화.
한국영화의 역사에 남을 한 편의 영화, 그리고 거기에 얽혀 있는 사람들 또 그 사람들이 살아간 시대.
<올드보이> 팬으로서 [올드보이 북]을 비롯해 추가로 찾아볼 수 있는 게 많아 좋다.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 유일무이한 아이돌 다큐멘터리




아이돌 그룹 나인뮤지스의 초창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스타일조선 측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응한 스타제국 신주학 대표의 마인드가 궁금해질 정도로 국내 아이돌 산업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전무후무한 다큐멘터리. 절대 홍보 영상이 아니다.
나인뮤지스 멤버들과 기획사 직원들이 겪는 안 좋은 사건과 그 상황들이 중심 내용.
생각보다 아이돌 그룹 멤버 들간의 관계는 비즈니스적이고, 스타제국 기획사는 아이돌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한다.
'아저씨'들의 아이돌 만들기. 결과는 실패 쪽이다.

아이돌 그룹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섬뜩할 정도로 이들이 겪는 부담감을 표현해낸 오프닝, 그리고 걸그룹 멤버들이 가벼운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풍자하는 듯한 8비트 애니메이션 크레딧 영상이 인상적이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민감한 부분인 아이돌 그룹과 기획사의 마찰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것을 완성본으로 냈을 때 기획사 측의 반대는 없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곡이 나왔을 당시에도 별로였지만 나인뮤지스의 데뷔곡 No PlayBoy는 정말 별로다.
이런 곡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을 멤버들이 불쌍하다.
결국 나인뮤지스는 이 영화 찍을 때는 있지도 않았던 멤버 경리가 예뻐서 이슈가 되었다.
"억울하면 떠!" 하던 기획사 직원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보기에 스타제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의 스타제국은 무능해 보인다.
스타제국은 어쩌다 대중에게 눈에 띈 몇몇 개별 연예인들이 먹여살린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팬들에게만 있는 '추억'


일본영화가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오타쿠 친구에게 추천받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극장판>.
오타쿠 애니에 대해서 거부감은 있지만 163분의 엄청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애니메이션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팬들을 주 타겟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하루히를 모르는 내겐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무위키를 미리 참고했다.


오타쿠 애니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 상황 연출들이 생각만큼 거슬리진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다.
애니 속에 나오는 말투를 하는 사람들.
실제 사람들끼리는 쓰지 않는 애니메이션 속 말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애니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행동양식들이 쌓여가는 게 무척 신기하다.

'긴급 탈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발동되어 타임리프가 발동하면서 영화는 제법 복잡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은 그 때쯤 되어서야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떠오른다.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설명하기 위한 주인공 쿈의 독백이 과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영상은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장치 쯤에서 그친다.
영화라는 매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영상의 불성실한 활용이다.
그야말로 '보는 라이트노벨'. 극장판이니까 '극장에서 길게 보는 라이트노벨'이다.
내 경우에는 차라리 글로 읽는 것이 더 보기 편했을지도 모른다.
후반부 쿈의 독백들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나오지 않던 음악들을 동원하여 억지로 교훈을 주려 한다.


내레이션으로 다 알려줘서 163분간 일어나는 일들을 대충 이해하는 건 가능하다.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내용은 간단했다.
나가토 유키는 하루히의 과한 장난으로 오류를 일으켜 시공간을 변형시켰다.
시공간이 뒤틀리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던 쿈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심 내용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원작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결코 진심으로 느낄 수 없다.
나가토 유키의 오작동을 유발한 하루히의 과한 장난이란 건 원작 팬들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고, 행복하면서도 자신을 행복하다 여기지 않았던 쿈의 과거 또한 그렇다.
원작 팬들이라면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억을 자극하는 이 영화에 깊이 감동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절대 본편이라고는 불릴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도 이렇게 2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쌓여온 과거가 있어야만 하는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추억'이란 걸 느끼게 해 주는 영화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나, <보이후드>가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다는 사실은 팬과 일반인들에게 변함없는 사실로 전달되지만
그들이 느끼는 추억에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한 영화 안에 배우의 얼굴을 통해 진짜 시간을 담아낸 <보이후드>가 무척 실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어버렸다.
반복관람이 많은 극장판 애니 특성상 이 점을 해결하지 않은 건 의문으로 남는다.


쿈 중심으로 보면 이 영화는 '츤데레'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어느 츤데레가 자기 자신의 일상이 소중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칠드런 오브 맨> 게임같은 촬영, 대배우의 죽음



기대한 것 만큼의 대작은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액션영화라 부르고 싶다.
액션 장면들을 잘 찍었다.
다른 곳에 집중하려 한 것 같으나 그닥.
아예 액션 쪽에 비중을 더 주는 것은 어땠을까?

숲에서 차를 타고 도주할 때, 총알 사이로 키를 구하러 갈 때.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컷 없는 액션.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었다.
이 영화의 촬영에서 재미와 게임성을 느낀다는 건 올바른가?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항상 어느 정도의 선을 넘고 자의식을 갖는다.
종종 주인공이 보는 것 이상의 시선을 직접 걸어가서 보여줄 때는 의아했다.
촬영감독이 "나 여기 있소"를 외치는 건 영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적어도 이 영화에선 불필요하다.

키의 품에 안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는 한 병사의 표정.
모두가 놀란 표정을.
눈물을 흘리며 십자로 성호를 긋는 병사들.

가장 눈여겨 본 것은 가차없이 죽음을 맞는 배우들.
줄리안 무어라는 대배우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죽음이 확정될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스타 시스템을 이용해 절망감이란 것을 신선하게 표현했다.
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죽어버리는 세상.
중심 인물 몇 명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죽음으로 헤어진다.

<영 앤 뷰티풀> 야한 영화


1. 
영화의 오프닝.
놀랍게도 이들의 관계가 친남매라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진다.
이 영화가 남매 간의 위험한 관계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전체에 이렇게 성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이런 식의 관계 설정이 나는 너무 흥미롭다.
  


2. 
남동생이 누나의 자위를 훔쳐보는 장면
집에 들어온 이사벨이 나체의 아버지와 마주치는 장면
아버지가 샤워중인 이사벨의 화장실 문을 실수로 여는 장면
아버지가 자위하는 아들의 방문을 실수로 여는 장면
아버지가 남자친구와 섹스하는 이사벨의 소리를 듣는 장면

서로의 나체나 성행위를 보거나 듣게 되는 장면이 유독 많다.
성적인 긴장감.



3. 
이사벨은 엄마가 이것저것 묻는 것이 귀찮아서 남자와의 교제를 비밀로 한다.
누군가는 사소한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공감이 가서 정말 좋았다.



4.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 관계 장면.
나는 이 장면을 '내 안의 소녀가 떠나갔다'고 표현하고 싶다.
기대와는 달랐던 첫경험.
묘사가 너무 슬프다.




5.
종종 속을 알 수 없는 그녀.
그녀는 자신의 고객인 어느 노인에게 마음을 품은 듯 싶으나
애무를 받으며 성감을 느끼는 장면 바로 다음에 자기 몸을 씻어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녀..




6.
이 영화에서 모든 남자 캐릭터는 잠재적인 이사벨의 성적 대상이다. 자신의 양아버지까지도.
반면 모든 여자들은 이사벨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다.




7.
어리숙한 남자애와 키스하고 나서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춤을 추는 그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영화는 다음 계절이고 마지막 계절이기도 한 봄으로 넘어간다.
봄이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에 전적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엔딩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끝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
여자애가 이쁘고 연기도 잘한다.
나는 야한 영화를 좋아한다.
<영 앤 뷰티풀>로 처음인 프랑수아 오종.
매력에 이끌려 다른 영화도 찾아보게 되었다.

<신나는 일요일> 1983 트뤼포, 스크루볼 코미디 + 스릴러


두번째로 본 트뤼포의 영화. 영자원에서 감상.
이번 영화는 초반부에 졸다가 일어나서 말똥말똥 보았다.
나름 볼만한 영화였는데 안 졸았더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10년 뒤에 나온 우디 앨런의 <맨하탄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었다.
스크루볼 코미디 + 스릴러 장르영화다.
이 영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것은 딱히 없다.
트뤼포의 영화를 두 편씩이나 보았지만 아직 그만의 터치를 잘 모르겠다.
오버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소소한 코미디. 그것이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와 <신나는 일요일>의 공통점이다.

2016년 10월 15일 토요일

<이블 데드> 유쾌한 싸구려 유령의 집

사랑하는 애인이 괴물로 변해 아무 짓도 안 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다.



무지막지하게 괴상한 영화다.
분장이 이상한데 그걸 감추려 하지 않고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 영화만의 매력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마치 좀 오래 된 유령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들뜨고 코믹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감돈다.
공포영화도 어차피 다 즐기려고 보는 거다.
<이블 데드>는 딱 적당한 정도의 공포였다.
유쾌해!
하여튼 이상한 영화.
긴장감도 있고 상상을 뛰어넘는 결말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