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6일 금요일

<어댑테이션> 각색이 힘들어 각색하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다



영화를 하려면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주목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나는 실천은 안 하고 생각만 한다. 시나리오로 진지하고 어려운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뭐라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는지 <어댑테이션> 생각이 났다. 시나리오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 하나가 있다.

 포스터의 문구. 나는 이 영화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한국 포스터에 적힌 하나의 사건, 두개의 상상, 세가지 결말이라는 문구의 의미가 궁금해서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문구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아마 포스터 만드는 사람이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서 그냥 박아넣은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난초 도둑. 정말 시나리오 특이하게 썼다 싶은 영화로 나는 이 영화를 고른다.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프먼이 실제로 책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하도 일이 안 풀리니 책을 각색하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해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떤 영화에도 그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작가의 캐릭터가 나온 적은 없었다. 여기서는 각색 작가인 찰리 카프먼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원작을 거하게 망쳐버린다.

 로버트 맥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찰리 카프먼이 선보이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 작법이다. 전반부의 찰리는 자신만의 예술을 고수하면서 헐리우드식 영화 작법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 그가 시나리오 전문가 로버트 맥기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화법 자체가 뒤집혀 버린다. 갈등도 없고 대화체도 별로 없는 밋밋한 원작처럼 밋밋하던 영화는 난데없이 장르영화로 둔갑해 버린다. 그간 해오던 원작 이야기와는 너무 딴판이다. 개연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런데 장면 자체를 상업영화처럼 잘 찍어놔서 재미는 있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 ‘[난초 도둑]이라는 책에는 이러저러한 충격적인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형제는 너무 뜬금없이 사랑에 대한 명대사를 내뱉고, 이해가 안 되는 희망적인 결말로 끝이 나 버린다.’ ??? 생각을 해 보면 내용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갈 것이다. 그렇다. 이 시나리오는 관습적인 공장형 영화들에 대한 돌려까기이다.


 겉과 속이 다른 시나리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독특하다고 여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자기 의지와 반하는 헐리우드식 전개를 한시간씩이나 하는데, 그걸 좋다고 쓴 게 아니라 까기 위해서 썼다. 어떻게 영화 뒷부분을 망쳐버리면서 동시에 이렇게 창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상업영화를 까기 위해 상업영화적 화법을 택하다니. 정말 신기한 발상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