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금요일

<넘버 3> 조폭 코미디..


영화는 상당히 재미가 없었다.
조폭 코미디를 싫어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송강호의 연기는 생각과는 달랐다.
여러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간다.

그 시대에는 상당히 모던했을 영화.
지금 보면 많이 촌스럽다.
하지만 눈길이 가는 지점이 하나 있다.
영화 속 시간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고, 그토록 완고한 신념을 지키던 마동팔 검사는 술자리에서 여인에게 추근덕거리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확 바뀌거나 혼란스러워진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이 장면만 툭 돌출되어 있는 건지.
모두가 쌈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앞부분의 마동팔 검사 캐릭터 설정이 너무 확고하지 않았나.


<팔로우> 참신한 발상 미흡한 활용


김혜리 기자가 몇 번 글을 써서 기억에 남았던 <팔로우>.
발상이 참신해서 두고두고 보려다가 이제 보았다.



발상은 좋았으나 이야기의 활용이 너무 미숙했다.
이 좋은 소재를 이렇게까지밖에 못 쓰나?
내용이 너무 재미가 없었고 끝맺음도 아쉬웠다.
성적인 긴장감을 주는 공포영화를 더 찾아봐야겠다.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파고> 세 쌍의 부부와 사랑이라는 가치




무엇 때문에?
그까짓 돈 때문에?
사는 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범인이 잡히고 나서야 이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드러난다. 영화에는 세 부부가 등장한다. 마지와 그녀의 남편, 제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마이크와 린다(물론 이들은 결혼한 적도 없고, 마이크의 거짓말이다.) 마이크 야나기타라는 캐릭터는 <파고>가 다루고 있는 범죄와는 무관한 인물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영화가 하고싶었던 말과 더 관련이 있다. 마이크는 우연히 TV에서 옛 동창인 마지를 보고 그녀가 임신한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저 딱하기만 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마지는 다른 동창으로부터 그가 사별했다던 린다 쿡시는 마이크에게 1년간 스토킹당했고 지금 멀쩡히 잘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는다. 마이크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동창 마지에게 과거에 자신이 스토킹했던 여자를 머릿속에서 죽여가면서까지 동정심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제리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게 지내는 듯 싶지만 제리의 머릿속은 돈 생각으로 복잡하다.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그는 범죄자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다치지 않게 유괴해줄 것을 부탁하고 돈이 많은 장인으로부터 받은 몸값을 나눌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계획은 우발적인 사고와 서로간의 불신으로 틀어지기 시작해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 그대로 공중분해된다. 경찰로부터 도주하다 잡혀 수갑 채워지는 제리의 절규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장인어른도 아닌 부모 잃은 가엾은 아들만이 있을 것이다.

 반면 마지 부부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살아가며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중이다. 남편은 변변찮은 일 없이 집에서 지내는 무능력한 신세이지만 마지는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덤덤하게 출산일을 기다리는 부부의 모습이 거창하지 않아도 퍽 행복해 보인다. <파고>는 이런 세 쌍의 부부간의 사랑의 양상을 제시하면서 진정으로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미카엘 하네케 작품

2월에 봤던 영화. 이제서야 리뷰.


<하얀 리본>을 좋아한다던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하얀 리본>을 보려다가 파일을 못 구했다. 그래서 <하얀 리본>을 연출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다른 영화인 <피아니스트>를 보았다.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걸작으로 칭송받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 했다. 어느 변태성욕자의 이야기 정도로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다른 영화를 봐야 할 것 같다.

<브라질> 아 공부해야겠다.



동아리에서 다시 보게 된 영화 <브라질>.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정보사회, 관료주의, 성형수술이라는 주제가 별로 안 와닿기도 했고 산만했다. 별 흥미로운 얘기가 나오지 않고 이 느낌 저 느낌 말하는 상태로 대화가 진척이 없다가 어느 선배 한 분이 오고 나서야 이야기가 활발하게 돌아갔다. 나는 꽤 괜찮은 얘기들을 들었다. 암담한 엔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그리고 <브라질>에게 엄청난 많은 영향을 주었을 이쪽 장르의 최고봉인 소설 [1984]와 [멋진 신세계] 이야기. 똑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생각을 좀 더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책도 많이 읽어야겠다. 일단 밀린 영화 글들을 마무리하고 책도 활발히 읽어야겠다.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자객 섭은낭> 무슨 말인지..



소모임에서 이야기하기 위해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영화는 많이 조용하고 느리고 지루했고, 무슨 내용을 보고 있는건지 보면서도 이해가 안 됐다. 이 인물이 저 인물이랑 다른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 집중을 한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모이기로 한 날 <자객 섭은낭>을 제안했던 형이 영화를 보고 오지 않아 우리는 제대로 된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둘째치고 이 영화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는 나중에라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곡성> 다시 봐야 한다.



좋든 싫든간에 이 영화가 엄청난 영화임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맞닥뜨렸던 그 엄청남에 친구와 몇시간동안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다. 영화를 처음부터 재구성하던 우리는 특정 지점에서 생각이 갈렸고 갈 데가 있어 일단 그 상태로 헤어졌다. 의견이 갈렸던 지점 중 하나는 무명(천우희)이 종구(곽도원)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꺼림칙함이다. 나는 무명이 정말로 종구의 편에 선 자였다면 더 적극적으로 그를 설득하려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봤을 때 무명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듯, 최선을 다해 종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곡성>은 나 혼자서는 도저히 풀 수가 없는 퍼즐이었다. 아무리 맞춰 봐도 애초에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조각들처럼.
하지만 얼마 후 보게 된, <곡성>을 완전 해석한다는 글들은 내가 내렸던 결론과는 다르게 확실했다. 내가 틀렸나보다. 저쪽이 맞나 보다. 꺼림칙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그 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곡성>을 보았고 유행어도 아직까지 떠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곡성>을 제대로 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는 걸까. <곡성>의 흥행은 유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지금 남은 것은 놀랍게도 없다. 나는 아직까지도 <곡성>에 대해 사람들이 내렸던 해석에 믿음이 안 간다. 나는 내가 스스로 영화의 퍼즐을 완성할 수 없었던 이유들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언젠가 <곡성>을 다시 한 번 보고 하나하나 짚어봐야겠다.

2016년 9월 19일 월요일

소설 [미래의 이솝우화]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001




호시 신이치의 절판된 책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보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라서 빌려 보았다. 몇몇 단편은 단편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인상적인 단편들을 기록한다.



하마님

사회 운영을 크고 정교한 컴퓨터에 맡기는 시대. 하마를 하마님이라 부르고 앞으로 소중하게 여기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하마에게 상처라도 입히는 자는 엄벌에 처해진다. 하마의 개체 수가 급증하고 세상으로 나와 활개를 치기 시작해 하마를 위험하게 할 소지가 있는 교통시스템은 무너지고 곳곳에 하마 전용 수영장이 생기기까지 한다. 컴퓨터의 지시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문명시대의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연행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심각한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고 가축은 대부분 전멸한다. 혼란에 빠진 인류에게 컴퓨터는 하마에 관한 보호조령을 즉시 폐지하고 요리법대로 전염병에 면역이 있는 하마를 먹을 것을 지시한다. 

어쨌든 컴퓨터는 올바른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보란 듯이 입증되지 않았는가. 그 지시대로 하마를 소중하게 다룬 덕분에 지금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동물 중에서 하마만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의 지시를 무시하고 하마를 번식시키지 않았다면 영양실조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생존하게 되고, 모두들 컴퓨터를 믿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런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활약을 해 주었다. 그런데 무리하게 가동한 탓인지 배선회로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 결과 이런 지시를 내리게 됐다.
'앞으로 인간은 서서 걸어 다니지 말고 기어 다녀야 한다.'
고장으로 인한 터무니없는 지시였지만 아무도 고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전형적인 호시 신이치식 결말!



가치검사기

죽기 직전의 노박사로부터 유품으로 그가 개발한 어느 작은 장치를 받은 조수 N씨. 물건에 갖다대면 그 물건의 가치를 판단해 주는 만능 가치검사기이다. 바늘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면 가치가 있고, 왼쪽으로 흔들리면 가치가 없다. 얼마 후 가치검사기의 사용 요령을 터득한 그는 물건구입에 실패하는 일이 없어 가게를 여는 데 성공하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자 점포를 확장하고 직원들을 가치검사기로 채용하기까지 한다. N씨가 벌어들이는 이익은 높아만 가고 미술상, 부동한회사까지 섭렵한다. N씨는 가치검사기를 사용하여 선량하고 정숙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결혼까지 한다. 모든 것을 가치검사기로 시험해 본 N씨는 유일하게 자기 자신만은 시험해보지 못 했다. 어느 날 밤 검사기로 자기 자신을 측정해 본 그는 바늘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그 장면을 본 부인에게 N씨는 가치검사기의 존재를 털어놓게 되고, 부인은 가치검사기를 이런저런 물건들에 갖다대어 보다가N씨에게 검사기를 대 본다. 이번엔 바늘이 왼쪽으로 크게 흔들린다.

검사기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N씨는 분명 대단히 가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단지 별 볼일 없는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올해도 외롭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청년에게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 이내 산타클로스를 믿게 된 청년은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고민하던 중 소원을 빌 기회를 평소 불쌍히 여기던 불치병으로 누워 지내는 소녀에게 준다.

산타클로스는 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의 마음에는 좀 전까지 없었던 무언가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앞으로 산타클로스가 찾아올 것을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만족감을 느꼈으며, 후회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것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잠에 든 청년은 멋진 꿈을 꾼다. 산타클로스는 소녀에게 찾아간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녀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며 소원을 빌 기회를 평소 가엾게 여기던 평판이 좋지 않고 친구도 없는 돈놀이꾼 아저씨에게 넘긴다. 

산타클로스는 사라졌지만, 소녀의 기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행운을 양보하면서까지 산타클로스와 같은 소중한 사람을 보내 주다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온몸에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병이 낫는 듯 했다.

"뭐라고요? 이런 귀중한 권리를 내게 양보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에요? 믿을 수 없는 일이군. 그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요?"

산타클로스는 돈놀이꾼 아저씨를 찾아간다. 소원이야 있지만 그는 원하는 것을 자기 힘으로 이루기로 결심하고 위험한 계략을 꾸미는 일당의 두목의 황폐한 마음을 달래주길 부탁한다.

남자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유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꿈속에서 다시 한 번 산타클로스를 만나려고 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영업방침을 조금 바꿔볼까? 산타클로스를 이곳으로 보내 준 사람이 가게에 돈을 빌리러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면서...

두목의 소원은 세계의 파멸이지만, 파멸시키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에게 산타클로스를 보내준 사람도 포함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린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가 곧 떠나야 하는 산타클로스에게 그는 결국 내년에는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달라 부탁한다.

산타클로스는 사라졌다. 그는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눈은 그쳤고, 밝은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산타클로스는 어깨에서 자루를 내려놓은 후 그것을 치웠다. 창문 밖의 별빛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산타클로스는 오늘 하루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훈훈함의 릴레이~~~

단편소설 [인간 실격]


(내가 읽은 버전의 표지 썸네일을 찾을 수 없어 유사한 디자인의 책 이미지로 대체. 웅진출판 1995년. [사양]이 함께 실려있지만 그건 읽지 않았다.)



1학기 때 날 아끼던 선배 형이 있다. 그 형이 [인간 실격]을 추천해 줬다. 그거 읽고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며. 읽어야지! 하고 결심해 두고 방학을 넘기고 나서야 얼마 전에 다 읽었다. 분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게으른 탓이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던 걸까?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며 느낀 문제를 여기서도 비슷하게 느꼈다. 이 인물이 저 인물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있었다.
이번에 있었던 또 다른 큰 문제는 내가 이 작품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인물을 어떻게 봐달라는 것일까? 작품 [인간 실격]이 작자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에 따르면 자기의 생애를 고백하는 작품이라고 보면 되는 걸까? 가난한 작가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이야기를 시간에 쫓기며 써냈다고 생각하니까 퍽 우울하긴 하다. 그런데 이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랐다거나 이런 건 없었을까? 불쌍하다는 동정심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 형을 불러 한번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에세이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여름방학 때 읽은 유일한 책


1학기 때는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했다. 일주일에 한 권? 그건 무리다. 책 다섯 권만 읽어도 나한텐 대단한 거다..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었다. 나는 이 책으로 방학을 힘차게 열고 그 다음엔 아무 책도 읽지 못 했다. 이 책이 대단하거나 별로여서가 아니라 그만큼 나는 아직 책이 어렵다는 거다.

에세이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별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건 나의 여름방학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여자친구가 준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에세이가 별로고 뭐고 상관없이 이 책을 읽었다. 책은 술술 읽혔고 재미도 있었다. 뭔가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몇 달을 흘려보내고 방학이 끝나고 나서야 내가 방학하기도 전에 읽으려고 했던 책들을 겨우 읽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책이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든간에 결국 계획을 실행하는 건 나 자신이고 나는 이런 류의 책이 주는 효과를 그리 믿지 않는다. 이런 쓸데없이 부정적인 사람을 봤나! 하고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힘으로 해 보려고 한다. 성공한 다음에도 내가 읽었던 책보다는 다른 쪽에서 성공의 원인을 찾아내지 않을까. 이번 방학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책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비슷한 류의 다른 책을 읽고 성공적인 방학을 보내더라도 그건 그 책 덕분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2016년 9월 16일 금요일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 나의 첫 트뤼포

7/30 영자원
영화를 사랑하는 두세 가지... 그리고 그 너머: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



오프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탁소에서 본 여자의 뒤태에 반해버린 남자. 그는 여자가 타고 간 차 번호를 기억해 뒀다가 냅다 자기 차를 박살낸다. 자동차 회사에 가서 자기 차를 이렇게 만들고 갔다며 그녀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내고 마는 남자. 그렇게 전화통화 후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기억하던 여자가 아니다. 그가 보았던 뒤태의 소유자는 내년쯤 다시 오게 될 그녀의 친척. 낙담한 남자는 그대로 돌아와서 자동차 회사 직원과 사랑에 빠진다. 남자의 뒤태미녀 찾기가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일 거라 아주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이 오프닝에 등장한 여자들은 더이상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처음으로 본 트뤼포의 영화이다.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를 많이 찍은 줄 알았는데 이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좀 재밌다. 하지만 웃길 수 있는 곳에서 웃기지 않고 재밌는 것도 아닌고 졸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영화 뒷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 남자가 갖지 못 했던 그 여자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거기선 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이 핵심인 영화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요즘같으면 이런 소재가 되게 민감하게 논의된다.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다니.. ㅎㅎ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철남> 이 영화는 철을 어떻게 표현했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영화동아리 부장과 이쁘장한 여자애가 극장에서 보았던 컬트영화로 알고 있었다. 존재만 알고 있었지 직접 이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단순히 동아리에서 <비디오드롬>을 다루다 사이버펑크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엄청 잔인하고 보기 괴로운 영화일 줄 알았으나 그렇진 않고 그냥 좀 괴상하면서도 한편으로 대단한 영화다.

1989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흑백의 영상이고 무지 옛날 영화처럼 보인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이었을까? 흑백의 조악한 영상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 금속의 색감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서사 구조가 독특하나 재미는 없다.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다리에 철심을 박는 사람이 철남 '테츠오'일 거라 추측하면 그가 차에 치이고 바로 다른 남자가 나와서 극을 이끌어간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해괴한 상황들이 벌어지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가 테츠오를 뺑소니로 살해 후 유기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분명히 죽은 줄 알았으나 남자를 찾아와서 그를 추격하는 테츠오를 비롯해 남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테츠오의 저주 또는 남자의 죄책감의 현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너무 늦어 정보가 거의 주어져있지 않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그야말로 당혹감의 연속이다.



사실 영화는 이렇게 정리 안 되는 산만한 내용보다 철의 이미지에 더 탐닉하는 듯하다. 테츠오가 차에 치이는 순간 흘러나오던 낭만적인 노래와 신세계를 뜻하는 NEW WORLD라는 단어. 이 장면만 봐서는 마냥 이 영화가 기계 이미지를 좋은 것으로만 볼 것 같지만 바로 나오는 다음 장면이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공장 이미지와 발작을 일으키면서 춤을 추는 양복 입은 남자의 몽타주다. 철이라는 소재를 영화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으로 표현했다. 남자의 입장에서 테츠오는 악역이고 금속들은 추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되다가 결국엔? 맙소사, 테츠오와 남자의 몸이 하나의 금속 장치로 녹아들고 테츠오는 말한다.

전세계를 금속으로 바꿔버릴까?
너와 내가 말이야 전세계를 녹슬게 해서 세상을 우주의 먼지 속으로 날려 버리는 거야
우리들의 사랑만이 이 망할 세상을 끝낼 수 있다
자! 어서 가자!

정말 괴상하다. 정말 힘찬 느낌인데다가 남자가 테츠오에게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해피엔딩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군체에는 테츠오와 싸우던 남자의 자아가 없다. "아.. 멋진 기분이야..." 어렴풋이 보았던 해피엔딩의 정체는 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라며 내보인 썩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미친 영화. 고철을 덕지덕지 붙였다. 지저분하고 산만하고 잔인하며 더럽기까지 하다. 어지럽다.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감기> 짜증나는 캐릭터들





<부산행>을 보고 갑자기 삘 받아서 다음날 아침에 <감기>를 보았다. 답답해서 영화 정말 보기 괴로웠다. 나는 <감기>를 씨네21에서 본, 사실적인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씨네21을 읽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다.
애가 가장 심한데 엄마 엄마 하면서 울고 길 잃어버리는 게 특기라서 짜증을 유발한다.
남자는 대책없이 착해서 짜증나고 영화는 적당히 사실적인 여자 캐릭터를 활용하지 못 해 역시 짜증나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유해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분위기를 방해해서 짜증나고 차인표는 대책없이 이상적이라서 짜증난다.
다른 캐릭터들은 포스터에 나온 사람들까지도 단역..
인물을 너무 단순하게, 심하게는 단어 하나로까지 정리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다.
나는 이렇게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전염성이 있다는 점에선 같지만 좀비 영화와는 다른 질병 영화.
좀비가 없기에 오히려 더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이 영화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못 만든 영화.
이미지랄 것도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안 다뤄져서 기대하던 것도 얻지 못 했다.
그다지 임팩트가 없기도 했다.


< 127시간> 시규어 로스의 페스티벌



1. 생각보다 흐름은 좀 끊긴다.

2. 촬영 참 좋다.

3. 심리 묘사의 강도가 좀 더 셌으면.

4. 어차피 구덩이에 빠지고 어차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될 영화를, 나라면 어떻게 찍었을까?

5. 기대했지만 어쩐지 무난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무엇 때문일까.

6. 시규어 로스의 음악에 눈물을 흘려버렸다. 영화가 끝날 때는 가슴이 벅차다.

2016년 9월 10일 토요일

<도쿄 트라이브> 소노 시온의 랩 뮤지컬 영화


1. 랩 뮤지컬 영화인데 사람들이 랩을 정말 못 한다.

2. 장면 장면마다 돈은 엄청 많이 들인 삘이 난다.

3. 눈 부라리는 아저씨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4. 결국에는 남자 성기 가지고 농담한 거.

5. 재미도 없다.

6. 소메타니 쇼타의 다른 영화가 보고 싶다.

7. 뭔가 영화는 매우 현란한데 지루해서 보기 힘들다.

8. 갈등 해결이 너무 쉽다.


소노 시온의 영화는 언제나 실망중... <두더지>가 특이 케이스였나 보다..

<트라이브> 두 번째, 집에서 다소 아쉬운 감상. 그리고 동아리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

이제 영화 본지 기본 두달씩은 지나서야 글 쓰게 된다... ㅜㅜ
7월 13일. 동아리때 발제한 두번째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로 하되 얘기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영화로 신경써서 골랐다.
<유스>와 <코멧>, 그리고 <트라이브> 세 편의 영화 중에서 고른 것이 이거다.


대화는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예상은 가능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장애인을 영화에서 다룰 때의 윤리 얘기가 많이 나왔다.
내가 진행을 하기보단 사람들의 얘기가 흘러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식으로 있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준비해간 질문들이 좀 아까워서 지금 그 질문들에 직접 답을 해 본다.


1. 각자의 감상을 말해 봅시다.
이번으로 두번째 보는 영화다.
동아리에서 선정하게 된 이유는 <트라이브>라는 영화 속의 실험들을 다시 살펴보며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두 번째 보니까 그 때는 대단하다고 느꼈던 실험들이 단순해 보인다.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고, 실험이라기보단 그저 감독의 평소 연출 스타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충격의 절반도 채 전해지지 않았다.
내가 집에서 <트라이브>를 보며 느낀 지루함이 극장에서는 경외감이었다.
그 긴장감이 집에서는 표현이 안 된다.
그 때는 그렇게 재밌게 봤던 영화인데.. 이번에는 졸리기까지 했다.


2. <트라이브>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협탁 씬.
세르게이가 분노에 가득차 기숙사 동료들을 협탁으로 내리찍어 죽이는 장면.
그리고 뭐.. 교사의 집에서 돈을 찾기 위해 옷장을 하나하나 일일히 뒤지는 장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는 섹스 장면?
소리를 듣지 못해 후진하는 트럭에 깔려 죽는 장면?


3. 대사가 없다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사가 없다는 점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 점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영화는 음성없어가 없는만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고
이탈리아 남자가 개입되기 전까지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숨소리만 보고도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4.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장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나요?
밋밋함을 감추기 위해 세게 가는구나...
그런데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굳이 보여줄 것 없는 것들까지 하나하나 보여줌을 가리킨 말이다.
앞서 말한 처음부터 끝까지 성관계를 다 보여주는 장면은 물론이고
수많은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문을 빠져나가는 장면
돈을 뒤지기 위해 옷장을 하나하나 열어 헤집는 장면
그리고 여권을 만드는 상황까지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장면.
극장에서는 답답한 이 장면이 오히려 몰입을 가중시켰다.
집에서 보니.. 효과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촬영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무엇을 의도했는지도 긴가민가하더라.
메모에다가는 '공허, 세계 느껴짐, 실제상황 느낌'이라고 적어놨다.


5. 카메라의 쓰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롱테이크, 롱샷, 스테디캠, 횡적/종적 움직임.
롱테이크.. 이번에 볼 때는 상당히 지루한 감이 있었고
롱샷과 횡적/종적 움직임은 영화의 완급조절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스테디캠은 그냥 취향 문제로 보인다.. 


6. ‘트라이브의 속성에 대해,
그리고 이에 세르게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내가 무슨 답을 원하고 이런 질문을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7. 세르게이와 안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동아리 시간에 섹스 신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첫번째 관계 씬은 관계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난 뒤까지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관계를 거부하던 안나가 마지막에겐 세르게이에게 키스까지 해주는 장면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8. 이 영화의 장단점을 말해 봅시다.
앞에서 많이 떠들었음

 
9.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영화인가요?
그러게 말이다.. 두번 보니까 잘 모르겠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처럼
수화를 충격적인 이미지로 전해주는 게 전부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쓸 일이 있을 거라 믿고 열심히 작업했지만 별 얘기 없이 넘어갔던 영화 요약.

00:00:00 no translation, no subtitles, no voice-over. the tribe
00:00:40 버스에서 내려 길 묻는 세르게이
00:02:51 행사 중인 학교 뒤늦게 도착
00:07:23 교무실 들러 학생에게 인솔받는다.
00:08:51 교실에서 수업. 학생들 첫 만남
00:12:16 식당에서 정신지체아 만남. 행동대장을 따라나와 건물 뒤편으로 물건 이동, 신체검사
00:17:04 여자 방 들어갔다 나체의 여학생 목격 후 나옴. 자기 방으로.
 
00:18:58 행동대장이 아이들에게 물건 공급. 아이들의 작은 몸싸움
00:20:28 세르게이 센 놈들에게 방에서 쫓겨남. 그들이 여자를 데리고 나와 뭘 하는지 구경
00:24:09 달리는 차 안에서 옷 갈아입는 여자들. 트럭 운전수들에게 매춘
 
00:29:47 어디론가 몰려가는 아이들. 세르게이 대 조직원들 격투. 조직원 목에 상처 입히고 상황종료
00:33:00 세르게이 조직원 인정. ‘트라이브밤중에 외출
00:36:02 마트 앞 외진 곳에서 퍽치기 강도.
00:38:06 놀이터에서 훔친 술 마시는 트라이브와 학생들. 세르게이가 안나와 조직원의 성행위 목격
 
00:41:33 아이들이 열차에서 인형 팔다가 검표원 퍽치기
00:43:09 행동대장 분노. 트라이브는 아이들 방 습격해 물건 찾는다. 화장실로 데려가 세르게이와 함께 아이 몸 수색
 
00:46:55 매춘 성사시키고 담배 피우던 조직원 차에 깔림
00:51:08 낮에 매춘 외출 준비
00:53:24 세르게이 매춘 작업 시작. 기다리던 중 안나 성행위 목격.
00:57:38 귀가 후 세르게이가 안나 졸라서 돈 주고 가스실에서 성행위. 거부하던 안나 끝난 뒤에 세르게이에게 키스
 
01:04:37 여행 다녀온 양복쟁이. 교무실 음주. 두 여학생에게 이탈리아 티셔츠 선물. 여자들 좋아한다.
01:11:44 세르게이가 안나의 매춘 저지. 작업 중단됨
01:13:48 세르게이 조직원에게 뺨 맞고 방에서 쫓겨나 지체장애아 방으로 가 화풀이
01:17:57 여학생들 기관에 가서 출국 절차 준비.
 
01:23:49 안나 친구와 화장실에서 테스트기로 임신 사실 확인. 안나 분노.
01:26:20 세르게이 열차에서 인형 팔다가 지갑 훔침
01:28:00 세르게이와 안나 성관계. 세르게이가 지갑 선물
01:30:37 안나가 옷 갈아입으며 친구와 다툼
01:33:42 노련한 아주머니에게 방문해 낙태 시술 받으며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안나
01:41:32 여권 만드는 여학생들
 
01:48:13 매춘 가담하던 교사의 망치 제작 수업
01:51:50 세르게이 교사 집에서 퍽치기. 물건 헤집다가 돈 찾아 나감.
01:57:21 옷을 씻고 세수하는 세르게이. 친구 자는 안나 방에서 안나에게 돈 주며 강제 성관계
 
02:01:18 여학생들 여권 훼손하는 세르게이. 트라이브에게 고문 및 응징당함
02:04:28 눈 맞으며 기숙사 찾아온 세르게이. 방으로 가 협탁으로 잠든 조직원들 세 번씩 두 명 머리 찍는다. 옆 방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들어온 곳으로 그대로 나간다. 계단 문이 닫힌다.
02:10:31 크레딧. 계단 내려가는 발소리

2016년 9월 7일 수요일

잠결에 본 영화들 in 타르코프스키 30주기 전작전 <안드레이 루블료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반의 어린 시절> <솔라리스> <희생>



6월 4일과 5일 타르코프스키 전작전에 다녀왔다. 벌써 세 달이나 지났구나..
극장 안에 앉은 건 <안드레이 루블료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반의 어린 시절>, <솔라리스>, <희생>인데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이솔라리스> 이렇게 두 편이다. 사실상 이 두 편도 놓친 부분이 있지만 내가 여기 가서 아무 것도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하면 아쉬우니 두 편은 본 것으로 치자. 잠을 충분히 자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 드르렁스키라는 명성에 걸맞게 잤다. 다시 없을 특별한 기회이지만 내가 능력 부족으로 자꾸만 잠에 빠지는 게 괴로워서 마지막날에는 중간에 티켓을 반납하고 나와버렸다.

모모 분위기가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도 많이 계셨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좋아하는 감독 특별전 보기 위해 극장 오고가고 할까.
행사 특성상 본 분들이 또 보이고 그랬다. 5일에는 중년의 남자분께서 부족한 티켓을 대신 예매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티켓을 드렸더니 고맙다며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셨다. 미술 쪽에서 종사하는 분이셨고 영화 배우러 유학 갔을 때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본 적 있다고 하셨다. 요즘 인도가 괜찮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연락처도 받았다. 재밌는 인연이다.

티켓 끊다가 동아리 선배도 만났다. 그 형이 여기 와서 자다 갔다는 얘기를 오기 전에 들었었다. 여자친구분과 함께 영화 보러 왔다. 연인끼리 이런 영화를 보다니 신기했다. 좋은 자리를 구해주셔서 셋이 앉아서 영화 두 편인가 봤는데 아마 <솔라리스>, <희생>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에는 동아리 다른 선배도 보았다. 그 형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그 형은 특별전 영화가 아닌 <세가지 색: 블루>를 봤다고 했다. 학내 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는데 창렬이었다. 얘기를 나누며 내가 이런 영화 보다가 졸린 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는 걸 억지로 보는 건 힘들다.

티켓 줄 서다가 다른학교 동아리 선배도 보았다. 타르코프스키를 좋아한다던 형이다. 그 형은 영화 보다가 안 잤을까? <거울> 보다가 온몸에 전율이 일고 막 이랬을까? 아피찻퐁도 좋아한다고 그랬다. 참 신기하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190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영시간. 앞부분 조금 보다가 뒷부분은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자 버렸다. 그림을 비춰주던 엔딩이 기억난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어차피 깨고 봤어도 힘들었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어렵지 않았다. 계층과 계층 간의 소통을 다루는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이 귀엽고 그랬다. 아이가 밖에 나가지 못 하는 이유가 적힌 종이비행기가 결국엔 노동자에게 닿지 못 하는 쓸쓸한 엔딩. 그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롱샷으로 담았던가? 결정적인 엔딩 쪽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다.

<이반의 어린 시절>
아침에 그렇게 잤는데도 이번에도 얼마 보지 않고 잤다. 중간에 깼는데 이걸 볼까 말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이내 잠들어버렸다. 엔딩 부분에서 또 깨버려 결말을 봐버렸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을지도.

<솔라리스>
결정적인 엔딩 부분에서 정신을 잃었다. 영화 내내 좀 몽롱한 상태였다. 그래도 166분의 상영시간을 거의 버텨낸 것이 자랑스럽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던가? 나는 그냥 좀 이상했다.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듣고 싶다. 다시 본다면 그 때도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영화보다 책을 통해서 보는 쪽이 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생>
잠들었다가 후반부에 일어났다. 잘 잠은 전날부터 다 잔 건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이 또렷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기억이 잘 나는 건 아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 한 채로 영상만 눈에 담기 급급했다. 기회 망치지 말고 이것만 보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이 때쯤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필름 룩인가? 빛을 어떻게 이렇게 담았지? 분위기.. 어두운 녹색 빛이 감도는 그림자 진 실내. 옛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바깥. 이글이글.. 내용도 궁금하고 언젠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 영화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영상이 되게 괜찮았다. 이렇게 타르코프스키를 다시 보게 되는 건가? ㅎㅎ..



이후로 한 감독의 영화를 몰아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지 않기로 했다. 그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영자원에서 트뤼포 상영전에 가며 깨져버렸다. 타르코프스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국내 영화감독들의 글이 담겨 있는 책을 읽으며였다. 다들 젊었을 적 타르코프스키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다들 좋아하니 내가 모르고 갈 수야 있겠나! 했지만 워낙 장벽이 높다 하여 나중에 내가 나이들었을 때 보려고 아껴 놓았다. 하지만 고작 스무살일 때 30주년이라고 전작전을 하길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겠다 싶어 이렇게 보게 되었다. 때에 맞지 않는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와장창 봐버렸다. 35주기는 좀 이르고 40주기 정도 된다면 가볼만 하겠다. 나의 첫 타르코프스키 도전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극장에 사람도 많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는 재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디렉터스 컷> 다혈질 감독과 모형심장



생각보다 진지한 필치의 영화다. 왁자지껄한 장면도, 배우들이 소리내어 웃는 장면도 별로 없다. 분위기가 해강의 답답한 상황에 빠져들게 만든다.


1. 영화감독으로서의 고충을 그려내고 싶었겠지만 영화 속 대부분의 갈등은 해강이 영화감독이라서가 아니라 해강이 자기 분노를 조절 못 해서 일어난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해강같이 욱하는 다혈질은 살면서 보고 싶지 않은, 그닥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그의 성격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감독이라면 겪게 되는 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만드는 과정을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영화 깊숙한 곳까지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2. 휴식시간 중 머리 뚜껑을 열어 뇌에 물을 뿌리거나 화해하고픈 동료에게 자기 심장을 꺼내어 주는 식의 연출은 영화 분위기에 귀여운 활기를 준다. 이 영화의 특징적이라면 특징적인 연출 스타일.

3. <고령화가족>의 박해일은 결국에 에로영화 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 <디렉터스 컷>은 다르지만 잘.. 될까

4. 뭔가가 있는, 한방이 있는, 명작이 될 수 있는, 아니 누군가의 가슴속에 남을 수 있는 영화가 되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영화를..

<조용한 가족> 송강호만 보인다



학생, 학생은 고독이 뭔줄 알어?
그래서 뭐라 그랬는데? 
난 학생 아닌데요? 그랬지.
그래서?
알았으니까 내려가래.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어쩌다 시체유기를 하게 된 산장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재밌을 줄 알았는데 상황에 설득력이 없고 그렇다고 시추에이션이 그렇게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송강호의 코미디 연기다. 생각 없고 약간 멍청해보이는 역할로 나왔는데 연기를 너무 잘한다. 지금의 송강호에게 이런 가벼운 코미디 연기는 어울리지 않고, 젊었을 적 찍었던 코미디 영화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넘버3>나 <반칙왕>같은 걸로 말이다.

<자유의 언덕> 드디어 결말에 대한 나름의 결론, 편지로 재현되는 과거 속의 현재형 내레이션


영화 소모임에 참석할 시간이 안 나서 세 명의 멤버끼리 따로 영화 얘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고른 영화는 <자유의 언덕>.


<자유의 언덕> 결말에 대한 또다른 생각



올해 들어 이미 두 번씩이나 본 영화지만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아직 할 얘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 영화의 러닝타임보다 긴 시간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야기했다.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가 문소리와 와인을 한 잔 하고 잠이 든 카세 료의 꿈이었다는 해석과서영화가 잃어버린 편지 한 장이 마지막에 나온 것뿐이라는 해석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고 우리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이 애매한 결말이 홍상수의 연출 스타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국 하나의 농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며 나는 카세 료가 자신이 들고 다니던 책 '시간'에 관해 했던 대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진화를 한 거라서, 어쩔 수도 없고요. 
나는 시간에 대한 이렇게 거창한 대사를 던져놓고서 흥미로운 전개방식을 보여주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될대로 돼라 식으로 결말지은 것이 불만족스럽다.




이번에 <자유의 언덕>을 보며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
극중 카세 료의 내레이션이 편지 속의 말투가 아닌 서영화가 읽고 있는 그 편지 속 순간의 현재형이라는 사실.
서영화는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마치 카세 료와 만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속에서 자기만의 현재형으로 살아있는 그와 실제로 만나지는 못 하고 있는 처지다.
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냐 부정적으로 볼 것이냐는 보는 사람의 몫인가 보다.

홍상수 참 요상하게 영화 찍는 사람이다.

2016년 9월 4일 일요일

<새벽의 저주>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던지지 못 했다.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잡탕 영화.


특정 중심인물의 감정 위주로 서사를 꾸리기보다 상황마다 그때그때 중요한 인물 위주로 만들었다. 누군가가 살아남고 누군가가 좀비가 되는 건 부차적인 일. 하지만 캐릭터 설정이 부실했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역할이 많고 누군가는 목숨이 너무 가볍고 누군가는 갑자기 먼치킨이 되어 버리고 누군가는 이해가 안 가고 누군가는 의심스럽지만 아무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회수 안 되는 떡밥을 뿌리고 누군가는 괜히 죽고... 좀비가 되어가는 임신한 아내를 지키려는 남자의 이야기는 정말 뻔했지만 좀비가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좀비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 좀비의 비주얼이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상황이 그다지 재밌는 것도 아니고.. 쇼핑센터라는 공간을 제대로 활용해 의미화한 것도 아니고.. 영상은 후지고... 엔딩 크레딧 중간중간에 좀비 인서트를 넣으며 끝까지 좀비의 이미지로 채운 것이 좀 재밌긴 하다. 하지만 진정한 좀비 팬들이 과연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싶다. 좀비 나온다고 다 잘 만든 좀비 영화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도 내가 좀비 나오는 영화는 다 좋아하는 줄 알았다. <새벽의 저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본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그 감독이 이 때 이후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으로도 왜 잭 스나이더에게 자꾸 일을 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어설프다. 정말 내가 감독판을 본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딱 적당히 돈 되는 영화 잘 만드는 사람인 걸까?



<액트 오브 킬링> 영리한 다큐멘터리 연출

막상 영화는 지루하게 보았지만
동아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번뜩이는 생각들이 몇개씩 들어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다.

잡지에 올린 단평은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며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기억되는 어느 죄의 양상을 널리 알리는 횃불로서 강한 빛을 내다. 다큐멘터리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열쇠는 바로 연출이라고 감히 답을 내려본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큰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
바로 다큐멘터리에 연출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
다큐멘터리에 연출이 대체 얼만큼 개입해야 하느냐를 가지고 논쟁이 많이 있지만
나는 <북극의 나누크>를 보고 나서 혼란스러운 상태로 있다가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면서 자연스레 답을 찾은 것 같다.


159분짜리 영화인 <액트 오브 킬링>에는 생각보다 정보 전달이 별로 없다.
그 긴 시간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은 감독은 어째서 원숭이가 장기를 뜯어먹는 장면이나 출연자가 포효하며 타악기를 두드리는 장면들은 넣으면서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주지 않았을까?
정답은 연출이다.
수없이 고민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은 진실을 폭로하는 어느 용감한 기자의 기사보다는 감독이 출연자들과 함께 하며 직접 느꼈을 인상에 가까웠다.
이 사건이 이렇게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영화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테고,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한 방법도 그렇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들을 조명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바로 과거의 학살을 존경하는 척 가해자들에게 그 날들의 영광을 재현하는 영화를 찍게 하는 것.
이러한 연출을 통해 <액트 오브 킬링>은 과거로부터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는 어느 악의 양상을 효과적으로 담아내었으며 한 떨기의 불씨로써 이들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사회에 강하게 호소했다.
안와르 콩고라는 인물을 찾아 그가 약간의 후회를 보이는 모습까지 만들어내는 장면은 아주 영리한 연출가의 면모를 짐작하게끔 했다.

<조디악> 불필요해 보이기에 더욱 더 필요한 디테일들 (단평)

동아리에서 제작하는 잡지에 단평을 보낼 <조디악>.
리뷰를 쓰지 않은 것으로 착각해서 글감을 생각하고 있었다.
뒤늦게 내가 썼던 리뷰를 발견했으나 올리지 않고 그냥 놓치기 아까워서 잡지에 올라갈 단평을 그대로 올려 본다.



불필요해 보이기에 영화를 더 사실적으로 만들어주는 곳곳의 디테일함들이 눈에 띈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주는 맛이 없어 영화를 볼 때는 별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막상 돌이켜 볼수록 연출이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